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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이랑 Dec 12. 2022

이게 싸울 일인가요?

‘남’ 편 말고 ‘님’ 편

 좋아하는 작가님의 북 토크에 초대되어 오전부터 아내와 분주하게 준비를 하고 낯선 장소에 방문했습니다. 사실 처음 경험한 북 토크라 자세히 쓰고 싶었지만 경황이 없어서 함께 있었던 일을 적어도 되는지 물어보질 못했습니다.

 

 처음 준비하셨을 작가님과 예비 신부님의 정성이 느껴졌고 두 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알찬 시간이었습니다.  술 없이도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이런 진솔하고 속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니 신기하고 감사한 경험이었습니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점심을 어떻게 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일찍 시간 맞춰 찾아오느라 아침도 굶고 끝나고 나니 점심이었습니다. 나온 김에 근처에서 점심을 먹을까도 생각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며 나오는데 아내는 길을 찾느라 못 보았던 풍경을 감상하며 좋아했습니다. 집을 개조해서 상가로 사용하는 곳이 많아서 주위에서 못 보던 이색적인 풍경이었습니다.


 모처럼만의 데이트라 맛있는 걸 먹고 싶기도 했고 돌아가는 길도 멀어서 집 근처로 돌아가서 먹기로 했습니다. 아내가 얼마 전에 먹고 싶어 했던 조개를 먹기 위해 조개 전골 하는 식당을 검색해두었는데 그곳으로 인도했습니다.


 배고프다고 보채는 아내를 달래며 도착했는데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공사 중이었습니다. 웹에 공사 중이라고 표시만 해주었어도 헛걸음을 하질 않았을 텐데.. 예전에 국밥집을 찾다가 코로나로 폐점을 했는데 표시를 안 했던 곳도 있어서 오는 길에 혹시나 하고 설렁탕 집이 있는 걸 눈여겨보긴 했습니다.


 차선책이 있어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아내는 오전부터 낯선 장소에 낯선 사람들과 함께 있느라 힘들었던 건지 배가 고파서인지 예민해져 있었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궁색한 변명을 하며 이동을 했습니다. 아내는 설렁탕집은 생각이 없다고 했습니다.


 “자기야, 먹고 싶은 걸 말해봐.”

 “매운 탕에 회 먹을까?”

 “배가 고파서 회로는 배가 안 찰 것 같아.”

 “그럼 감자탕 먹을까?”

 “어제 점심에 해장국 먹었어. “


 평소였다면 제가 먹자고 하는 걸 흔쾌히 따르는 아내였지만 배는 고프고 먹고 싶은 조개 전골은 못 먹게 되니 심통이 나는 모양입니다. 저기압일 때는 고기앞으로 가야죠.


 “고기 먹으러 가자.”

 “무슨 고기?”

 “얼마 전에 모둠으로 한 판 나오는데 껍데기 맛있었다는 그 집.”


 드디어 만족스러운 답이 나왔는지 발걸음도 가볍게 이동을 했습니다. 점심이지만 일요일이니 주류와 함께 주문을 하고 오늘 있었던 일을 함께 대화했습니다. 옆 테이블엔 5~6살쯤 보이는 여자 아이와 부부가 식사를 했습니다. 거의 같은 시간에 들어온 터라 먹는 속도도 비슷했습니다.


 옆 테이블에서 인스타에 음식 사진을 올리며 태그 인증을 해서 소주 한 병을 받는 걸 보고 저도 인스타에 음식 사진을 올리고 태그 인증을 해서 소주 한 병을 받았습니다. 바로 옆이었지만 그 외에는 스쳐 지나갈 사이었습니다.


 예전 일화에도 소개한 적 있지만 아내는 작은 일에 분개하는 사람입니다. 게다가 오늘은 기분 좋게 술도 한 잔 해서인지 더 대담하고 감성적이 되었다고 해야 할까요? 아내가 오늘 분개한 작은 일은 옆 테이블 꼬마의 생리현상이었습니다.


 꼬마는 화장실을 가려다가 돌아왔습니다. 낯선 장소이고 옛날 분위기를 내느라 조명이 주황색이었습니다. 꼬마는 슈렉의 고양이 같은 눈으로 부모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꼬마의 엄마는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혼자서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꼬마의 아빠 또한 여긴 공공화장실이라 여자 화장실을 따라갈 순 없다고 했습니다.


