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웰 몰츠의 성공체험; 자아를 깨워라
챔피언
회사 생활이란 게 창문 하나도 없는 에어 컨디션에 먼지 제로 방이다. 먼지가 불량품을 만들기 때문이다. 나는 출근 후엔 비가 오는지? 눈이 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모두 방이 빛으로부터 차단되어 있기 때문이다. 점심조차 그런 헌연 형광등밑에서 먹는다. 몇 개의 책상이 있는 나의 전용사무실은 내가 발로 밀면 바퀴 달린 의자는 여기저기 내가 원하는 테이블로 갈 수 있게 설계되어 있었다. 특히나 내가 있던 연구소는 한번 앉으면 일어날 일이 전혀 없었다. 집에선 시원한 지하실이 편해서 지하 생활을 더 많이 했다. 그랬더니 왼쪽 관절에 결국 운동부족에, 태양빛을 받질 못해서 칼슘부족 이상이 왔다. 그리곤 의사로부터 운동의 권유까지 받았다. 알다시피 축구장조차 은퇴 종료를 이미 받은 후에 살살하면서 살이 살살 빠지는 그런 운동을 찾아다녔다. 그러던 중에 하이웨이 루우트# 18을 지나가는데 간판에 하나가 내 눈에 스치는 게 있었다. 만여 개나 되는 영어 간판에 갑자기 한글이 지나갔다. 오랜만에 세종대왕의 글을 보니 매우 반가웠다. "거 도"란 한글이 눈에 확~ 스쳤던 것이었다. 난 다시 차를 돌려 다시 보니 "검도"라고 쓰여있었다. 그게 처음 미국에서 검도장에 발을 들려놓은 계기가 되었다.
검도장에 들어서니 죽도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했다. 옛날 생각이 났다. 고등학교 때 검도부와 유도부가 있었다. 나는 낙법을 제법 했었다. 유도는 내 몸을 건전하게 해 주었던 기억이었지만 검도는 선배들이 후배들 군기 잡아야 한다면 주로 때리는 용도로 사용해서 검도랑 엮긴 기억이 좋질 않았다. 그래도 어럼풋하게나마 머리 치기에 대한 기억이었다. 그때 한 달만 일단 해보자고 시작한 게 이젠 15년이 넘게 하고 있고 이젠 대한검도 4단을 준비하고 있다. 4단이면 사범이다. 어째 되었 건 검도를 시작한 후 내 눈이 엄청 빨라졌다. 한두 번의 대형사고를 이 검도 때문에 피할 수 있었다. 한 번은 2차선인데, 내 반대편 길이 한 30미터 줄이 쭉 서있고 움지일질 않았다. 아마 내 앞에 무슨 사고 가 있는 모양이었다. 반대쪽의 편도길은 아무도 없으니 안심하고 그 길로 들어서서 쭉 속력을 내서 질주해 나가고 있었는데 나랑 같은 편도에 기다리던 지프차(Jeep) 한대가 나처럼 기다리기 지겨웠는지 확 하고 내가 달리는 편도 앞으로 튀어나오는 거였다. 기다리기 답답했던 한놈이 중앙선 넘어 추월해 보려는 시도였다. 차마 백미러로 내가 달려고 있는 놓친 게 분명했다. 그걸 보고 핸들을 돌리고 브레이크를 밟고 한마디까지 하는 건 이건 예술이었다.
"어이~"
"이놈이"
"아싸"
"오케이"
이 의성어 모두 다 불현듯 튀어나온 차를 피하면서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들이다. 아마 옛날 같았으면 백 퍼센트 그놈 옆을 박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눈감은 지 오래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축구장에서 쫓겨나지 않았던가? 상대가 눈앞에서 슈팅할 때마다 미리 눈부터 감었으니까. 근데 지금은 좀 다르다. 아니 많이 달라진 거다. 어쨌든 내 눈 무진 빨라져 있었다. 그리고 끝까지 상대의 움직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있었다.
