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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이랑 Apr 23. 2023

버리지 못하는 것들

필요와 관계없이 좋아한다고

 연애 초반에 아내는 항상 굽 높은 구두를 신었습니다. 낮은 것도 8cm, 높은 것은 11cm였습니다. 아내의 키는 158cm이고, 제 키는 173cm라 굳이 높은 힐은 신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높은 힐을 좋아해서 저도 깔창을 넣어야 하나 고민을 할 정도였습니다.  예쁜 힐도 많았는데, 세월이 흐름에 따라 힐을 꺼내는 일이 적어졌습니다.


 편하게 운동화를 신다 보니, 힐은 신발장에 모셔두다가 지인들에게 주거나 버리게 되었습니다. 몇 족만 신발장에 고이 모셔 두다가 기분 내고 싶을 때만 신었습니다. 그 마저도 얼마 전에 발목이 이유도 모른 채 부은 뒤, 통증이 계속 수반되어 도수치료까지 받게 된 이후로는 신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발목 인대가 15도 늘어났다고 하는데 수술이 가능한 각도이나 아내는 비수술로 회복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주사 및 도수치료 등으로 회복이 되지 않아 조금 쉬었다가 다른 병원으로 알아볼 계획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제 힐은 무리라고 생각되어 버릴까 고민을 합니다.


 “기분 내고 싶을 때 챙겨 가서 잠깐 거닐면 되지. 굳이 버릴 필요까지 있어?”

 “그럴까? “

 “내일 바다 가고 싶다며? 그때 챙겨서 잠깐 거닐자.”

 “아직은 무리야. 보호대 없이는 통증 때문에 걷기도 힘들어. 보호대 차면 힐은 못 신어. 나중에 회복하면 신지, 뭐.”

 저에게도 아내의 힐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XL사이즈의 옷들입니다. 살을 빼서 입겠다며 가지고 있어 몇 년째 옷장의 한편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다이어트했을 때, 2XL 옷들은 아까워하지도 않고 바로 버렸습니다. 그런데 살이 찌고 나니, XL 옷들은 버리지 못하고 계속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다이어트는 연초에 결심을 하게 됩니다. 해 본 적도 있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성취감을 느껴 본 적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꾸준히 관리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다이어트에 성공하면, 아내가 예쁜 옷을 사 줄 테니 지금 가지고 있는 옷을 정리해도 되겠지만, 마음이 버리는 것을 거부합니다.


 아내가 힐을 버리지 못하는 것도 그녀의 마음이 거부하는 것이겠죠. 필요와 관계없이 좋아한다고요.


 p.s. 아내가 글을 읽더니 정정해줍니다.

“자기야, XL 아니고 L야.”

“입을 수 있으려나, 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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