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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이랑 Nov 16. 2021

출퇴근은 직장인의 숙명

만원 지하철은 무섭다

 부모님 댁은 천안이다. 천안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직장 생활을 서울에서 하게 되어 상경을 했다. 맥도널드에서 본사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 재지 않고 서울로 올라왔다. 어머니는 맥도널드는 천안에도 많은데 왜 서울까지 가냐고 물으시며 서운함을 나타내셨었다. 부모님의 지원을 받을 수 있던 형편은 아니었기에 처음은 고시원에서 지냈다.


 월급을 받으며 약간의 보증금을 모으고 원룸으로 이사를 했다. 외식업이었고 주기적으로 매장이 옮겨졌다. 당시에는 혼자 지내고 있어 옮겨지는 매장마다 이사를 했다. 서초-한양대-이수-잠실-논현-김포로 이사를 했는데 인근으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이사를 하는 것은 당연시했다. 결혼을 하고 나 혼자만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직장을 따라 이사를 하는 건 여건 상 어려웠다.


 다행인 것은 더 이상 직장을 따라 옮겨 다닐 일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이번에 집을 알아볼 때 서울보다는 인천이 구하기 쉬웠다는 것이다. 인천을 알아볼 때만 해도 인근에서 구직할 생각이었는데 지인 소개로 직장을 옮기며   서울로 출퇴근을 하게 되었다.


 거리가 있다 보니 급행을 타고 다니는데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행을 타다 보니 항상 만석이다. 처음 출퇴근을 할 때는 넘치는 사람들로 깜짝 놀라고 디딜 틈도 없어 혼란스러웠다. 출퇴근하다가 지쳐서 업무보다 출퇴근이 부담스러울 지경이었다. 사람들 사이에 끼어가다 보니 원하지 않는 접촉도 있고 인체 열로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어느 날, 시간을 맞춰서 간 것은 아니었는데 부평에서 출발하는 지하철을 타게 되었다. 앉아서 가니 사람들에 치이지 않아도 되어 한결 좋았다. 신도림에서 7호선으로 환승해야 했지만 조금 더 걷더라도 많은 사람들 틈에 있는 것보다 나았다. 출근이 편해지니 스트레스가 줄어서 이후 부평행 시간을 맞춰서 나오게 되었다.


 퇴근은 아직도 만원 지하철이라 고통의 나날이었다.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을 피하고자 퇴근하자마자 뛰어가다시피 했는데도 줄의 앞에 서건 뒤에 서건 끼어 가는 것은 여전했다. 1호선 급행을 피해 7호선도 타보았는데 똑같은 만원 지하철이라 차라리 고통받는 시간을 줄이는 게 나았다.


 아내는 마음 편히 가지고 천천히 나오는 것 어떤지 제안했다. 퇴근을 여유 있는 마음으로 하고 거리공원 한 바퀴를 거닐고 신도림 역으로 걸어가서 40분경에 오는 특급행 열차를 탔다. 30분 정도 늦게 탔지만 부평에서 아내를 만나는 시간은 같았다. 평소에도 아내와 함께 부평에서 걸어오기 때문이었다. 처음에 아내를 신도림에서 만나서 같이 오려고 했는데 넘치는 사람들로 같이 오는 것은 서로 챙겨야 해서 힘들었다.


 결국 몇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최선의 출퇴근 경로를 확보했다. 출퇴근 시 소요시간보다 사람들의 밀집도가 더 힘들게 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아내는 동일한 출퇴근 수단을 이용하는데 두 달 가까이 별다른 불만 없이 다녔다. 아내에게 이렇게 힘든데 왜 아무 말도 안 했는지 물어보니 불평불만을 해보아야 바뀌는 것은 없어서라고 대답했다. 우문현답이었다. 출퇴근은 직장인의 숙명이지만 만원 지하철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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