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솥에선 추억이 뜸 들고 국솥에선 그리움이 끓어오르면

제사 음식, 소고기 뭇국 1

by 윤십이월


밥솥에선 추억이 뜸 들고

국솥에선 그리움이 끓어오르면

제사 음식, 소고기 뭇국 1




우리 아들은 어렸을 때 그림책 읽어 주는 걸 참 좋아했어. 너는 밤마다 한없이 책을 읽어 달라고 조르고, 이미 녹초가 된 엄마에게는 더 해야 할 일이 줄 서 있으니 너를 빨리 재우려고 조바심을 쳤지. 그러다 보니 밤마다 잠자리에서는 그림책을 사이에 둔 줄다리기가 끊이지 않았어.

다섯 살 무렵에 네가 좋아했던 그림책 중에 내가 금지시킨 것이 있었어. [천둥 치는 밤](미셀 르미유 글, 그림/ 고영아 옮김/ 비룡소 / 2000년 1판)이라는 책이 있는데 사실 이건 네 나이에 맞는 그림책은 아니었고 초등학교 저학년 이상을 위한 철학책이었어. 우리 꼬마 철학자가 일찌감치 이런 책을 좋아했지만 책이 너무 두꺼워서 엄마가 누워서 들고 읽어주려면 손목이 아팠지. 그리고 네가 금서로 지정한 책도 있었어. 기억나니? [살아있는 모든 것은](브라이언 멜로니 글, 로버트 잉펜 그림/ 이명희 옮김/ 마루벌 /1999년 초판)이라는 그림책. 그 책을 처음 읽은 준 날, 네가 책을 덮더니 말없이 엄마 손에서 책을 빼앗아서 의자를 놓고 올라가 책꽂이의 손 닿는 가장 높은 곳에 올려놨어.


‘어린이에게 들려주는 생명의 시작과 끝에 대한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이 책은 세상의 모든 생명에는 각자의 수명이 있고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그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 아주 담담하게 설명해 주고 있어. 엄마는 이 책이 어린 네게 왜 그리 충격이었을까 그 뒤로 두고두고 생각해 봤어. 사실 [천둥 치는 밤]에도 죽음에 대한 얘기가 포함되어 있거든. 거기서는 죽음에 대한 화자의 파편적 사유를 아주 경쾌하게 표현하고 있지. 예를 들어 ‘죽는 건 아픈 일일까?’ ‘죽음이 날 데리러 오면 / 꼭꼭 숨을 거야, 절대로 나를 찾을 수 없게!’처럼.

이렇게 세월이 흘러 삶의 막바지에 이르렀지만 ‘죽음’에 대해, 엄마는 여전히 너에게 무어라 해줄 말이 없어. 그 책의 작가처럼 담담하게 유물론을 피력하는 것이 고뇌와 두려움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필멸의 존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거든. 그렇다고 죽은 뒤에 영혼이 남아 영생을 누리리라는 믿음을 가지면 위안이 될까? 조금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엄마 생각에 죽음은 결국 각자 감당해야 하는 세상에서 가장 사적이고 내밀한, 마지막 경험인 것 같아.


다섯 살 때의 충격 이후로 우리 아들이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의 밭을 얼마나 갈았는지 궁금하다. 죽음은 삶의 전제이기 때문에 모르는 척 등 돌리고 살아도 안 되지만 너무 천착해서도 안 되는 문제인 것 같아. 엄마는 네가 살아가면서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봐야 할 계기가 주어질 때 회피하지 말고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의 깊이를 조금씩만 더해 갔으면 좋겠어. 그렇게 나이를 먹어갔으면 좋겠다고.

엄마는 너무 일찍 사별을 겪어서 그렇게 차곡차곡 경험과 사유를 쌓아가지 못했어. 열다섯 살에 두 살 위의 친오빠가 갑자기 죽었거든. 그건 평생의 트라우마였고 아직까지도 극복하지 못한 것 같아. 너는 외할아버지와의 사별이 처음이었지. 중학교 때였으니 너무 이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았고 할아버지가 고령으로 오래 앓다 가셨으니 네게 너무 버겁지는 않은 경험이었을 거야.


