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웰몰츠식 성공체험; 자아를 깨워라
보이 스카웃의 더비
큰아이는 늘 말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 아이가 뭘 생각하는지 알수가 없었다. 큰앤 날때도 울음소리가 났는지? 조차도 기억이 가물거린다. 제대로 크게 울지 않았던 것 같다. 어찌되었건 10살 까지되는데도 나와의 대화가 별루 없었다. 뭘 애길 하고 싶으면 동생을 메신저로 사용했다. 무얼 사달라는 것부터 시작해서 어딜 가자는것까지 하다못해, 태권도를 배우고 싶은것 까지 ……둘짼 열심히 그일을 감당 했다. 어느 날은 학교 왕따를 당했는지? 집에만 오면 그냥 방에만 처박혀 있는거였다. – 난 이런 애가 제일 겁났다. 어떤 테이타도, 이앤 블랙홀처럼 빨아만 들이기만하고 내뿜질 않았다. - 지금 살고 대지 이만평위 하얀집이 이 아이를 위해 샀는데 나가 놀질 않았다. 그래서 난 회사에서 돌오는대로 손을 걷어붙히고 그네를 조립해서 국립 공원에 보는 것과 똑같고 더 튼튼한 그넬를 만들놨다. 그리고 일왕 하는김에 커다란 수영장도 만들어 주웠다. 이리하면 주변에 있는 아이들이라도 울집에서 돌것이라 생각였다. 근데 헉! 놀아야 할 애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친구가 없다고 찡찡대는 거였다. 아뿔사! 여긴 각자 집에 떨어져 있어 서로 교제가 없은데 주변엔 자기랑 같은 나이가 없고 몇몇 고등학생들만 주변에 산다는 걸 몰랐다. 특히 새로 이사온 뉴저지 프린스토은 켄테키랑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아뭏든 놀 아이들이 없다! 그래서 생각한게 보이스커우트를 가입하는 것이였다. 보이스카웃엘 가면 그만 또래들과 같은 활동을 하면서 그나마 친굴 만들수 있었다. 우리집 뒷마당은 축구장만한데 난 정성스럽게 잔디만 깍고 있었다. 근데 보이스카웃을 들고나서 부턴 애들 모이는 장소로 우리집으로 정했다. 뒤뜰에서 애들 축구나 야구을 하고 어른들은 바베큐를 구어 먹고, 간단한 다과를 할수있었다. 그리고 우리 동네에서 제일 멋지고 아주 아름다운 가재보( Gazebo)가 내 집에 있었다. 우리집은 모임때마다 바베큐 파티에다 애들 운동장에서 축구나 야구를 하는 최고의 장소가 되었다. 난 코리안 바베큐 레시피를 오리지날 주방장한테 배워었다. 제대로된 레서피로 사람들은 서빙했다. 동네사람들이 너무나 좋아했다. 세번까지 한번에 갈비 반짝씩 소비하는 듯 싶드니 이젠 싹싹한 사람들 자기 먹을걸 싸아오기 시작했다. 그 다음부턴 돈이 들어갈질 않았고 장소에 음료수 준비만하면 되었다. 한번 모임는 소구룹을 “ 팩”이락하는데 아마 처음엔 5명이던, 우리 팩#48이 4개월 사이에 팩이 20명로 늘었다. 큰아이는 점점 친구가 많아지고 큰아이는 웃는 소리가 들려오고, 가끔 쳐다보면 첨엔 원 밖에서 돌던 아이가 제법 애들하고 잘 어룰리고 있었다. 어째되어건 이런 모임을 한 6개월정도 한던 그해 추수 감사절 쯤에 “ 더비” 를 하다는 공문이 왔다.
난 케터키에서 살았던 사람이라 여기서 "말 경기"줄 하는 걸로 오해하고 있었다. – 켄터킨엔 미국에서 말경주, 더비로 제일 유명했고, 미국내에 제일 큰 경기장를 가지고 있어 전 세계 경마 경기에가 열리곤 했었다.
“ 여기 무슨 뉴저지에 말이 어디있나?”