머리 치기를 수만 번을 동일한 동작을 연습했다. 처음엔 이게 이해가 않갔다. 그리고 난 개인적으로 동일한 동작을 반복하는 것에 본능적 알레르기반응이 있었다. 이런 무책임한 동작을 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백 차례 하는 게 도대체 이해가 가질 않았다. 논리적으로 이해가 안 가면 꼬장을 부리는 습관이 있었다. 그래도 하도 시키니 하는 둥 마는 둥 이렇게 시간이 지나갔다. 그런데 차츰차츰 일 년이 지나고 이년이 지나면서, 왜? 그런지 알게 됐다. 이걸 설명했주웠으면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동일 동작이 내 몸에 익숙해져 갈 때쯤엔 몸이 알아서 움직였다. 날아 들어오는 죽도를 피해야 한다는 생각을 할 필요 없었다. 그냥 팔과 허리가 알아서 움직였다. 팔에 두뇌가 생긴 것이다. 그러니 팔과 허리가 스스로 판단했다.
작년 가을 동부 검도대회가 있었다 모든 미국에서 막대기 들고 뭘 좀 하는 사람들은 다 모였다. 팔리세이트 팍( Palisades Park) 고등학교의 대형 체육관을 빌려서 개최하고 있었다. 들어가자 친구 마이클이 미리 와 있었다.
"하이! 존 뭔 일이냐"
"마이클! 일찍이네"
"항상 난"
"우리 팀은 어디"
"저기 표시 보이지! 그쪽이야"
"오케이"
"이따 봐"
이 친구 정형외과 아이리쉬 의사였고 이름이 마이클이었다. 유독 의사들이 이런 운동을 좋아했다. 왜냐하면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이 운동이 스트레스를 풀어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그는 정형외관 돈이 안된다며 얼마 전에 성형외과로 전문과를 옮겼다. 재미있는 건, 이 친구가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낼 땐 꼭 새끼손가락으로 한다. 엄지는 너무 커서, 새끼손만 아주 간신히 문자 한 개를 커버했다. 내 생각엔 그냥 정형외과가 더 낫지 않나? 싶었는데 어쨌든 그는 돈을 벌겠다고 새 간판을 달았다. 조금 있으려니 우리의 달타냥 헨리가 왔다. 헨리는 유태인계 변호사다. 그것도 동부에서 제일 큰 법률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이 친구 옛날엔 펜싱을 했는데, 중년인 그는 무릎이 상해서 더 이상 못한다고 했다. 근데 다행히 검도는 가능하다며 펜싱에서 검도로 종목을 바꿨다. 그는 의사 마이클보단 약간 젊었는데 항상 선인장으로 만든 데킬라과 레몬즙으로 섞은 마가리타 검도주(Margarita)를 시합이 끝나면 칵테일로 인터페인먼트를 하는 친구였다.
"준비 됐어?"
"물론이지"
오늘도 가져왔냐는 질문에 짧게 대답한다. 대진표가 짜였고 모두 자기 차롈 기다리고 있다. 마침내 내 차례였다 상대는 스테이트 아일랜드 정무관에서 온 이 선생님이었다 이 분 발 아주 빠른 사람이었다. 나는 제일 경계해야 할게 그분이 내 머릴 치는 거였다. 휘슬이 불렸다. 난 서로 접근 해자 마자 일단 상대를 제압해야 했다 일단 머리를 치고 들어갔다. 근데 이양반이 피하는 쪽에 가서 죽도가 꽂힌 것이었다. 완전 그냥 한 점을 얻었다. 그리고 둘째 시합에 서로 공격을 했는데 워낙 저쪽도 나의 장점을 너무 잘 알고 있어 승부가 나질 않았다. 한참 서로 우왕좌왕했다. 내가 한 점을 뺏은 후 깨끗한 한칼이 없이 지지부진했다. 결국 시간 초과로 내가 이기게 된 것이다. 그분 한텐 좀 안 됐었다. 끝나고 나서 인사를 하러 갔다. 투구를 벗은 모습이 놀랄 정도로 너무 늙어 보였다.
"수고하셨습니다 이 선생님"
"존샘 잘하셨어요"
"네, 감사합니다"
승부엔 아주 깔끔하신 분이었다.
