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이체 여동생 에리자베스의 집

by Siesta

대학의 독일어 어학반에서 1주일에 이틀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집중코스가 아니었던 이 반에는 이미 대학을 다니고 있는 외국인 학생들로 꽉 차 있었다.


유럽의 많은 나라 학생들이 있었고 아프리카 대륙 그리고 증동 아시아의 학생들도 있었다.


하지만 동양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옛 동독의 도시에 있던 이 바이마르 대학엔 그 당시 동양인이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독일말을 잘하지 못했다.


나는 독일어 선생님이 총애하는 학생이 되었다.


수업을 듣게 되어 너무 기뻤다.


첫날 수업을 마치고 독일의 학생식당 멘자로 들어갔을 때 나는 그곳 에서 크리스티나의 집에서 만나 나와 공동묘지를 같이 걸어 나온 마르쿠스를 만났다.


마르쿠스는 너무나 반갑게 나를 보며 식판을 들고 나의 앞에 와서 앉았다.


나는 그날일이 생각나서 갑나기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


" 드디어 대학에서 보네. 비자문제는 해결 됐어? 하이델 베르크 안 가도 돼?"


나는 마르쿠스를 보며 웃으며 대답했다.


"물어봐 줘서 고마워. 결국 대학생 외국인 사무실에서 도와줘서 비자 연장이 무사히 됐어... 그리고 그날 너무 고마웠어. 나 때문에 공동묘지 담도 넘어서... 정말 미안하고 고마워"


마르쿠스가 겸언쩍어 하며 말했다.


" 별일 아니었어. 오늘 밤에 옛날 발전소로 있었던 건물에서 학생들이 테크노 파티 하는데 같이 갈래? 아마 먹을 것도 있을 거야"


"나는 테크노 음악을 별로 안 좋아해...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내 집은 아직 너무 학교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밤늦게 안 다니려고 해"


마르쿠스가 물었다.


"아직이라면 지금 방을 구하고 있다는 이야기야?"


"어,.. 좋은 방이 생기면 나도 학생 공동 거주집 ( wohngemeinschaft)에 들어가서 살려고... 전에 복사기 앞에서 주소 하나 받아서 오늘 점심 먹고 가 보려고 해... "


" 주소 좀 보여줄래? 어디야?"


" Goethe strasse 4" (괴테거리 4번지)


" 아아... 거기 내가 아는 아이들 집이야. '


"그래? 친구들이야? 친구들은 아니고 아는 사이야"


독일말은 "친구"와 "아는 사이"가 분명하다. 몇 년을 같이 다녀도 친구라고 서로 느끼지 않으면 "아는 사이" (bekannte)라고 부르고 진정으로 마음이 통하는 사람만 "친구 (Freund) "라고 부른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는 친구 같은 사이를 앞에 두고 이 사람은 친구가 아니고 아는 사이라고 소개하면 좀 이상하게 여겨지기도 하고 또 혹시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되지만 독일 사람들은 명확하게 친구와 아는 사이를 구븐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서로 오해도 없고 어떤 식으로 대화를 해 나갈 수 있는 가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가 구분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아... 그렇구나. 내가 그 아는 아이들과 잘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아?"


마르쿠스는 나를 보며 말했다.


" 네가 가서 직접 봐. 서독에서 온 아이들이야, 나처럼"


나는 마르쿠스와 함께 밥을 먹고 멘자 (학생식당)에서 나왔다.


자전거가 있던 마르쿠스는 자신의 자전거에 올라타며 말했다.


" 이사해야 하면 말해. 내가 도와줄게"


"뭘 도와" 나 짐 가방 하나밖에 없어 아직..."


"그렇니깐 도와야지... 가구도 주워와 야하고 벽도 칠해야 하고 전기도 새로 달아야 하잖아. 혼자 다 할 수 있겠어?


나는 마르쿠스가 하는 말을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방을 빌리면 당연히 이런 것들이 다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독일의 학생방은 본인이 벽도 칠하고 어떤 때는 바닥도 새로 하고 또 가구도 마련해서 놓아야 하는 때가 많다.


전기시설도 잘 되어 있는 방도 있고 그렇지 맣은 방도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서로 도와 방을 꾸민다는 것을 그때 배웠다.


마르쿠스가 자전거 페달을 밞아 멀리 멀어지는 것을 보고 나는 지도를 꺼내 보며 괴테 거리를 찾아 걸었다.


내가 초인종을 누르자 두 명의 금발의 여자아이들이 나와서 나를 반겼다.


그리고 내게 내가 쓸 방을 보여줬다.


하지만 방의 크기가 너무나 작았다.


집 자체는 좋은 조건이었고 가격도 정말 저렴했다.


한 달에 130 마르크 한국돈 50000원 정도였다.


하지만 방이 너무 작았다.


그래서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너무 방이 작아. 나는 독일에 가족이 없고 방에 있어야 하는 날이 많아서 방이 좀 더 커야 할 것 같아"


이 말에 한 여자아이가 내게 종이 조각에 쓰인 주소를 내밀며 말했다.


"이곳에서도 학생을 찾고 있어... 남자아이들만 둘인 WG (Wohngemeinschaft-학생 공동 하숙)인데 여자아이가 하나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나에게 말했어.


그런데 thomasmuenzer strasse ( 토마스 뮌쪄 거리)에 있는 거야. 무슨 말이냐 하면 가스가 들어오지 않는 석탄을 때는 옛날 집이야.


나의 한국에 있던 집은 내가 중학교 3학년 될 때까지 가스관이 들어오지 않고 옛날 재래식 연탄을 때던 집이었다.


그런 것이 문제가 전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 주소를 들고 다시 새 주소를 향해 걸어갔다.

마치 보물지도를 바꾸어 가며 보물을 찾는 해적같이 나는 또 다음 나의 집이 될 수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로 이 집이 내가 5년 동안 머물며 나의 꿈과 삶을 펼쳐나갈 집이 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이 집은 철학자 니이체의 여동생 에리자베스가 오랫동안 거주하던 바로 그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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