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나무 연기 스며든
국 한 그릇 음복하고

제사 음식, 소고기 뭇국 2

by 윤십이월


향나무 연기 스며든 국 한 그릇 음복하고

제사 음식, 소고기 뭇국 2




어렸을 때 학년 초마다 학교에서 가정환경 조사서를 작성해 오라고 했는데 그중 종교를 묻는 항목에 외할아버지는 늘 유교라고 적으셨고 선생님들은 꼭 한 번씩 확인했지. 유교? 외할아버지는 유교는 조상신을 모신다는 점에서 종교라고 하셨고, 그렇게 본다면 유교는 애도와 추모의 종교인 것 같아.

너희 외할아버지는 장손이셨기 때문에 외가에는 제사가 많았어. 엄마가 좀 자라서 제사를 구체적으로 기억할 수 있을 때부터는 2대까지만 지냈지만 일 년에 제사 네 번에 명절 차례까지 합하면 그것도 적지 않은 횟수였어. 봉제사에는 접빈객의 부담이 따라오게 마련이니까 그것도 만만치 않았고.


외가의 제사에는 몇 가지 특이한 게 있었어. 외할아버지가 제사의 상차림은 과감하게 간소화시키신 편이지만 의외로 전통을 고집스레 지켜오신 것도 몇 가지 있거든.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향나무로 향을 피웠다는 거야. 숯불을 피워 놓은 향로에 바늘만큼 가늘게 쪼개 놓은 향나무를 한 꼬집씩 집어넣어 연기를 피웠지. 쌉싸름하면서도 청량한 그 향은 만수향과는 비교할 수 없이 그윽했어. 제사 비빔밥을 좋아하던 임금님 얘기처럼 제사를 지내는 동안 상 위의 음식에는 이 향이 은은하게 베어 독특한 향미를 냈지. 어렸을 때는 향나무 냄새가 그냥 제사의 냄새인 줄만 알았어.

두 번째는 모사를 놓는 거였어. 사실 모사는 제사의 필수 형식이었는데, 이젠 전통의 고수 축에 낄 수 있을 것 같네. 모사는 그릇에 깨끗한 모래를 담고 풀 또는 볏짚을 묶어서 꽂아 향로 옆에 놓는 거야. 그릇에 담겨 있는 흙과 풀, 그냥 이 모양만 상상해 봐도 모사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알겠지? 제사를 지내려면 조상의 혼백을 모셔와야 하고 혼백(魂魄) 중 백(魄)은 땅에 있으니 땅의 상징을 만들어 놓은 거야. 향을 피운 뒤 첫 잔을 따라서 모사의 풀 위에 부었어. 향 연기는 하늘로 올라가 혼(魂)을 불러오고, 모사에 부은 술은 땅으로 내려가 백(魄)을 모셔오는 거지. 이렇게 혼백을 모셔오면 제사가 시작되는 거야. 도시에서는 깨끗한 모래도 볏짚도 구하기 어려워지니까 우리 집에서는 깨끗한 쌀에 솔잎을 묶어 꽂아서 모사로 사용했어. 그러다 솔잎도 구하기 어려워지자 그냥 쌀만 담아 놨었어.

세 번째는 제사 비빔밥의 다시마튀각. 우리 집에서는 다시마를 큼직하게(A4 종이 정도 크기) 튀겨서 제사상에 놓았고 비빔밥을 비빌 때 이걸 부숴서 함께 넣었어. 다시마튀각이 들어간 비빔밥과 들어가지 않는 비빔밥은 결이 전혀 다르지. 나물과 먹기 좋게 자른 생선전과 소고기 산적, 그리고 다시마튀각이 들어가야 제사 비빔밥이 완성되는 거야.