이때쯤 나이 제일 많은 손 선생님 오셔서 인사하신다
"존샘 잘했어요"
"네 감사합니다"
이 분은 1940년 초년생이니까, 80이 족히 넘으신 현직 산부인과 의사다. 지금은 뉴욕 맨해튼 보건서에서 40년째 일하시고 계셨다. 어쨌든 여러 가지로 보아 장수의 형질(Gene)을 보유하신 분이었다. 이 분은 항상 얼굴이 한결같이 웃으시고 손자별 되는 학생들에게 존댓말을 쓰셨다. 이분은 일본의 최고의 무사였던 무사시를 너무 좋아하셨다. 무사시 얘기만 나오면 뚜르르 꾀고 계셨다. 어느 날인가 회식하는 자리에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나는 거기서 평상에 항상 궁금했던 걸 물어본 적이 있었다. 손 선생님의 생활 철학이 무어냐고 물었다. 이분 대답이 재미있었다. 선생님왈
"전 문제을 아예 안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전 제가 잘못했으면 빨리 시인하고 수정을 빨리합니다"
"그러면 스트레스가 쌓이질 않아요 허~ 허~ 허~"
아하 이게 정말 지혜로운 분이었다. "나는 문제를 빨리 해결하자"는 편이었는데, 이분에 아예 만들질 않았다. 나보다 한수위 위의 현안을 가지고 계셨다.
이 생각 저 생각 중에 둘째 경기 시작이 되었다. 그런데 아뿔싸 상대는 장애인이었다. 이 친구 한국에 나가서 검도하는 미국인란 제목으로 미중앙일보 기사에 나왔던 흑인친구였다. 아마 이름은 헤글러였고 부전승으로 올라온 거였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참 나감 했다. 빨리 끝낼지? 천천히 할지? 참 결정하기가 난처했다. 이런 생각 중에 시작 휘슬이 울렸다. 그는 기합도 힘차게 내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소리는 질러댔는데, 장애인이기 때문인지? 나에게 아주 거칠게 공격해 들어왔다. 그럼 내가 치고 나가야 하나? 어찌해야? 참 난감했다. 근데 이 친구가 또 성금 달려 들어오는 것이었다. 일단 그의 죽도을 막았는데 이 친구 몸이 서질 않고 바로 내 몸으로 달려드는 거였다. 그의 몸을 안 받아 세우면 바로 그의 몸이 내 뒤로 냉동이치게 생겼다. 난 있는 힘을 다해서 이 친구를 세웠다. 이거 내가 무슨 경길 하는지? 모르겠는 거다. 어찌 해야 할지 모라서 당황하고 경기를 피해 다니다가 갑자기 대학 때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학원 때 칼빈 교수가 있었다. 그 교수는 두 다리를 전혀 사용하지 못하는 1급 장애자였다. 휠체어 앉아서 그 어렵다는 열역학을 가르쳤다. 그는 하버드에서 박사를 땄고 학생들에게 인기도 좋았다. 더욱 아까운 것 너무 잘생기셨다. 아마 그레고라 팩처럼 이지적이고, 인간적인 호감 가는 호남이었다. 특히 나는 그 과목에 성적이 좋았고 그는 나한테 잘해 주웠다. 어느 날 나는 그가 주자창에서 차를 타기 위해 휠체어로 가는 걸 목도했다. 대개 한국인의 정서라면 이 정도 장면에서 번질나게 뛰어가서 물어볼 것도 없이 무조건 도와야 했었다. 나도 실제 그리 알고 급히 쫓아갔다. 그런데 내가 민망할 정도로 그는 내가 접근하는 걸 막았다. 다리를 못쓰는 이가 트렁크를 혼자 열고 휠체어틀 접어 넣고 내 앞에서 바닥을 기어가다시피 앞문으로 가서 운전대 앞에 앉은 거였다. 난 그 자리에 꼼짝 않고서 한 10분간을 지켜봐야 했다. 참 고역이었다. 운전석에 드디어 앉던 그는 난한테 한마디 하고 사라졌다.