혼자 중얼거렸다. 그러던 그 더비를 알고보니 경주는 경주인데 나무 목각 자동차로 하는 더비였다. 자료는 보이스카웃 본부에서 제공하고, 각자 정해진 시간에 일정 무게의 장난 자동차를 만들어와서 10미터 짜리 스라딩 트랙에서 미끄려 내려오는 경기로 시간을 재는 거였다. 그런데 색깔이나 외장 디자인은 각자 자기 취향 맞게 할 수있는 재량권이 있었다. 미끄러져 내려 가는 것였기때문에 무게만큼은 정해진 초과량을 넘을 수 없었다. 그래서 큰애와 나는 둘이 머리짜서 조합을 하고, 색을 칠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인 샌드페이빠질을 해고 문질러서 차를 반찔반질하게 만들었다. 나중앤 애보다 내가 더 열성적이였다. 야~ 몇일후 스포츠카의 모양의 장난감 차가 완성되었다. 우린 시합날만 기다렸다. 드디어 시합날이 왔다 . 몇일간 회사에서도 이것만 생각했었다. 만들긴 했지만 뭐 어떻게 경길하는건지? 진행은 어떻게 하는 건지 궁금한게 많았다. 시합장 앞에 뉴저지주 스카웃은 다 모인것 같았다. 우리도 맨 뒤줄에 슬그머니 붙어서 사람들과 너스레를 떨고 있었다. 참석한 사람들은 벌써 흥분되여 있었다. 어떤인 자동차 밑바닥 샌드 페이바 number #100과 #1000을 번가라 가면서 다섯번이나 폴리싱 했다는 것이다. – 사실 이렇게하면 최상의 고은 표면을 만들수가 있었다 - 우린 그런 샌드페이빠질은 커녕 비빕밥 먹다가 남은 참기름을 조금 쳤을 뿐이였다. 가혹 몇사람이 중량때문에 퇴짜를 먹었다. 그들은 5분내에 수정 해야만 다시 출전자격이 주워졌다. 집엔 저울이없어서, 차를 가볍게 제작했고, 주머니에 25전짜리 동전 몇개과 스카차 테이프를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갔다. 저울에 올려 놓고 무게를 마지막으로 마칠 생각이였다. 저울에 올렸다. 예상대로 무게 모자랐다. 동전 한개 올려놯다. 그래도 한계치에 좀금 모자랐다. 결국 네개을 더 올려놓으니 완전 상한 한계치을 최대로 맞칠수 있었다. 차가 앞으로 굴러 갈테니 모멘텀을 앞 바퀴에 실케끔 차앞바퀴 쪽으로 테이프을 감아 무게를 가중시켰다. 그리곤 우린 안으로 들어가 시합준비를 했다. 참가자는 어른과 아이가 한조로 정장 유니폼에 스카프까지 하고, 스포츠 레이스 주자들은 유니폼은 진짜처럼 입었다. 자~ 우리차례가 온건이다. 우리 팩# 48인데 #52랑 붙었다. 시작 신호와 동시에 차가 내려갔다. 소리질대고 응원 보통이 아니였다. 말 경기도 아닌데 말 소리릴 내고, 또 말 우은 소리 질렸다고, 빨리 내려가라 해도 빨리 내려가는 것도 아닌데 그분위기만큼은 소릴 질러야 했다. 우리 아이 차가 앞서 결승점을 지나갔다 첫번째 얼떨결에 소리 질러보고, 그리고 이겼다. 큰아이는 아주 좋아했다. 이아이가 이렇게 행복하는 건, 참 보기 드문일이였다. 친구들이 이아이 주변에 막모이기 시작했다. 또, 시간 지나면서 둘째 경기도 첫번째 비해 더 쉽게 이겼다. 난 간간히 조그만 플라스틱 참기름병을 열고 면봉으로 아주 정성스레이 네바퀴과 바닥에 간간히 칠해주웠다. 이 동작을 무진 빨리 해야했다, 왜냐하면 대개의 미국사람들은그 고소한 참기름 냄샐 무슨 스켕크 냄새와 비슷하다며 싫어 했었다. 그래 난 잠깐 사이 주변을 한번 둘러본 뒤엔 뚜껑열고, 곧바로 닫는 동작을 눈 깜짝할사이에 전문가처럼 해야했다. 그린곤, 경기중엔 어김없이 소릴질러 댔다. 세번째도 네번째도 계속 큰아이 차가 계속 이겼다.
“아자”
“아자짜”
“화이팅”
이거 맨처음엔 대충하려 하려했는데, 가면 갈수록 점점 심각해지는거였다. 나는 목소리가 조금씩 쇠소리가 날쯤에 드디어 우리차가 드디어 결승엔 올라간던 것이였다. 역사적인 순간이 도래한 거였다. 오전 아홉시 정각에 시작한 경기가 벌써 오후3시가 넘어 가고 있었다. 배도 고팠다. 30분 뒤에 마지막 결승전을 한단다. 마지막 결승전을 큰아이와 제이슨란는 애의 차가 올라왔다. 제이슨 아빤 보이스커운 10년째 임원이였고, 유명 화이져 제약회사 CFO였다. 제이슨 작년애도 우승한 아아였다. 떨어진 사람들은 이미 어기저기서 자릴 떠났지만 열성있는 사람들 그리고 전문가들 보이스카웃 기자들은 계속 남아 있었다.
자~ 이제 오늘에 마지막 하이라트 결승경기가 막 시작이 되고 있었다. 몇초간의 숨소리도 없고 바람도 멈춘듯했다.