 아내는 그 모습을 보고 마스크를 쓰고 꼬마를 화장실에 데려다주려고 했습니다. 저는 알아채고 말렸습니다. 다른 사람의 가정사에 관여하는 것은 갈등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이 최선일까요? 저의 기준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지인이었다면 조심스레 낯선 장소이니 함께 가주라고 말을 한다거나 대신 가줄 수 있지만 남이었습니다.


 우리가 실랑이를 벌이는 소리를 못 들었을 리 없는 꼬마의 엄마가 아내를 향해 공격하듯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물었습니다. 아내도 힐난하듯 이야기를 했고 저는 일을 키우고 싶지 않아 일어나서 몸으로 사이를 막고 사과를 했습니다.


 꼬마의 엄마는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고 아이를 챙겨서 일어났습니다. 꼬마의 아빠도 괜찮다며 따라나섰습니다. 남은 아내와 저만 갈등이 남았습니다. 아내는 아이의 그 표정을 못 보았냐며 이것은 아동학대라며 자신은 바른 소리를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저는 결론적으로 그 아이는 화장실을 가지 못했고 우리로 인해 기분이 상한 부모가 아이를 챙겨서 바로 데리고 나가게 되어 급한 경우에는 길에서 실례를 할 수도 있다고 남의 가정교육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서로의 의견은 좁혀지지 않았고 이런 기분으로 음식을 더 먹다가는 체할 것 같았습니다. 아내도 제가 더 이상 먹지 않자 혼자 먹기에도 그랬을 거고 마음도 불편했는지 젓가락을 내려놓았습니다. 왜 자신의 편을 들지 않고 남의 편을 드냐며 서운해했습니다. 그 상황에서 아내의 편을 들었다면 언성이 더 높아졌을 거고 꼬마를 생각했던 아내의 친절은 오히려 꼬마를 불안하게 했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제가 정답이라는 생각은 하진 않지만 유사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저는 똑같이 행동했을 것 같습니다. 아내가 꼬마를 데리고 화장실을 가게 두었다면 분명 꼬마의 엄마는 화장실 가는 아내를 쫓아가서 한 소리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물론 저는 그런 아내를 좋아합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앞, 뒤 가리지 않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옳은 일에도 혹시 그로 인해 피해를 보진 않을까 괜한 오지랖은 아닐까 하고 눈치를 보았는지도 모릅니다. 꼬마의 부모와의 갈등을 피하려다가 아내와의 갈등이 일어나버렸습니다. 그들이 떠나는 걸 보고 우리도 일어났습니다. 아마 직원 분은 옆 테이블이 가고 난 후 정리를 하면서 감정 다툼을 하는 우리 부부의 모습이 의아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꼬마로 인해 손님들이 약간의 언쟁을 하는 모습을 보았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괜찮냐고 물어오거나 궁금해하지도 않았습니다. 괜찮냐고 물어왔다면 그 친절함에 고마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에게 아까 전 제 모습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자신의 일만 하던 직원같이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미 자존심을 부리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도리어 돌아오며 아내는 저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말을 건넸고 저는 혼자만의 동굴에 들어가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습니다.


 갈등은 초대도 하지 않았는데, 어느샌가 행복을 쫓아냈습니다. 오전의 알찼던 시간과 오후의 맛있었던 고기들은 모두 날이선 기분으로 인해 가리워졌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둘 다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잠에서 깨어난 둘은 대화로 다시 하나가 되었습니다.


 아내는 다른 사람의 일로 인해 갈등이 생기기 전, 제 말에 귀 기울여주기로 했습니다. 저는 남의 편이 아니라 아내의 편이 되기로 했습니다. 사실 갈등이 커지며 아내가 겪을지도 모르는 불편함과 마음의 상처를 걱정한 것이지 옆 테이블을 걱정한 것이 아닙니다.


 같은 행동이라도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서운함도, 외로움도 느낄 수 있습니다. 아내를 생각해서 한 행동이었음에도 그녀는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해서 남의 편을 들어서 서운하고 외로웠다고 했습니다.


 갈등 상황이 끝나고 난 후, 아내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그녀의 입장에서 생각했어야 했습니다. 저 또한 아내와의 갈등으로 제가 옳았다는 걸 시위라도 하듯 제 생각만을 이야기했던 것을 후회합니다.



앞으로는 ‘남’편이 아닌 ‘님’ 편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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