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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이랑 Feb 05. 2022

집사 일지(33)

아내가 뿔났습니다.

 퇴근 후 한가롭게 욕조에 몸을 담그고 콧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아내의 큰 소리가 들렸습니다. 무슨 일이지? 하는 생각이 들어 씻고 아내에게 다가갔습니다.


  아내가 시엘이에게 싫은 소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시엘이는 알아들을 리 없으니 옆에서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듯 시엘이가 커튼에 매달렸다가 화분 위로 떨어진 것이었습니다. 하필 떨어지면서 화분이 아래로 떨어져서 깨졌습니다.

 다행히 시엘이는 다치지 않았습니다. 시엘이가 다쳤다면 아내는 혼비백산해서 동물병원에 가자고 난리였을 것입니다.

 “자기야, 괜찮아. 시엘이가 안 다쳤으면 됐지.”

 “맞아. 다행히 시엘이는 안 다쳤지. 그런데 시엘이가 안 다친 걸 확인하니 화분이 눈에 들어오네. 아끼던 귀한 화분인데 깨져버렸어. 수습하고 식물도 옮겨 심었는데 긴 뿌리 3개 외에는 화분 깨지면서 잘려 나가서 죽을지도 몰라.”

가운데 화분이 아내가 아끼던 화분

 “어쩔 수 없지. 시엘이가 뭘 알겠어. 내일 화분 다시 사자.”

 “저 화분은 다시 못 사. 독특한 화분이라 제일 아끼던 건데 이제 화분도 플라스틱 재질로만 구매해야 할까 봐. 커튼에 올랐다니는 걸 알면서 옮기지 않은 내 잘못이지.”



갑자기 깨져서 임시 방편으로 옮긴 오른 쪽 화분

아내가 주문한 받침대를 주말에 조립해서 화분을 옮길 예정이었는데  템포 빠르게 화분이 깨져버린 것입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아내의 감정의 불씨도 사그라든 모양입니다.

 “자기야, 시엘이는 어떤지 한 번 살펴봐줘. 많이 놀랐을 텐데.”

 “걱정하지 마. 전혀 신경 안 쓰던데 자기만 놀랐지.”

 “맞아.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깜짝 놀랐어. 전에 알아본 펫 적금 가입해야 할까 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사용하게.”

 “내년에 상황보고 가입하자. 아직은 어려서 크게 아플 일 없으니까.”


 펫 보험도 알아보았으나 발생 확률이 높은 질병은 보장하질 않으니 큰 의미가 없었습니다. 아직은 어려서 건강하지만 간 수치가 조금 안 좋다고 해서 간 약도 먹었습니다. 고양이는 신장이 약해서 물을 잘 챙겨줘야 한다고 해서 주말에는 6시간 간격으로 깨끗한 물로 갈아주고 있습니다.  


시엘이는 물도 잘 챙겨 먹는 편이지만 츄르를 챙겨줄 때 물을 조금씩 타서 수분을 채워주고 있습니다. 아내가 아침마다 오메가 함량이 높은 간식도 챙겨줍니다. 시엘이는 말을 못 하니 어디가 아픈 건 아닌지 미리 살펴보고 예방 차원에서 영양을 생각합니다.

 8개월 차인데도 시엘이 발랄하기만 합니다. 방금 전에도 아내에게 혼났는데 다시 커튼에 매달렸다가 떨어질 뻔했습니다. 이번에는 캣타워로 몸을 날려서 착지했습니다. 질병보다는 사고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혹시라도 시엘이에게 위험한 물건이 있으면 보이는 대로 치우고 있는데 워낙 호기심이 왕성합니다.


 아내도 화분 때문에 속상해 하긴 했지만 딸을 챙깁니다. 화분이 깨진 이후 안일하게 생각한 물건은 없는지 다시 돌아보았습니다. 시엘이를 항상 예뻐하는 아내인데 화분은 많이 속상했는지 알아듣지도 못하는 시엘이랑 대화를 시도하는 아내의 모습이 웃을  없는 상황임에도 웃음이 나왔습니다. 시엘이는 오늘도 천진난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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