전근대 사회에서는 죽음이 자연스러운 일상의 일부였을 거야. 엄마 어렸을 때만 해도 개가 한 배로 대여섯 마리의 새끼를 낳으면 그중 문열이를 포함해 한 두 마리 정도는 자라지 못하고 죽게 마련이고, 닭은 그 짧은 명을 다하기도 전에 인간이 잡아먹었고, 고양이는 걸핏하면 쥐를 죽여서 물고 왔지. 동종의 죽음도 마찬가지였어. 고만고만한 집들이 어깨를 비비대며 들어선 짧은 골목에서도 한 해에 한 두 차례 씩 조등(弔燈)이 내걸리고 곡소리가 담장을 넘어왔어. 그 가운데서 자라면서 아이는 나고 죽는 것을 이해하기 전에 일상사로 받아들였지. 애도와 추모의 전통적 방식도 자연스럽게 체득했고.

현대 사회에서 죽음은 영상으로, 혹은 언어로만 존재하는 것 같아. 그것도 차고 넘치도록 허다하게. 그렇게 추상적이던 죽음이 어느 날 나의 문제로 들이닥쳤을 때 무방비한 마음이 큰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아. 엄마 생각에 죽음이 지극히 내밀한 사적 경험인데 비해 애도는 공동의 경험이 되어야 할 것 같아. 어느 사회이든 상례와 제례의 절차와 방식을 정해 놓고 지켜왔던 것도 이 때문이겠지. 공유하지 못한 채 혼자 끌어안는 애도는 그 사람을 심연으로 끌고 들어가거든.

엄마가 죽고, 아빠가 죽어 너희들이 우리의 죽음을 애도하고 추모해야 할 날이 온다면 되도록 함께 모여 마음을 나눴으면 좋겠어. 어떤 형식이나 절차를 따르든 그건 상관없지만 혼자 지내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런 의미에서 오늘 아들에게 가르쳐줄 음식은 탕국이야. 탕이나 국이나 같은 말이 두 번 쓰인 것인데, 제사에 올리는 국을 탕국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보니 요즘은 사전에도 이 단어가 올라와 있더라. 제사상에 올라가는 소고깃국은 일상의 국 한 그릇과는 다른 의미를 가져. 제사상에 올라가는 고기 요리에는 동물을 잡아 희생으로 쓰던 고대의 전통이 고스란히 남아 있거든. 제사는 인류 문명 초창기부터의 문화적 흔적들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추모의 형식인 거야. 그 희생의 고기로 끓인 국도 아주 중요한 제수였어.

그런 의미에서 추모의 모임에 형편이 된다면 다른 건 다 그만두고 딱 한 가지, 탕국만 끓여 놓으라고, 그거면 충분해. 너희 남매와 너희들의 새로운 가족들이 엄마, 아빠 기일에 다정하게 모여 앉아 밥솥에선 추억이 뜸 들고 국솥에선 그리움이 끓어오르는 저녁을 맞아, 애도와 추모를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어.







지난번에 미역국을 가르쳐 주면서 소고기 국을 끓이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했어. 잘게 자른 고기를 다른 재료와 함께 달달 볶다가 물을 붓고 끓이는 방법이 한 가지이고 이건 미역국으로 이미 배웠어. 다른 한 가지 방법은 고기를 덩어리 째 물에 삶은 뒤 고기는 건져 내 잘게 찢어 양념을 하고, 고기 삶은 물에 간을 해 다시 끓인 뒤 고기 건더기를 얹어 내는 방식이라고 했어. 오늘은 두 번째 방식으로 소고기 뭇국을 끓일 거야.

소고기를 삶아서 국으로 끓이는 것은 가장 단순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세세히 들어가면 끓이는 방식이 참 다양해. 고기 핏물 빼는 방식부터 삶는 방식, 양념 등이 모두 제각각이야. 소고기 뭇국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고, 소고기는 귀한 식재료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마지막 맛 한 방울까지 끌어내려 정성을 다했을 거야. 그러다 보니 지역마다 집집마다 비법이 생겼겠지.


