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웰 몰츠 성공체험; 자아를 깨워라
몰츠가 아인슈타인을 만날 때
드디어 해리가 샐리를 만나듯이 이 장에선 몰츠가 아인슈타인을 만나는 시간이다. 이론적인 측면에서 양자역학은 다소 복잡하고 추상적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몇 가지 핵심 개념을 간단히 설명한다. 과학자들은 미립자의 이중성에 대해서 아주 호기심이 많았다. 그러니까 이 대목부터는 심리학자도 미립자에 관심이 많아야 한다. 이론 물리학자들은 양자역학에서 미립자 (예: 전자)가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동시에 가진다고 믿고 있다. 그전까지 고전물리학, 뉴턴 역학에선 입자이거나 아니라면 파동이라고 주장해 왔었다. 둘 중에 하나이어야 했으며 그렇게 고전 물리학자들은 되었을 거라 믿어왔다. 그런데 어찌 되었는지 이젠 이것이 두 개는 아니다고 했다던 장본인이 바로 아인슈타인이고, 현대물리학, 양자역학이다.
이는 고전 물리학, 뉴턴 역학과는 다른 점으로, 미립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정확히 동시에 알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 과학은 미립자는 확률적으로 다양한 상태에서 존재하며, 관찰자의 개입에 따라 그 상태가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해서 1927년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실성 원리가 바로 그것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만약 전자의 위치를 알면 속도를 정확하게 알 수 없고, 속도를 정확하게 안다면 위치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는 주장을 했다. 이 말을 쉽게 풀이하면 두 개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1935년에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ödinger)는 코펜하겐 해석(Copenhagen interpretation)에 대한 비판을 표현하기 위해 유명한 슈뢰딩거의 고양이 역설(Schrödinger’s cat paradox)을 제안한다. 이 역설은 양자역학에서 중요한 개념을 설명하고 있는데 그가 사용하는데 슈뢰딩거의 고양이 역설을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슈뢰딩거는 고양이를 상자 안에 넣었다. 고양이, 그 안에 독약이 든 약병, 그리고 방사능 원자가 들어있다. 방사능 원자의 붕괴가 감지되면 독약이 풀어져 고양이가 죽는다. 만약 반대로 방사능 원자의 붕괴가 감지 안 되면 독약이 풀지 않을 테니 고양이는 살아 있게 된다. 그는 동일한 시간에 고양이가 죽고 살 수 있는 상태로 설명했다. 이는 양자역학에서 상태의 중첩성을 보여주는 한 예시가 된다. 이렇게 슈뢰딩거의 고양이 역설은 양자역학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제시된 상상의 실험으로, 양자역학의 기본적인 특성을 탐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것도 아주 쉽게 설명하면 관찰자는 죽은 고양이와 산 고양이 두 개가 중첩되어 있지만 산 고양이든지 죽은 고양이든지 어느 쪽이 되었든 간에 하나만 목격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것도 위와 같이 쉽게 풀이하자면 두 개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1975년쯤에 가설이 아닌 실제 실험을 한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은 20세기 물리학의 거장으로, 양자 전기역학(Quantum Electrodynamics, QED) 분야에서 중요한 기여를 한 과학자이다. 파인먼이 이중 슬릿 실험을 강행했다. 파인먼의 연구는 현대 물리학의 기초를 다졌으며, 양자역학의 경로 적분 공식화, 양자 전기역학의 이론, 과냉각 액체 헬륨의 초유체 물리학, 그리고 쪽입자 모형을 제안한 입자 물리학의 연구로 유명하다. 특히 양자 전기역학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1965년 줄리언 슈윙거, 도모나가 신이치로와 공동으로 노벨 물리학 상을 받기도 했고 그의 업적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과학자와 학생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그의 슬릿 연구에서 밀폐된 공간에 두 개의 슬릿을 놓고 미립자를 쏘았을 때, 관찰자가 관찰하면 입자의 성질로 나타나고, 관찰하지 않으면 파동의 성질로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이 실험은 양자역학의 핵심적인 개념을 보여주는 실험 중 하나이다. 이것도 쉽게 설명하자면 미립자가 한 개의 형태가 아닌 두 개의 형태를 유지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 하나 더가 있는데 그것이 미립자가 우리의 생각, 의식, 관찰에 의해 그 상태가 결정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실험이기도 했다. 참고로 위에 나열한 모든 과학자들은 시대는 조금씩 다르지만 당대에 과학계를 석권했고 하나같이 노벨상을 탄 과학자들이다. 그렇다면 여기서부턴 심리학자, 자기 계발 학자도 영감을 받아야 한다.
