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을 읽고 나면

by 하비

좋은 책을 읽고 나면 부끄러워진다.

난 작가도 아니라 시중에 있는 책들처럼 잘 쓰지 못하는 게 당연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부끄러워진다.

그걸 알면 글을 발행하지 말고 서랍 속에 넣지 그래? 싶지만 그래도 소통하고 공감하고 싶으니까 오늘도 발행한다.


깊고 깔끔한 문장들에 그저 책을 읽고 있는 것뿐인데 소리 내 웃기까지 하는 나를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거기다 커피 한 모금까지.

커피를 좋아하진 않지만 향은 좋아해 피곤할 때 원두가 들어있는 병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맡는다.

행복하다는 기분이 들면서 내일 오전엔 커피를 마셔볼까 생각을 한다.

정오가 되기 전에만 커피를 시키는데 오늘은 일터의 1층 카페 사장님이 바뀐 이유로 개시를 하고 싶어 아침부터 기회를 보고 있었다.

아직 정리 중이시니 조금만 더 있어야지.

손님 세 분이 들어오고 커피 주문을 하는데 괜히 아쉬웠다. 전 사장님과도 친해져 괜히 내가 개시하고 싶었는데 아쉬움을 느끼며 다시 사장님의 가게 정리가 끝날 무렵 커피 한잔을 주문했다.

아메리카노 다크와 라이트 중 내가 고른 건 라이트.

전 사장님의 커피는 특별히 맛있었다. 커피를 못 먹는 내게도 쓰지도 않고 약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시시한 맛이 아닌 깊은 맛이었다. 나뿐만이 아닌 게 같은 건물의 3층 직원은 오전, 오후 나누어 커피를 사 먹곤 했다.

3층 직원과 나는 전 사장님에게 징징대기도 했다.

"커피에 대해 잘 모르지만 정말 맛있었는데 너무 아쉬워요.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자주 사 먹을 걸 그랬어요."

"하하. 고마워요. 그냥 기본만 지켰어요. 원두를 가장 비싸고 좋은 것 쓴다는 말은 못 하지만 기계 세척도 중요시해서 매일 깔끔하게 해 놨거든요. 기본이 제일이더라고요."

"사장님. 제가 말했죠? 저 커피 못 먹는데도 여기건 처음 먹자마자 정말 좋았다고요." (나)

두 분이 대화하는 데 괜히 끼어들어 몇 마디 더 붙였다.


과연 맛있을까?

라고 생각하며 주문한 오늘의 아메리카노 라이트는 어제 느낀 서운함이 가시게 만든(이번엔 사장님이 서운해하실 수도) 맛이었고 괜한 선입견을 가진 내게 스스로 민망함을 느끼기까지 했다.

아메리카노 종류도 4가지나 되며 내가 시킨 라이트는 이 전보다 800원이나 비쌌지만 다음엔 조금 더 일찍 다크를 먹어볼까 생각했으니 3층 직원분을 보면 넌지시 말을 해줘야겠다 생각했다.


7월과 8월, 내가 읽은 책은 세 권이다.

신경숙 작가님의 종소리와 정세랑 작가님의 피프티 피플, 박상영 작가님의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종소리는 따뜻했고 피프티 피플은 슬펐다. 현재 읽고 있는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는 읽으며 푹- 웃고 있는 중이다.

모두 작가의 문장 하나하나에 동화됐고 푹 빠지며 읽었다.

특히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는 표지가 유치해 책꽂이에 있음에도 손이 닿지 않았던 책인데 너무 한가한 나머지 들고 왔고 바로 편견을 깨트려줬다.

난 90년생으로 현재 32살이지만 약간 젊은 꼰대 기질이 있는 건지 유행에 따라가지 않는 제목이 좋고 일러스트가 있다면 유치하지 않은 간결한 게 내가 좋아하는 책이었다.

몇 번을 웃으며 읽고나자 내게 조금 유치했던 표지와 제목의 책도 한 번 읽어봐야지 생각이 들었다.


5월과 6월에 읽은 책은 조정래 작가님의 오 하느님과 허수아비 춤이다.

오 하느님은 마음이 먹먹했고 허수아비 춤은 선악을 떠나서 그토록 열심히 사는 이들과 나를 대입하게 됐다.


9월과 10월엔 어떤 책을 읽을지 행복한 고민 중이다.

먼저 소설을 읽고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같은 책을 읽어야지.

그리고 두 달 동안 네 종류의 아메리카노를 먹어봐야지.

오후엔 커피 마시면 도통 잠이 안 오니 오전에 작은 컵에 달라고 해야지 생각하며 다 먹지 못한 맛있는 커피를 반납한다.

남긴 커피를 보고 사장님이 오해하시면 안 될 텐데. 생각하지만 다음번에 맛있었다고, 반절만 달라하면 아시겠지? 싶다.


새로운 책과 새로운 맛의 커피를 업은 새로운 관계(가깝지도 멀지도 않을 좋은 관계)를 맺을 생각에 기분 좋은 오전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