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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이랑 Jun 09. 2023

아내 몰래

창문을 닦았습니다.

 제목 보고 스릴 있는 사건이나 일탈을 기대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다음에 일탈이 있다면 꼭 적을게요. 그런데 아내가 1호 독자라서 몰래가 가능하지 의문입니다.


 겨우내 닫고 있던 창문을 더워지면서 열게 되었습니다. 방에 있는 창문들은 괜찮은데, 싱크대 뒤 쪽 창문이

공사장 방향이라 먼지로 가득했습니다. 모기장의 구멍이 먼지로 메워질 정도이고 하늘마저 뿌옇게 보입니다.


 사실 저희 집의 가장 큰 장점은 거실에 들어오는 바람이 시원한 것인데, 먼지로 가득한 모기장을 지나오는 바람이 계속 신경 쓰였습니다.


 아내와 함께 봄맞이 청소를 하며, 창문을 틀에서 빼내서 닦자고 제안했습니다. 아내는 극구 만류했습니다.

 “자기야, 우리 5층이야. 실수로 놓쳐서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큰일이야. 아래에 사람이나 자동차라도 있으면 어쩌려고 그래. 내년이면 이사할 텐데 일 만들지 말자. “

 “그럼 호스를 연결해서 물로 쏘는 것도 무리겠지.”

 “응, 공기 청정기 있으니 믿어봐야지.”


 공기 청정기를 믿기엔 육안으로 보이는 먼지가 가구나 가전에 눈에 띄게 내려앉습니다. 작년에 엘리베이터에서 공사장 관련 소음 및 먼지 민원 서명을 받던 것이 생각납니다. 다음에 이사할 곳은 근처에 공사장은 없는지 꼭 체크해야겠습니다. 마을을 철거하고 아파트 대단지가 들어오는터라, 소음과 먼지가 상상 이상입니다.

닦은 후 창문입니다. 닦기 전 모기장은 너무 더러워서 생략

 오후 근무라 아내를 출근시키고, 보통은 잠을 더 청하거나 침대에서 뒹굴거립니다. 하지만 오늘은 금요일이니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그동안 염두에 둔 창문을 청소하기로 합니다. 사실 타깃은 모기장인데, 제일 바깥에 있기에 모든 창문을 다 분해합니다.


 싱크대 위 쪽이라 손이 조금 불편했습니다. 게다가 하나를 꺼내며, 생각지 못한 무게에 괜한 일을 벌인 건 아닌가 하는 후회가 몰려왔습니다. 모든 창문을 다 뜯어내고, 모기장을 손에 들었습니다. 고생 끝에 든 모기장은 약간의 희열마저 느꼈습니다. 욕실로 가져가서  샤워기와 솔을 이용해 닦아냈습니다. 2년 동안 묵은 먼지가 씻겨 내려갔습니다.

이제 다시 조립을 시작합니다.

‘ 어, 어!!‘

모기장가장 바깥인 데다가 팔을 완전히 뻗어야 하는 위치라 불안해졌습니다. 혹시 밀어서 끼우다가 떨어뜨리는 건 아닌가 신경이 쓰였습니다. 잠시 안으로 가지고 와서 내렸다가 방법을 바꾸었습니다. 안에서 밖으로 끼우려니 힘쓰는 방향 때문에 걱정이 되어 창틀 밖으로 모기장을 꺼내서 안쪽으로 힘을 넣어서 끼웠습니다.

 창문은 무게는 있었지만 위로 올렸다가 아래로 내려면 바로 맞아서 끼우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모두 조립하고 나니 성취감과 함께 땀으로 가득합니다. 아내 몰래 창문을 청소했습니다. 청소하면서 학창 시절 신문지 들고 창문을 닦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습니다.


 지금은 출근 중입니다. 아내와 별거하는 느낌인 오후 근무가 끝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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