그러니 위에 사실을 다시 한번 모두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위에 보는 예문과 주장에서 양자역학은 전자의 위치와 속도, 고양이의 죽음과 삶 그리고 빛의 입자와 파동은 관찰자의 생각에 무게가 더 실리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만약 양자역학의 현상이 관찰자의 생각에 관여한다면 양자역학은 심리학과 특히 자기 계발 심리학에 인접하단 뜻이 된다. 그래서 생각의 힘에 대해서 과학자들은 인간 심리에 흥미를 가지게 되고 있듯이, 양자역학에 대해서 심리학자는 미립자의 이중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양자역학은 미립자가 우리의 의식과 상호작용한다는 개념을 제시한다. 간추리면 우리의 생각, 의식, 뇌파가 미립자의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으로 과학적 중지가 모여지고 있다. 따라서 긍정적인 생각과 의식은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양자역학은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놀라운 개념들로 가득한 이론이다. 생각이 현실을 만든다는 주제는 특히 흥미로운데, 우리의 생각이 어떻게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숙고해 볼 필요가 분명해졌고 지금까지 모든 심리학과, 양자역학 그리고 더 나아가 종교 과학까지 우리의 발견을 객관화하기 위해서라도 우린 아인슈타인의 발견에 집중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니 이쯤 해서 그의 공식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분명해졌다.
E = MC2
여기에 E는 에너지로 단위는 Joule이다. 또 여기에 M은 질량이고 단위는 Kg이다. 그리고 계수는 C, 빛의 속도로 단위는 m/sec이다. 수학자들은 간단하게 단위만 다음과 같이 기재하는 것이 습관 해 되어있다. 단위만 쓰면 이렇게 된다
Joule = Kg (m/sec2)
으로 Joule는 1 Kg의 물체를 1m를 이동하는데 1m/sec2
여기서 우리는 E, 에너지 즉 파동은 보이지 않고 보려고 해도 볼 수가 없다. 그러나 M, 입자는 질량으로 되어 있어서 관찰자는 볼 수 있다. 다시 아인슈타인의 공식을 뜯어보자
M = E/C2
보이는( 또는 볼 수 있는) 질량, M은 보이지 않는( 또는 볼 수 없는) 에너지,E와 같다. 빛의 속도는 300,000 Km/sec이다. 이것은 수학에선 상수, C는 변하지 않는 숫자이기에 연관성에서 배제시키면 이 수식의 역학관계는 M과 E뿐이어서 이렇게 표현한다.
M = f (E)
이다. 이 뜻은 E, 보이지 않는( 또는 볼 수 없는) 것과 M, 보이는( 또는 볼 수 있는) 것이 등식 관계이다. 즉 보이는( 또는 볼 수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또는 볼 수 없는) 걸로 거꾸로 설명하면 보이지 않는( 또는 볼 수 없는) 것은 보이는( 또는 볼 수 있는) 걸로 변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 여기서 엄청 중요한 깨달음이 있음을 섭리적으로 알 수 있다. 여기에 E가 되는 가능한 변수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말, 믿음, 꿈, 생각 등등이다. 즉 몰츠 박사의 상상의 단어들이다. 공통점은 모두가 추상명사다. 공식에 대입해 보면
"말 = 네가 말(E) 한 그대로 실체(M)가 이루어져 너희 눈앞에 되어진다. 이 말은 "너의 말 한 대로 된다"라는 우리 명언과도 일치한다. 그리고 또
믿음 = 네가 믿음(E)은 그대로 실체(M)가 이루어져 너희 눈으로도 볼 수도 손으로 만질 수도 있게 된다.
생각 = 네가 생각(E) 하는 대로 실체(M)가 이루어져 너희 눈으로 손으로 그리고 만져질 있게 된다.
꿈 =네가 꿈(E) 꾸는 그대로 실체(M)가 이루어져 너희 눈으로, 손으로 그리고 느끼고 그걸 사랑할 수도 있다."가 된다.
