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웰몰츠식 성공체험; 자아를 깨워라
기저귀찬 큰아이의 탈출
켄터키에 이사 가자마자 처음엔 월세로 살았다. 그것밖에 돈이 없었다. 보통 이런 프로젝트는 일 년 후에 후임자에 넘겨주고 다시 본사로 귀사 하는 플랜이었다. 그 프로젝트 마감 후엔 다시 동부 쪽 배치가 될 줄 알았는데 졸지에 공장장으로 승진을 시켜 주는 거었다. 좋긴 한데 이 뜻을 잘 해석해야 했다. 미국 직장 생활은 앞에서 너무 나이스(Nice)하고 무슨 말을 해도 너무 예의스럽게 하기 때문에 눈치가 없이 자기 생각만 하다가는 망조가 든다.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회사가 주는 신호를 잘 읽는 것도 미국 직장생활에 필수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 싸인, 즉 새 발령은 나에겐 이건 아주 눌러 있으라는 신호였다. 그래서 눌러서 좀 기회를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월세로 나가는 돈이라도 아끼겠단 생각으로 집을 구입해하기로 맘먹었다. 모게이지를 내는 만큼 세금액을 공제해 주기 때문에 사는 것이 월세보다 훨씬 절약이었다. 서둘러 둘러본 집이 언덕 아래에 있고 큰 나무가 집 앞에 있는데 그때가 마치 가을이어서 주변에 단풍이랑 어우러져서 배경이 아주 보기에 좋았고, 옆집에 네가 좋아하던 목련나무랑 어울려 오는 봄엔 젊은 베르테르가 자연스레이 떠올릴만한 집이었다. 그 당시 1 갤론 휴발류 가격이 85 전할 때, 이걸 환전하면 1리터당 268원이다. 학교 기숙사에만 살던 내가 돈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때 당신 금융권이 - 서브프라임이 터지기 한참전이여서 - 집값의 5%만 내면 은행에서 나머지 큰 목돈을 대부해 주웠다. 몇 개월 모은 월급으로도 충분했다. 산채 만한 큰 나무의 가지가 길가까지에 놓여있어 맘엔 썩 들지 않았지만, 자꾸 보니 그렇게 험잡을 수도 없었는데 , 아내가 좋다는 한마디에 아무 생각 없이 계약금을 치렀다. 여기 이사 올 때쯤엔 큰아이는 간신히 걸음을 띠고 있었고 둘째애까지 방금 나와서 둘째애가 방바닥을 기어 다니고, 특히 작은 앤 서고에 들어가 책 속에 숨어 지내는 걸 좋아했다. 이렇게 새로 낳은 애가 발발거리고 이방 저 방을 기어 다니고 있는 때에 잠시 큰 놈을 방심했었다. 기저궈찬 큰 녀석 집을 탈출해서 길가로 한복판을 활보를 하고 다녔다. 우린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 거리엔 차가 분주하진 않았어도 간혹 왕래가 있었는데 우리 집은 언덕 내려가는 중간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내려오는 차들은 속도를 내었고, 올라가는 차는 엔진소릴 거렁거렁 내며 그 언덕길을 기어 오르곤 했었다.
아뿔싸! 큰 아들 녀석이 애엄마가 잠깐 잠든 사이에 집울타리를 벗어나서 아짱 아짱 길거리 걸어 다니는 걸 전혀 몰랐다. 애 둘이 고만 고만 하고, 애엄마는 산후 조릴 해야 해서 뉴욕에 계신 장모님을 모셔오려 했지만 꼬장꼬장한 장모님이 뉴욕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코빼기도 볼 수 없었다. 나는 직장생활과 산모의 산후조리로 바쁜 그 사이에 이 사달이 났었다. 난 직장에서 안전사고 발생으로 한창 바빠있었고, 아낸 피곤해서 소파에서 잠깐 잠이 들었나 보다. 집 앞에 차들이 주행하는 길목에, 그것도 언덕 내려가는 길에 이 아이 갑자기 길가 정복판에 서 있으니 학교 버스운전사가 어찌 애들 보고…… 버스 세울 시간이 있었길래 다행이지, 정말 생각하고 싶지도 않을 사고를 당할 뻔했다. 천행으로 버스는 애 앞, 바로 앞에서 괭음을 내고 섰다.