네 번째는 네가 기억하고 고대했을 국수장국. 너희들은 제사 끝나자마자 다른 음식 모두 마다하고 국수장국부터 먹었잖아. 그런데 사실 엄마 어렸을 때는 제사 끝나고 국수장국 절대 안 먹었어. 제사 지내는 동안 국수가 퉁퉁 불어서 맛이 없었거든. 옛날 제사는 오래 걸렸고, 국수는 금방 불었으니까. 그렇다고 제사 끝나고 국수를 다시 삶아 장국에 말아 내기에는 일손이 부족했어. 그 많은 제사 참가자들에게 비빔밥 해내기도 바쁜데 국수까지 새로 삶아 달라고 했다가는 한 대 쥐어 박혔겠지. 국수도 제사상의 기본 차림인데 요즘은 제사에 국수 놓는 걸 아예 모르는 사람들이 많더라고. 면을 삶아서 탕국에 말아내는 국수장국은 제사뿐만 아니라 잔치 음식으로 널리 쓰였어. 요즘 멸치육수를 내서 만드는 잔치국수의 원형도 소기기국으로 만드는 국수 장국일 거야.


제사나 차례가 유교의 형식이라서 뭔가 대단히 복잡하고 정교한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참 단순하고 소박하기 짝이 없어. 차리는 음식은 살아 있는 사람의 잔칫상이나 그다지 다를 것 없고, 절차도 그냥 밥 한 끼 드시고 가시라고 챙겨 드리는 것뿐이거든. 혼백을 모셔와서 어서 오시라고 인사하고 인사하면서 술 올리고, 식사 시작하시라고 밥그릇 뚜껑 열어 숟가락 꽂아 드리고, 드시는 동안 빤히 보고 있으면 민망하니까 잠깐 나가 있다고 오고, 다 드시고 나면 정화수에 밥 말아 드리고,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하고. 그냥 살아 계신 부모님이 오랜만에 우리 집에 오셨다고 생각하고 정성껏 밥 한 끼 대접하는 거야.


제사나 차례 음식은 선대 음식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당대의 음식이라고 생각하면 간단할 것 같아. 선조들은 자주 해 먹었고, 우리도 가끔 해 먹거나 사 먹는 음식. 그런데 엄마가 너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탕국은 지금도 우리가 가끔 해 먹거나 사 먹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해 먹거나 사 먹는 음식이라는 점이 특이하지. 제사나 잔치 때만 해 먹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도 수시로 끓여 먹고, 집에서만 해 먹는 음식이 아니라 밖에 나가면 국밥 파는 집도 많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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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국수를 말아 국수장국을 해 먹거나 찬밥을 말아 국밥으로 먹기 위해서라도 탕국을 맛있게 완성해 보자.

소고기 국물은 기름까지 깨끗이 거둬 완성해 놓았으니 이제 삶아 놓은 고기를 양념해야지. 고기는 적당한 길이로 썰어서 결 대로 찢거나 이게 힘들면 칼로 적당히 잘라도 돼. 양념은 국간장과 참기름, 후추를 기본으로 하고 파, 마늘도 넣겠다면 다진 파와 다진 마늘을 함께 넣으면 돼. 파는 대파를 다져 써도 되지만 아무래도 쪽파를 쓰는 게 보기도 좋지. 이렇게 양념한 고기는 국 국물에 넣어 무와 함께 끓이기도 하고, 따로 보관했다가 그릇에 국을 푼 다음 위에 올려낼 수도 있어. 후자는 너희 할머니가 선호하시는 방식이라 너도 익숙할 거야. 어차피 한 그릇에 담아 먹을 것 한꺼번에 넣고 끓이면 되지 번거롭게 삶은 고기를 구태여 따로 양념해 얹어 주는 이유가 뭘까? 그건 고기 맛 잘 아는 네가 생각해 봐.


다음은 고기 이외의 국건더기를 장만하자. 음… 좀 만망한데 들어갈 건더기가 무 밖에 없다. 물론 넣겠다고 들면 여러 가지 넣을 수 있어. 표고버섯이나 느타리버섯을 넣어도 어울리고 두부를 기름에 지져서 넣기도 하고, 제사가 아니라면 보통 대파를 넉넉하게 넣지. 엄마는 그냥 소고기 뭇국 이름에 맞게 무만 넣고 끓여 삶아 놓은 고기를 얹을 게. 간단해서 좋지?