재료는 양지나 사태, 다시마, 무, 생강, 후추, 건고추, 국간장, 액젓, 소금만 있으면 돼. 뭔가 빠진 것 같지 않니? 미역의 향을 즐기자는 미역국도 아니고 밍밍한 뭇국인데 파, 마늘이 안 들어가다니 이상하지 않아? 제사에는 불교의 영향으로 오신채를 쓰지 않아. 이런 양념을 쓴 음식을 차려 놓으면 귀신이 냄새를 싫어해서 제사에 오지 않는다고 하지. 무시하고 넣어도 상관없고, 안 넣고 끓이려면 생강을 조금 넣고(파, 마늘 들어갈 때는 안 넣어도 돼) 통후추를 좀 넉넉히 넣어 잡내를 잡아 주면 돼.


제일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고기의 핏물 빼기. 소고기 덩어리는 찬물에 담가 핏물을 빼야 해. 냉동 고기라면 더 말할 것도 없고, 냉장 고기라도 핏물을 충분히 빼 줘야 국물이 깔끔하게 나와. 큰 그릇에 깨끗이 씻은 고기를 담고 고기가 잠길만큼의 찬물을 부어 놓았다가 중간에 물을 갈아주면서 서너 시간 피를 뺀 다음에 다시 망에 받쳐서 냉장고에 넣어 남은 핏물을 빼 줘. 시간이 없으면 망에 받치는 건 생략하고 키친타월을 이용해서 두드려가며 남은 핏물을 제거할 수도 있고. 엄마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방법이긴 한데 영 급할 때는 설탕물에 담가 놓으면 30분 안에 핏물을 뺄 수도 있어. 이렇게 준비한 고기를 향신채 끓는 물에 잠깐 데쳐내 다시 찬물에 헹궈 사용하기도 하는데 번거로우니까 엄마는 그냥 넘어 갈게.


이제 고기를 삶아 보자. 고기가 충분히 잠길 정도의 큰 냄비에 생강 서너 조각, 통후추 한 줌, 건고추 한 개와 건다시마 한 두 장(손바닥 만한 것으로)을 함께 넣어. 파, 마늘 넣을 작정이면 대파는 서너 줄기 절반 정도만 잘라 크게 넣고 마늘도 통째로 한 줌 넣으면 돼. 이 물이 팔팔 끓을 때 고기를 넣는 방법이 있고 고기도 처음부터 같이 넣고 끓이는 방법이 있는데 엄마는 전자를 선호해. 그래야 불순물이 덜 떠오르거든. 여기서 조심할 것! 다시마는 10분~15분만 끓이고 건져내어야 함. 소고기만 끓이는 것보다 다시마를 같이 넣고 끓이면 감칠맛이 훨씬 진해지는데, 다시마는 오래 끓이면 진이 나오고 맛도 나빠지니까 중간에 건져내야 해. 다시마 건진 다음부터는 간간히 위로 떠오르는 거품과 불순물들을 건져내 주는 게 좋아.

고기는 중불에서 40분 정도 푹 삶아 주고 가운데에 젓가락을 찔러봐서 핏물이 나오지 않거나 살짝 나오는 정도면 다 익은 거야. 고기는 건저서 식혀 주고, 나머지 재료들은 건져내서 버리고, 국물은 식혀서 기름을 거둬내. 기름을 잘 거둬낼수록 깔끔한 국이 되는데 이 과정이 꽤 번거롭지. 기름 걷는 방법도 여러 가지인데 엄마는 통째로 냉장고에 넣어 하룻밤 재워서 위에 굳어 있는 기름을 떠내는 방식을 선호해. 이렇게 하면 위에 떠오른 불순물도 함께 제거할 수 있어. 조리하는 사람의 노동력 대신 시간과 온도가 조리를 해주는 셈이니까 좀 서둘러 시작하면 편하게 요리할 수 있어.


이렇게 해서 소중한 고기 국물이 완성됐어. 여기다 무엇을 넣느냐에 따라 추석 차례상에 올리는 토란국도 되고, 설 차례상의 떡국도 되지만 우리는 제사를 지내야 하니까 무를 넣고 뭇국을 끓여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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