“끼~익 ㄲㄲㄲ”
애는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고 자기가 앞에선 차에게 손을 흔들어 대고 있었다. 그때서야 얘 엄마는 차 소리에 놀래서 일어나 보니. 애가 없어진 걸 알고 길로 튀어 나갔다. 길 한복판에서 학교 스쿨버스는 서있고, 버스를 뒤따라 내려오던 차도 아래서 올라가던 몇몇 차도 길을 막고 지그재그로 서 있었는데 그 중앙에서 우리 애가 생글거리고 있었다. 그것도 기저귀 찬 슈퍼맨처럼 서있었다. 참말로 이 버스 운전수가 내려가다 이 아이를 발견했길 망정이지 큰일 날뻔했었다. 다행스럽게 버스가 제때 서 주었다. 정말 소름 끼치는 일이었다.
그날로 우리는 교육청에 끌려가, 그런 다신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사과문까지 쓰고 나왔다. 운전기사엔 죄송하다고 굽뻑~ 굽뻑 ~ 사과를 엄청해대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왜? 집은 그러니까 언덕위이여야 하는 줄 그때 알았고, 하얀 집이어야 하는 줄도 알았다. 언덕위이여야 꼭대기까지 힘들게 올라간 차는 내려 갈길이기에 차속도를 줄이고, 그 꼭대기 멋있는 하얀 집여야만 그걸 눈요기하면서 차는 서행하기 때문에 언덕 위에 하얀 집이었다면 이런 위험한 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아 주 낮았다. 그 사고 전까진 우리 집이 좋아 보였다. 그런데 그 후론 그렇지 않았다. 살면서 알게 되었지만 그 대형 나무는 가을이 되니까 엄청난 낙엽이 떨어져 청소하기가 여간 어려움이 아니었다. 그리고 워낙에 오래된 나무의 뿌리가 집에서 나가는 모든 하수구를 실타래처럼 막아 버렸다. 그러니 이런 사고까지 난 마당에 다른 집을 서둘러 찾아볼 수 밖엔 다른 방도가 없었다.
기저귀의 난동이 발생한 지 몇 개월이 지난 뒤에 달력에나 있을까? 만한 그림 같은 언덕 위에 집을 우린 드디어 발견했다. 이번엔 그 집에 애엄마와 내가 같이 꽂혔다. 애엄만 결혼 전에 나에게만 꽂히는 줄 알았는데 집에 관한 한 아주 쉽게 꽂혔다. 한번 꽂히면 몰입하는 스타일이었다. 그 집은 버리아( Berea) 대학교 캠퍼와 인접해 있었고, 특수 부유층들이 사는 동네였고, 딱하고 들어서자마자 느낌이 달랐다. 사열하듯이 쭉 들어서있는 개나무의 꽃이 무슨 하늘의 눈송이처럼 내렸다. 공기도 더 깨끗하고, 일단 언덕 위에 있고 유리창이 많아서 밖이 환히 보였다. 특히 난 아침 해돋지가 있으면 허리까지 쑤욱하고 햇빛이 기어 들어오는 좋은 집이었다. 아침 7시 정도면 햇살이 집안 가득 들어와 찼고, 대청마루 옆에 작은 카페식 방에 앉아있으면 커피 한잔이 자연스럽게 생각나게끔 하는 분위기를 스스로 잡는 집이었다. 미국 사람이 디자인한 건데 약간 일본식 스타일의 독특한 유리창, 창호지 창살인데 창호지대신 유리가 낀 창으로 되어있다. 마루는 모두 소나무로 돼있어 집안에 냄새가 소나무향이 나는 것이 산장을 연상케 하고, 밖은 지붕이 하늘로 치쏟은 듯해서 마치 눈이 많은 지방에서나 볼 수 있는 스웨덴식 집이었다. 상대적으로 이 집 바로 길 건너서 앞에 나지막한 집이었는데 도요타 사장 집이었다. 아내는 내가 요술램프에 나오는 무슨 푸른색의 요정, 지니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3가지 소원 중에 한 개를 꼭 들어주어야 한다는 간절한 눈으로 날 설득했다. 내심 이런저런 고심을 하던 터라서 해보자고 말을 던졌지만 걱정도 함께 하고 있었다. 아내는 세상물정 하나도 모르고 신앙생활만 하는 사람이고, 나는 육해군 공중전까지 치르면서 여기까지 버티겨 온 사람이었다. 그건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둘은 문제 해결 방법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하나는 화성 또 다른 하난 금성출신이란 다른 일반 부부보다 우리 화성보다 더 먼, 금성보다 더 먼 곳에서 온 것이 사람들이었다.