추상명사는 언어에서 추상적인 개념을 나타내는 명사이다. 확실해야 하는 고전물리, 뉴턴 추종 과학자들은 그리 애용하는 단어가 아니다. 왜냐하면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학은 확실해야 매력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고전 물리학이 양자역학으로 전이하면서 보편적인 보통개념에서 추상개념으로 우주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다. 그러니 우리가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이젠 쇄신을 할 때가 되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나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양자역학적 개념으로 쇄신해야한다.
괴장히 흥미로운 사실로 이러한 명사는 물리적으로 보고, 만지거나 측정할 수 없는 개념을 표현한다. 예를 들면 “사랑,” “희망,” "삶"과 같은 단어들이 추상명사에 해당한다. 이런 단어들은 무형적이며 실체적으로 셀 수도 만져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추상명사는 언어로써 이러한 개념이나 사고를 표현하는 데 사용해 왔다. 추상명사는 우리가 감정, 아이디어, 개념, 자질, 품질 등을 표현할 때 자주 사용되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 더 많이 사용하고 입에 달고 사는 단어가 바로 추상명사이다. 이런 단어들 때문에 우리 인류는 수십만년간 보이지 않는 걸 꿈꾸어왔던 것이며 이것, 즉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야말로 만물의 영장의 일이었음을 증명해 주고 있고 있다. 이러한 단어들은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없지만, 우리 언어와 사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고 앞으로도 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에서 추상명사를 소홀히 다루면 안 된다. 그렇다면 이 개념으로 더 확장시키면 다음과 같다
“서언”,”소원”,” 빕(빌다의 명사)”,” 갈망”, “애절함”, “간청”,”희망”, “사랑”,”기쁨”,” 감사”등
모두 추상명사이다. 그런데 여기서 경향(Trend)을 찾아내는 것이 목적이다. 해서 마지막 세 개만 위에서 만든 방정식에 대입해 보면 다음과 같다.
사랑=네가 사랑 그 연인(E)이 그대로 실체의 연인이 (M)이 되어서 너희 눈으로 볼 수 있게 된다.
기쁨=네가 기뻐하고 바라던 일(E)이 그대로 실체 (M)로 이루어져 너희 눈으로 볼 수 있게 된다.
간청=네가 간청(E) 하는 그대로 실체 (M)가 되어 너희 눈으로 볼 수 있게 된다.
정리하면 인간이 하는 모든 상상은 아인슈타인의 공식에 의해서 설명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참 기가 막힐 정도로 정확하면서 등식 관계가 이루어지는 걸 수식으로도 보고 있어서 기쁘다.
양자역학에서 생각의 힘은 미립자가 우리의 의식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확실해졌으니 이젠 이걸 확장해서 다른 영역에 적용시켜야 한다. 의식은 신경과학이나 심리학에선 조그마한 영역이다. 그러니 그뿐만이 아니라 의식보다 엄청 큰 부분을 차지하는 잠재의식 그리고 그것보다 더 큰 무의식과도 상호작용할 수 있음을 제안할 수 있다. 그러니 정신 신경과학의 영역을 확대 적용해야 한다.
우리의 생각, 의식, 뇌파가 미립자의 상태에 의식, 잠재의식,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해서 긍정적인 상상은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우리는 복받은 자아, 세상이 필요한 자아, 그리고 남과 다른 특별한 자아 이미지로 반드시 내안에 재 정립시켜야 한다. 그러면 어디에도 어떤 경우에라도 추호의 흔들 임 없는 건강한 자아 이미자는 성공의 어머니가 된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였던 시대는 해보고 또 해보면서 찾아가는 시행착오법 (Trial and Errof)이였다. 그런데 우린 휠씬 앞서갈 수 있는 양자역학의 개념을 추가시키면 우린 이미 축복받는 거나 진배가 없다. 우린 무엇이든지 추상명사를 앞에 걸고, 하기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 그러니 당신 안에 있는 건강한 자아를 정립해야 하고 이제 자아를 깨워야 한다.
다음의 연재에선 말과 그에 대해서 다룰 것이다. 말은 내가 먼저 듣는다. 그리고 말은 에너지다. 상상과 말의 콤비는 보이지 않는( 또는 볼 수 없는) 걸, 보게 ( 또는 볼 수 있는) 만드는 힘을 배가 시킨다. 또 쓴 글은 내가 먼저 본다. 글은 생각이다. 상상과 글의 콤비는 보이지 않는( 또는 볼 수 없는) 걸 보게 ( 또는 볼 수 있는) 만드는 힘을 배가 시키는 연구도 다음에 연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