세상은 망하지 않는다. 다만 망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펜션은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로 붐빈다. 부연 흙먼지와 함께 쇠줄 끌리는 소리에 발을 멈춘다. 사람이 붐비는 곳에 개라니. 고개를 갸웃한 나는 이내 궁금한 마음을 해소한다. 개는 목줄 안에서 뱅뱅 돌뿐 소리를 내지 않는다. 소리를 잃은 개에게서는 어떤 적개심도 공포도 느껴지지 않는다.
- 인원 추가는 없습니까?
눈 아래까지 바짝 올려 쓴 마스크로 인해 표정을 알 수 없는 주인이 묻는다.
- 네. 성인 다섯에 아이 하나입니다.
인원을 확인한 뒤 방을 안내하던 주인이 말한다.
- 풀장 들어갈 때 모기 퇴치제 꼭 뿌리세요. 농협에서 나눠준 겁니다.
주인의 농협을 신봉하는 말투에 시골에 온 게 실감난다. 복층 구조를 오르내리며 이불과 수건은 넉넉한지, 싱크대와 세면대에 물은 잘 빠지는지 살피다가 지나가는 말투로 묻는다.
- 벌레가 많아요?
- 네. 어떻게든 생기는 게 벌레니까요. 그런데 또 인간은 어떻게든 해결합니다.
어떻게든 해결하는 게 인간이라며, 뭉근하게 쳐다보는 눈빛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 이런 말도 있잖아요. 세상은 안 망한다고. 망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라고. 잘 참거나, 해결할 수 있으면 문제는 없습니다.
주인의 말투는, 무슨 일이 생기든 당사자의 문제지 자기는 책임이 없다는 말로 들린다.
가족들은 애완용 미니 닭장 앞에 모여 있다.
- 엄마! 엄마! 플리머스 록은 얼룩말 무늬 닭이래.
아이가 정확한 발음으로 Plymouth Aock 을 읽는다. 아이의 우쭐한 표정에 시아버지가 엄지손가락을 세운다.
- 역시 빛날 휘는 똑똑해. 최고야 최고!
분만 예정일이 다가오자 양가의 공방전은 치열했다. 성은 친가를 따랐으니 이름은 외가에서 짓겠다며 엄마가 작명소에서 지어온 이름이 휘(輝)다. 이름이라는 게 묘했다. 가만히 이름을 되뇌자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아이의 존재가 실감되었다. 뿐만 아니라 평소 타인에 대한 까다로운 잣대나 시댁이라는 편견이 잘 익은 부스럼 딱지처럼 떨어져 나갔고, 시부모를 받아들이는 마음이 썩 우호적이지 않았는데도 아이에게 조부모의 존재를 심어주려는 마음이 우선적이 되는 게 놀라웠다.
내 옆으로 바짝 다가선 엄마가 귀엣말을 한다. 치렁치렁 발목까지 내려오는 검정색 도트 무늬 원피스에, 멋내기용으로 살짝 올려 쓴 모자는 마치 파티에 초대되어 온 듯 요란하다.
- 왜 저러신다니. 그냥 잘한다, 예쁘다, 칭찬하면 됐지 왜 꼭 최고라고 부추겨? 괜한 우월감 심어줘서 뭘 어쩌려구.
엄마의 반응은 내 탓이다. 시댁에서 아이를 왕처럼 대하는 게 못 마땅해 몇 번 푸념을 한 내 탓……
시아버지의 칭찬에 우쭐한 아이가 틱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