“탕”
하고 딱총소리와 함께 두개 서로 다른 트랙으로 두 유선형의 먼찐 스포츠가가 경사길를 총알처럼 내려가고 있었다. 사람이 앞에서 너무 아우성처서 시야가 간간히 가려지곤했지만 내눈은 결코 우리차을 놓지지 않았었다 출발해서 4미터을 갈때까진 서로 동일하게 차이가 없었다. 근데 마지막 급경살 내려갈때 탈력을 받는 듯하더니 막상 결승점을 지나갈땐 우리애차가 조금 일찍 도착하지 않았나? 생각돠는데 너무 날리쳐서 확실치 않았다.
큰아인 연신 일등이라고 소리쳤다
“일등”
“일등”
“일등”
조금있다. 판정이 나왔다 제이슨이 우승이란 것이였다. 우리 애도 자기차가 먼저 들어 간 걸로 알고 있었던 모양이였다. 다른 아이들이 제이슨 한테 가서 허그(Hug)하고 좋다고 날리다. 난 이거 아니라고 할려하는데 막~박차고 나가려는데 그아이 눈은 날 응시하고 있었다. 서로 보는 순간 내가 멈칙했다. 친구들이 껴안고 좋다고 깡총깡 뛰는데 이 아인 뛰질 않았다. 몸이 안좋았다. 반신불구였다. 단단히 맘먹은 맘이 타이어 바람 빠지듯이 새어나가고 있었다. 우리 팩 아이들은 우리애에게 아쉽다며 위로해 주었다. 여기서 이정도로 …........................ 그만하는게 좋을성 싶었다.
“음~”
나는 혼자 참고 있었다. 너무 행사가 길어져서 시상식은 다음주에 하기로 하고 2등짜리 트로피는 그자리에서 가지고 갈수 있게 해주웠다. 그 2등짜리 트로피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 와야했다. 큰애한테 좀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아마 아빠가 밑져야 본전인데 한번만이라도 따져 줄길 바랬는지도 모르겠는데 말이다.
또 후딱 일주일이 지나가고 진짜 시상식에 가야했다. 가고 싶지않았다. 허지만 우리가 정식으로 받은 트로피가 아니기에 형식적이라도 참석을 해야했다. 보이스카웃 미동부지부 총재가 시상식에 왔고, 메리얏트 호텔에 볼룸에서 가라식 잔치을 하고 있었다. 줄 잡아 호텔 식장에 다 모인사람이 한 500명이 정원인데 꽉찬 느낌이였고 빈자리가 없어 여기적 서있는사람이 보였다. 우리 앞자리에 오른쪽으로 팩#48 표시말이 있었다. 비집고 들어가 일단 자릴 잡고 앉았다.
근데 조금 있었는데, 시상전에 사과의 말씀이 있다고 방송을 하는것이였다. 그 내용은 마지막 삼판 판정 과정 중에 오판이였단 것이다. 헉! 자라보고 놀란놈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난 또 이거 2등도 알줄려는지 알았다. 완전히 이놈들이 짜고 치는고스톱이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 사회자가 우리아이 이름을 대며, 우리 아이 차가 0.7초 차로빨리 들어왔고 심판도 군중들 밀어서 시선을 잃었다고 사과하는 것이였다. 그리고 언제 찍었는지 비디오을 스크린에 비쳐준은 것였다. 우리 아이 차가 분명히 일찍 들어왔다. 아~ 이 기쁜순간이 …… 난 그때까지 비디오가 이렇게 감사한줄 전혀 몰랐다. 그래서 최고 우수상에 우리 아이를 부를는 거였다.
“아~ 이감동!”
이거 너무 감동적이였다. 아이는 시상대에 2등한 제이슨은 불편한 몸으로 연단에 서서 1등 트로피을 우리아이 한테 전달하는거였다. 사회자가 마이크에 대고 말을했다
“우리 판정 실수로 이리 된겁니다.”
“지금 이 트로피는 새로 제작되었읍니다.”
“우린 일 주일 동안 제이슨을 설득했고, 드디어 본인의 동의하에 이런일을 결정했읍니다.”
“그래서 본부은 두스카웃( Scouts) 모두 1등에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서 1등을 더 만들었읍니다. 제이슨이 들고 있는 것은 아주 새 것입니다”
결국 두이이에게 1등을 주웠던 것이였다. 이걸 보는 감동의 순간에 그냥 가만히 앉아 일수가 없었다. 그래 시회자에게 손을 흔들었다. 나에게 시선을 주던 사회자는 나를 보더니 시상대로 올라오라고 손짓을 했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람들도 올라가라고 제스쳐를 같이 한다. 그래서 일단 멋적은 모습으로 올라 갔다. 그냥 흥분한 상태에 아무 생각도 없이 올라 갔는데 막상 돌아 서서 보니 너무 많은사람이 날 집중하니 아차! 싶었다. 차라리 다시 내려오고 싶었다. 얘길 해야 하는데 말을 못 잇겠고……… 더듬거리며 작은 소리로 한마디 한마디씩 이어 갔다.
