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개의 완성 그리고 미완성

by Sies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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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이 그림은 수수께끼로 가득한 그림이다.


어째서 17개의 동그라미인가.


별 같기도 하고 조약돌을 늘어놓은 것 같기도 한 이 그림의 동그라미는 16개 그리고 17먼째는 그리다 말았다.


어째서 한 동그라미는 완성되지 않고 그리다 만 것 같은가.

어째서 이 두 동그라미가 나누어져 있는가...


컬렉터들이 나에게 묻는다.


어째서 17개 동그라미이고 1개의 동그라미는 그리다 말고 쪼개져 있는가...


아버지 조영동 화백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지만 또한 불교사상에 많이 심취해 있으셨다.


불교 철학에서 18은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우주의 전부'를 뜻한다


이를 십팔계(十八界) 라고 부르는데, 우리가 세상을 경험하는 모든 통로를 다 합친 숫자이다.


불교적 완성인 18에서 하나가 모자란 17은, 역설적으로 인위적인 완성을 거부하는 생명력 을 상징한다


18이 모든 것이 갖춰진 '결과'라면, 17은 그 마지막 한 점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다


다 채워지지 않았기에 멈추지 않고 움직이는 에너지가 있다.


항상 모든 예술품이 85프로의 미완성으로 끝이 나야 하고 인생도 아직 할 일이 15 프로 남은 것 같은 것이 잘 산 삶이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18이 세속적인 인식의 틀(십팔 계)를 모두 갖춘 상태라면, 17은 그 틀 중 하나를 비워둠으로써 세속의 굴레를 벗어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17은 완벽한 짝수(대칭)가 되기 직전의 홀수로, 시각적인 긴장감을 유발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그 빈 공간을 상상력으로 채우게 만든다다. 이것이 바로 자연의 원리이다.


우리 몸의 장기도, 나무의 가지도 완벽한 좌우 대칭이 아니듯, 살아있는 것은 비대칭이다'라는 진리를 17이라는 숫자로 표현하신 것 같다.


아버지의 유품정리 때 많은 불교서적이 아버지 서재에서 발견되었다.


이 책들은 모두 여러 기관에 기증되었다.


아버지의 완벽을 향하면서도 완성이 될 수 없는 삶 자체를 미화시키셨던 철학을 항상 잊지 않게 해 주는 깊은 철학의 그림이다.



이 그림은 청주의 네오아트 센터에 소장되어 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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