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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이랑 Jan 08. 2022

아프면 참지 말고 병원으로

치질 아니고 치핵

  월요일에 볼일을 마치고 이상한 이물감이 들었습니다. 탈장이라도 한 건지 왼쪽에 뭔가 볼록 튀어나온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프진 않았지만 신경이 쓰였습니다. 며칠 지나면 괜찮겠지 하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화요일에는 약간의 통증이 동반하여 인터넷을 검색했습니다. 손으로 밀어 넣으면 들어간다는 글을 읽고 목욕을 하고 시도해보았습니다.


무엇을 잘못 건드렸는지 통증이 심해졌습니다. 아내에게 말했더니 병원을 가야지 왜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통증을 키웠냐며 걱정스러운 마음에 나무랐습니다.

 “너무 민망하잖아. 인터넷에 보니 약 먹거나 바르면 낫기도 한다는데 해볼까?”

 “병 키우지 말고 병원부터 가보자. 병원에서 진찰을 해봐야 알지.”


 환부의 부위가 부위인지라 아내에게 어떻게 되었는지 봐달라고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혼자 화장실에서 셀카 기능으로 찍었는데 민망하기만 할 뿐 제대로 찍히지 않았습니다.  항문외과를 가면 이 민망한 부위를 어떻게 보여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한방 치료원을 가면 셀프 촬영을 할 수 있는 도구가 준비되어 있고 비수술로 진행이 가능하다고 하여 혹했지만 그동안 조짐이 없다가 갑자기 그런 거라 병원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어렵게 목요일로 연차를 내었습니다. 아내도 연차를 내서 함께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접수 데스크에서 환하게 반기며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 하고 물었습니다. 당연하게 하는 인사지만 민망한 마음에 ‘당연히 항문이 아파서 왔지. 그걸 저리 해맑게 물어보다니.’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료를 위해 탈의실로 안내를 받았습니다. 난생처음 입어보는 바지였습니다. 엉덩이를 바로 볼 수 있도록 뚫려있고 커튼처럼 천이 내려와서 가린 형태였습니다. 의사 선생님과의 면담이 바로 시작되었습니다.

 

의사:배변은 평소 잘 보시나요?

나: 매일 규칙적으로 봅니다.

D: 소요시간은 어떻게 되시나요?

M: 5분 이내입니다.

D: 화장실에 오래 앉아 계시나요?

M: 볼 일이 끝나면 바로 일어납니다.

D: 가족력이 있으신가요?

M: 민망해서 부모님께 여쭈어 보진 않았습니다.

D: 평소 음주량이 어떻게 되시나요?

M: 한 달에 한두 번, 이슬 톡톡 한 캔 정도 마십니다.


“송년회를 앞두고 과음하신 적 있으신가요?”

“아니요, 부스트 샷을 맞은 직후라 한 잔도 안 마셨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면담 후 진료실로 이동하였습니다. 새우잠을 자는 자세로 엉덩이를 맡겼습니다. 영상장비를 이용해서 헤집는 느낌이 나는데 기분이 이상해졌습니다.

 “환자 분 괜찮으세요?”

 “아니요. 똥 나올 것 같아요.”

다행히 우려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민망한 자세와 이상한 기분으로 정신은 안드로메다로 가출한 상태였습니다.

 ‘나는 누구이고 여기는 어딘가?’


 “환자분 치핵에 밀려 나와서 바로 시술이 필요해서 진행할 거예요. 괜찮으시죠?”

 “네.”

이 상황에서 ‘아니요.’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한시라도 빨리 이 순간이 끝나길 바랬습니다.


 “국소 마취할 거예요. 따끔합니다.”

민망한 부분이 예민하기까지 해서 따끔한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시술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지만 그 짧은 시간도 저에겐 길게만 느껴졌습니다.

 “염증까지 제거되었고 시술 잘 완료했습니다. 옷 갈아입으시고 들어오세요. 보호자 분 불러드릴게요.”


 아내와 함께 비밀의 그곳이 촬영된 영상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적나라한 곳을 함께 보아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를 슬쩍 보니 제 몸이 괜찮은지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만 집중했습니다.


 “이 부위에 혈액이 몰리면서 아래로 밀려 나왔습니다. 치핵이라고 부르고요. 항문이 그 부위를 조여주면서 피가 통하지 않게 되는 거죠. 그로 인해 괴사하고 염증이 생겨서 괴사 부위를 제거하고 염증을 제거했습니다.”

출처<미래항맥의원>

 치핵은 1도~4도가 있는데 1도는 검진을 통해 발견하고 2도는 통증이 발생하여 오게 된다고 했습니다. 3~4도는 통증을 방치하거나 참아서 악화된 경우로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환자 분 평소 주량이 어떻게 되나요?”

 “배우자는 술을 잘 안 마시는데요.”

 “두 분 다 환자가 술 안 마신다고 했으니 5일 간 금주하실 수 있죠?”


 의사 선생님은 과음이 주원인이라고 생각하는지 아내에게도 재확인했습니다. 억울해서 과음이라도 해야 하는 건가? 병원을 나와서 아내가 택시를 탈지 걸어갈지 물었습니다. 괜찮은 것 같아서 걷자고 했다가 100미터쯤 걸었을까 마취가 풀렸는지 걷기도 힘들고 앉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결국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와 환자놀이를 했습니다.


 충분히 휴식을 하고 나니 일상생활이 가능했습니다. 시술과 약 덕분인지 괜히 참아서 병을 키울 뻔했다며 안도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과음을 의심하셨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오래 앉아서 일하는 것과 기름진 음식을 선호하는 식습관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민망한 이야기라 굳이 글로 옮기지 않을까 했었는데 인터넷을 찾아보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민망한 부위여도 아프다고 참거나 미루지 마시고 병원을 가시길 바랍니다. 초기에 가면 금방 해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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