아내는 급히 찾아들어가 예배당에서 기도했다. 그래서 나도 슬쩍 아내 옆에 앉았다. 앉아서 몰츠의 상상으로 저 화려한 집에 살고 있는 나를 상상하기 시작했고, 애들이 차 없는 안전 한 곳에 있는 걸 상상하고 아주 점잖게 있었는데 아내 옆을 꾹~ 지른다. 말까지 하라는 것이었다. 집을 사려면 소리냄이 없이 효염이 없다는 것이었다. 날 또 "지니" 보듯이 하니 그러니 내가 또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난 다물고 있던 잎을 떼어서 말했다.
“저 집은 내 집이다.”
그때 처음으로 몰츠의 상상하다가 말까지 하게 되었다.
“나는 잘돼”
“잘되지”
“부자다”
애기가 옹일 하듯이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지만 언젠간 잘될 거란 미래형보다 현재형으로 말했야 돈 없던 나에게 그날부터 소원한 일이 이루어질 거란 생각 했다. 하면서도 완존히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다. 아내는 불안하고 늘 겁이 많은 여자이면서 나약했다. 아내는 그리곤 그것도 모자라서 그 집에 가서 일곱 바퀼 돌고 또 기도했다. 월급도 올랐지만, 이 정도면 식비 빼고, 줄일 것 줄인다고 하더라도 어림도 안 됐다. 워낙 저축한 게 없고 뭐라 내놓은 게 없던 처지라서 시세에 비해 난 터무니없는 낮은 가격을 제시했다. 근데 그게 아내가 땅을 밟아서 그런지 아뿔싸 말도 안 되는 계약이 수락되었다고 일하는 중에 통보가 왔다. 그다음은 나는 요술램프의 푸른색" 지니"(Genie; 윌 스미스가 주연했던 2019년 실사판”알라딘”에서 푸른색의 요술램프의 요정 이름)가 되어야 하는 순간이었다. 마법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마법을 해야 하는 나는 그다음 날부터 동전까지 톡톡 털어서 그 비싼 집을 크로징 (Closing)하는데 사용해야 했다. 그 넓은 잔디나 정원은 사람을 고용하지 않고 내가 직접 깎아야만 했다. 마법을 몰랐으니까 당연하지만 그래도 큰애가 안전해졌으니 난 좋았다. 우리 집이 야간 비탈길이었는데 지금도 비탈진 잔디는 내가 잘 깎는다. 이 동네에서 툐요타 사장집하고 우리만 빼고 모두 백인이었다. 애엄만 도요타 사장사모하고 집을 왕래했는데 일본 사람들은 그 사장인 남자나 사모나 영얼 참 못했다. 어떤 땐 일본어로도 얘길 하곤 했는데 아내하고 그 사모는 줄곤 그 안 되는 영어로 뭐라 하는데, 재민 더 있는듯했다. 여자들은 아무런 공통점도 친할 일이 없는데, 친할 일을 만들어가면서 서로가 친해졌다. 새로 이사 간 곳에서 도요타 사모님과 한국 아주머니는 백인만 있는 이 동네에서 돈독한 친화성을 보여줬다.
그런 중 어느 날 월마트에서 재미있는 일 벌여졌다. 난 자동차 오일 바꾸려고 긴 줄에 따라 서 있었다. 갑자기 나보다 머리 하나 더 있고 수염이 더불한 정비공 내게 성큼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네~ 근데?"
"어떻게 도와 드릴까요?'
나는 이 시람을 첨 보는데, 왜? 이렇게 친절한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엔진.. 오일… 좀"
"오케이! 선생님 차 열쇠 주세요"
나는 이상하기도 했지만 일단 달라는 열쇠를 줬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이 정비공은 그 긴 줄에 서있던 다른 사람들을 다 제쳐놓고 내차을 먼저 서비스해 주는 것이었다.
"이러지 안… 해.. 도"
"여기 다 됐습니다"
난 무진 부담스러웠다. 그렇다고 친절한 사람 보고 왜 그러냐고 정색할 수도 없고………. 근데, 이 친구왈
"이거 제 명함입니다"
"혹시나 사람 구하면 꼭 저에게 기횔 주십시오"
이 친군 내가 도요타 회사 사장인 줄 알았나 보다. 그곳에도 캐딜락을 타고 다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니 순진한 켄터키 사람들은 동양 사람이 없었던 이곳은 특히 동양 사람에게 특별한 대우를 해 주었고 그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나나 일본 도요타 사장을 닮고 싶은 것이 아니고 일본 회사에 일한다고 싶어 했었다. 그리고 일본 회사에서 3년간 일하면 일본에 몇 주 연수를 보내 주었다. 그때 여기 켄터키 힐빌리는 처음으로 켄터키를 떠나 본 사람도 있었다. 무엇보다 일본에서 기모노에다 게다짝을 신고 찍은 사진은 이들의 큰 자랑거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