무는 깨끗이 씻어서 나박나박 썰어줘. 나박나박? 정육면체가 아닌 납작한 육면체로 썰라고. 이때 무의 두께는 대략 0.5에서 1센티미터 정도인데 우리는 고기를 이미 다 삶아 놓았고 무만 익으면 되니까 좀 얇게 써는 제 좋아. 가로 세로 길이는 적당히, 양은 원하는 만큼 준비하면 돼. 그럴 리는 없지만 혹시 무를 아주 좋아한다고 해도 너무 많이 넣지는 마. 무가 많이 들어가면 국물이 시원해지기는 하지만 대신 깊은 맛은 사라지거든.

썰어 놓은 무는 냄비에 넣고 참기름, 국간장을 넣어 볶은 다음에 고기 국물을 넣는 방법을 많이 쓰는데, 엄마는 무에 그냥 국간장만 둘러서 가볍게 버무린 다음 국물 붓고 끓이는 걸 선호해. 기껏 맑은 국물 내놨는데 참기름 뜨는 게 마음에 안 들거든.

여기서 주의할 점 하나! 제사가 가을, 겨울이라면 이 정도로 충분해. 가을무는 달고 맛있으니까. 하지만 여름 무는 맛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심한 경우 쓴맛이 나기도 해. 그러니까 우리가 혹시 무가 맛없는 계절에 죽거든 무에 신경을 조금 더 써줘. 썰어 놓은 무를 살짝 설탕에 재는 거야. 이때 국간장을 같이 넣고 재도 되고.

파, 마늘 듬뿍 넣고 싶다면 파는 어슷어슷 썰어서 2/3는 무와 함께 넣어 끓이고 나머지는 무가 투명하게 익을 만큼 국이 다 끓은 다음에 넣어줘. 다진 마늘도 이때 같이 넣어주면 되고. 간도 이때 하면 돼. 간은 미역국과 같이 국간장, 액젓, 그리고 나머지는 소금으로. 이렇게 국간장으로 맑게 끓이는 국을 맑은 장국이라고 해. 요즘은 소고기 뭇국이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엄마 어렸을 때는 맑은 장국이라고 부르곤 했어.


이제 대접에 건더기를 넉넉하게 담고 고기를 얹은 다음 국물을 푸면 완성이야. 물론 이 위에 황백지단과 소고기 완자 등을 얹어 장식을 하지만 생략해도 무방.

국수는 삶은 면을 사리 지어 그릇에 담고 국 담을 때와 똑같은 순서로 건더기, 양념한 고기, 국물 순서로 퍼 담으면 돼. 제사에 올리는 국은 건더기가 많고 국물이 자작하게 담고, 국수에도 그릇이 뻑뻑하도록 건더기를 넉넉히 담았는데, 요즘에야 먹기 편한 대로 담으면 돼. 그리고 국수 국물로는 국 국물이 조금 싱거울 수 있으니까 소금 간을 조금 더 하는 것도 좋아.



아들, 엄마가 살아보니 삶은 때로 못 견디게 허허롭더라. 특별히 무슨 험한 일을 당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곁에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야. 그냥 어느 날씨 좋은 여름날 해 질 녘, 아무 일도 없는 그저 그런 날의 그저 그런 시간에 불쑥 허허로움이 찾아오지. 이런 허허로움은 때로 죽은 자들이 채워 주기도 해. 돌아가신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얼굴도 모르는 그 윗대의 선조들, 다시 그 보다 더 멀고 아득한 세월을 거슬러 거기 존재했을 어느 조상을 생각하다 보면 허허롭던 내 주위 공기의 밀도가 조금 높아지는 것 같더라고.

엄마는 우리 아들이 조상들의 기일에 향 연기 스며든 국 한 그릇 음복하며 나고 낳고 인연 맺고 아프고 죽는 인생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 만들어지고 변화하고 뒤섞이고 물려주고 물려받는 문화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고. 제사상에서 복(福)을 마시듯(飮), 선조들이 물려주신 제사라는 오래된 사유의 구조물 앞에서 이렇게 근원적 성찰의 따뜻한 곁 불을 쬘 수 있으면 삶이 조금 덜 허허롭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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