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후회

필사 25.10. 20

by 진이랑

누군가 무심코 하는 말이 상처가 될 때가 있습니다. 특히 가까운 사람이 하는 말은 더 가슴에 남을 때가 많습니다.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나서 돌이킬 수도 없는 학창 시절을 떠올립니다.


중학생 시절부터 어머니는 우리 집 형편을 생각해서 장남인 제가 실업계를 진학해서 취업을 했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당시에 저도 공부를 좋아서 했던 것은 아니고, 특별히 다른 재능도 없고, 취업의 수단으로 공부했던 터라 그러기로 했습니다.


중 1까지는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는 친구들과의 격차도 벌어지고, 중 2 이후부터는 어차피 실업계에 갈 거라며, 공부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아버지는 대학에 가야 한다며 인문계를 고집했습니다. 평소 아버지와 진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던 터라 이리도 완고하실 줄 몰랐습니다.


고등학교 때에는 정신을 차리고, 공부를 해야 했지만 중학교 때 벌어진 격차는 줄이기 어려웠습니다. 집중해서 공부만 해도 쉽지 않았지만, 당시에 종교활동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교회 고등부 회장도 하고, 찬양인도를 하고, 찬양집회도 준비했습니다. 심적으로 어려울 때라 더 의지했던 것 같습니다.


결전의 날, 수능을 본 후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수리영역을 평소보다 못 본터라 수능 등급이 평소 모의고사 등급보다 낮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재수를 권유하셨으나, 재수를 한다고 해서 더 잘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성적대로 가기로 했고, 성적에 맞춰서 지원한 터라 가 군, 나 군, 다 군 모두 합격했습니다. 도에서 인지도가 있는 C 대학을 갈지, 노동부에서 지원하는 신생학교 H대학을 갈지 고민했습니다. 한 곳은 사립대학이라 등록금이 비싸서 제외했기 때문에 2곳을 고민했습니다.


어머니와 상의 끝에 노동부에서 지원하는 H대학을 갔습니다. 취업률이 높다는 홍보를 했고, 집에서 통학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난 후,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습니다. 그 친구는 같은 반이었고, 반 등수로도 10등 차이가 저보다 못했습니다. 그는 성적 때문에 지역의 사립대에 갔다가 편입해서 C대학을 갔습니다. 그의 노력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자신은 C대학을 다니는데, 저는 H대학을 다닌다며 무시했습니다. 그 이후 그 친구랑은 따로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친구에게 열등감을 느끼진 않지만, 자존심이 상하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H대학을 간 걸 후회하지 않습니다.


사실 이제 대학을 졸업한 지도 20년 가까이 되고, 졸업한 대학에 인생에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집에 가서 가족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어머니께서 제 모교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H대학이 이제는 이 지역에서 인지도도 낮고, 지원하는 사람도 없어서 예전 같지 않아. 동네에 공부 못한다는 애도 H대학 갔다더라. “

더 직설적으로 말씀하셨지만, 글로 옮기며 순화시켰습니다.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사실 속상했습니다. 대학은 혼자만의 선택이 아닌 어머니와 대화를 통해 결정했는데, 다른 사람도 아닌 어머니께서 H대학의 인지도가 안 좋다는 이야기를 가족들이 모인상황에서 저에게 하는 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결정은 제가 했습니다. 어린 시절, 중요한 결정이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어머니와 함께 했지만, 이제는 아내와 상의합니다. 그리고 이런 미묘한 감정들은 어머니께 말씀드리지 않지만, 글로 옮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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