“안녕하세요 저는 프린스톤에 살고 있는 두아이에 아빠인 존입니다.”
이리 애길 하는데 생각보다 무척힘들었다. 다시 큰 숨을 다시 쉬어야 했다.
“휴, 올라오니 긴장이되네요”
이 애기에 사람들이 와짝찌걸 웃었다. 웃으니 좀 맘이편해졌었다.
“여기오신 신사 숙녀여러분 안녕하세요! ”
“오늘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 분명한 규명과 공정한 판결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렇게 오늘 여러분은 10살짜리 어린한 남자 아이 - 손으로 큰아이를 가르키면서- 그리고 여러분 옆에 앉아있은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부모가 보여 줄수있는 가장 고상한 공정 (Fairness and Justice)란 도덕을 어른이된 우리가 몸소 실천하여 보여주고 있읍니다. 그리고, 여기 있는 우리 자녀들은 오늘 그걸 보고, 배우고 있읍니다.”
그랬더니 박수가 나왔다. 사실 나도 내심 놀래고 있었다. 이렇게 내가 사리있게 말이 나올쭐 나도 예상 못했었다. 일단 박수를 받으니 좀 더 용기가 생겼다.
“저는 보시다시피 이민잡니다:
“그리고 동양인 입니다”.
그당시 호텔 컨벤션룸에는 90퍼센트 백인이였다.
“이민자의 눈으로 이렇게 공정함을 목도했고, 또 보이스카웃란 공동체가 아주 건강하다는 걸 제 눈으로 확실하고 있읍니다.전 이런 모임을 존경하고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전 오늘 이런 공동체라면 저의 헌심과 봉사를 하고푼 맘이 충만해졌읍니다.”
박수가 아까보다 더 크게와르르 터져 나왔다.
“끝으로 저는 이런 공동체 함께 한다는 것이”
봇불 터지듯이 여기저기서 박수가 나왔고 아마 우리팩#48 엄마들이 환호성이 들렸다. 그동안 코리안 바베큐를 참 잘 대접했단 생각을 잠시하면서 말은 몇번 끝겨다 다시 이어갔다.
"저의 영광이며, 우리 팩#48 모두의 승리라 생각하겠읍니다"
"다시한번 말하곤대, 여러분이 보여준 만큼이나 프란스톤 보아스카웃 위하여 헌신의 노력을 다 하겠읍니다.
또 박수가 나와 말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조금 쉬었다 계속 크고 힘있는 어조 말했다.
감사합니다"
박수와 휘파람소리가 나고 난리가 났다. 식당이 마치 들었다 놓은듯 박수에, 휘파람에, 태이블 뚜두리는소리 혼잡을 이루웠다. 우리 팩#48에 아이나 부모 모두가 자기가 승리한것처럼 날리를 쳤다. 이거 졸지에 마틴루터 킹 쥬니어 연설이 된거였다. 나는 아이와 함께 내려와 우리 자리에 내려 오고 있었는데, 큰 앤 날 무척 존경스럽게 보고있었다. 기분 같아선 그자리에서 아이라도 껴안아 주고 싶었는데 내가 이들이 찬린 상에 내가 너무 설치는것 같아서 참았다. 그리고 그일이 있은후 나는 보이스카웃 덴리더( den leader) – 보이스카웃에서 일한 자원봉사자로 보이스카웃의 팩의 활동을 지원해주는 역활 대대장격의 일을 하는 지도자다 – 로서 뉴저지 프린스톤에서 한 5년간 근무하게 된다.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자리 앉자마자 맥길에서 물리학으로 박사한 거레쓰가 문는다
“어떻게 만든건데?”
“응 동전”
“최대 한계 중량을 동전으로 맞치고, 무게을 중심을 앞 바퀴에 주웠지?”
“음 그랬군”
“미국인들은 그런 머리가 없지~”
이친군 세 아이 아빠였고 캐나다 시민권자로 여기서 아비엠(IBM)에서 일 하고 있었는데 오늘만큼은 나와 같은 이민자였음이 자랑스러워던 모양이였다. 뒤돌아보니 아이들 놀음에 어른인 내가 더 뛰고 날치고 살고 있었다. 그런데 덕분에 우리 아이의 아픔도 어른들의 아픔도 점점 회복되고 있었다. 지난날을 지금와서 다 큰 아들에게 물어보면 이 아인 별 감흥이 없었나 보다 그러나 나에게 이순간만큼은 나에겐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올때마다 끄집어 사용할 몰츠의 큰 기재였다. 그때의 그 감흥은 전혀 모자람이 전혀 없는 대사건이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