" 여긴 한국에서 생각하는 장애인과 달라요"
"그래도"
"자! 그럼 내일 봐요. 존"
"안녕히 들어가세요, 켈빈 교수님"
참 민망한 시간들이었다. 나 혼자 남아서 한동안 생각했었다. 이게 뭐지~? 그날은 몰랐다. 한 반년이 지나서 "장애자 봉사"에 가서 알았다. 진정한 장애자에 대한 대우는 값싼 동정을 던지는 것이 장애자를 위하는 게 아니고 장애자가 장앨 극복하도록 돕은 것이었다. 장애자가 극복하려는데 어설프게 가서 도와주면, 그건 그 장애자가 자립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횔 빼아서 버리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었다. 이 개념을 처음 알았다. 그러니 그냥 서서 십 분이 되던 이십 분이 되던 지켜보는 것 뿐이었다. 혹시라도 도와 달란 말을 하면 그때 도와도 늦지 않은 거였다. 그러니 장애자 설교자, 닉 부이치치도 손도 발도 없이 몸통만 있지만, 자길 장애자로 보아주길 원하지 않았고, 그런 이들은 정상인 다른 사람과 똑같이 취급받길 원했다. 결국 그는 착한 와이프 얻어, 아이까지 낳고 정상인으로 잘 살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도 지금 이경기도 그에게도 공평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 머리가 정리되니, 내 죽도가 지금보다 두배로 빨라지기 시작하더니, 조금 후에 죽도는 더 이상 보이질 않았다. 옳은 생각을 끄러 내는데 시간이 걸렸지만 판단 후엔 내 몸은 무진 달랐다.
그리고 다음 몇 개의 경긴 더 이겼고 결국 결승까지 올라갔다. 이번은 마이클이라고 백인인데 중키에 눈이 아주 날카롭고 예민하게 생긴 중년의 친구였다. 이 친군 작년에 챔피언이었고 몇 번 경기를 같이 했던 적이 있었다. 대충 몇 번 상대 죽도를 두들겨보니 죽도를 참 헐겁게 잡고 있었다. 그래서 있는 힘들 다해 내려쳐봤다. 몹시 당황하는 기미가 역역 했다. 난 그 처진 손이 올라오기 전에 뛰어 들어가 "머리”를 쳐서 점수를 올렸다. 친구 마이클과 헨리는 장외에서 열심히 날 응원을 해 주웠다.
"헤이 검도주"
"검도주하면서 축하하자"
"하하하"
"파리팅 존"
다른 관객들도 박술 치고 내 이름 불어대고 날리였다. 어쨌든 두 번째 경기에선 아무 생각도 없이 방심하는 중에 그는 아주 빠르게 내 손목을 쳐냈다. 당한 것이다. 이젠 마지막 승부였다. 우린 서로 왔다 갔다 몇 번 했지만 이 영리한 상대는 내가 했던 오늘 경길 모두 지켜본 것 같았다. 내가 왼쪽 무릎에 부상 있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 친구는 번개 같은 손목을 두 번 연속 사용했다. 세 번째 똑 같이 들어오는 걸 맘먹고 잽싸게 피했더니 자기 체중에 못 이겨 장외로 나가버린 거였다. 그래서 그는 벌점 1점을 먹었다. 그리고 시간은 계속 흘러갔는데 결정타 없이 막상막하였다. 결국 심판 카운트 타운 10 초을 주였다. 이 친구가 물밀듯이 쳐들어왔은데, 나는 방어 대신 맹열히 공격을 해댔다. 사실 나도 만만치 않았다. 둘 다 아무 점수 못 따고 경기가 끝났다. 심판은 나에게 결국 손을 들어 주웠다. 드디어 내가 검도 챔피언이 되는 순간이었다. 아주 감개가 무량했다. 늦까지로 배우면서 별생각 다 했는데 오늘 이 작은 기쁨을 누리고 게 되었다. 나도 중얼거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요"
이거 홍수환선수가 했었나? 어찌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하는 순간까지 와 있었다. 이 시합에 가장 힘든 경기는 흑인 장애인, 헤글러하고 하던 경기였다. 그러나 내가 이 시합에서 제일 잘한 것은 시합 전부터 내가 승자가 된다란 상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날 나랑 붙은 자는 기량면에서 모두 비 길데 없었고 빠르길론 손색 또한 없었지만 나처럼 이미 승자가 된 상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0.1초의 차이는 몰츠의 상상이 만들고 있었고 그렇게 내 몸은 미사일처럼 유도되어 있었다. 그리고 검도는 0.01초 차이 운동이었다.
"이 핵심은 [Maxwell Maltz]의 [Psycho Cybernetics]에서 재구성 및 추가하여 요약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