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웰몰츠식 성공체험; 자아를 깨워라
4장. 성공; 고꾸라져봐야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
내가 사는 곳은 뉴저지 프린스톤대학가다. 이곳에서 겨울엔 스키장을, 여름엔 해변을 한 시간에 갈 수 있으니 참 편리했다. 또 한 시간 안에 전철로 뉴욕 맨해튼 33 가도 갈 수 있다. 근데 내가 가장 자주 가는 곳이 해변이다. 그냥 가서 파도 소릴 듣는 게 좋다. 해변에서 설교하던 예수님도, 불도를 전한 부처님도, 신의 메시지를 전하던 모하멧트도 없지만 그 백그라운드가 만드는 파도소릴 듣다가 보면 그 소리 속에 그들을 만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였다. 난 항상 그 소리 들고 있으면 맘도 안정되는 게 좋은 이야기들이 서서히 귀로 밀려오는 걸 느낀다. 그래 나는 자주 롱브랜치, 벨마 - 뉴저지에서 아름다운 비치들 -를 찾아간다.
거기서 내 친구, 밥( Bob)은 연을 타면서 서핑보드를 탄다 그걸 뭐라 하던데, 아~ 카이아트 보오딩( KiteBoading)라 하는 것 같았다. 하여튼 파도가 심한 날만 골라서 연을 가지고 나온다. 그 친군 정유회사, 엑손에서 일하다가 은퇴했는데 지금 67세인데 일 없는 백수다. 해풍이 온다는 뉴스가 나오면 남들은 모두 집안에 들어 숨어 있다. 그런데 그때마다 그는 바닷바람을 찾아서, TV 보다가도 놓칠세라 해변을 향해 질주한다. 참 멋있는 스포츠다. 멋있는 스포츠를 하니까 그가 멋있어 보였다. 그가 하도 와보라고 졸라서 몇 번인가 카이트보오딩 동아리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는 내가 동아리에 가입하길 원했다. 좀 별난 걸 알게 되었는데 하나같이 나이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제일 많은 사람은 82세였다. 아마 그 사람은 직접 즐기진 않아도 젊은 청년들이 지도하고 있었다. 미국엔 이렇게 재능기부가 많았다. 나도 더 나이 들기 전에 이걸 배워서 재능기불 하고 싶단 생각이 이 회장 노인네를 보니 들었다. 이렇게 그들은 바다를 그리워하고, 바다를 떠나지도 않고 그 주변의 집을 사서 평생 바닷가 근처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내 주변에 있었다. 바다는 그들에게 안식처인지? 주식처? 인지 아님 어떤 모양이었든지 간에 바다라는 넓은 수평선은 닿을 수없었지만 늘 그들 곁에 항상 있었다.
하룬 큰아이가 하두 말이 없어, 어떻게 하면 애랑 말을 좀 더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바다를 생각하다가 보니 낚시생각이 났다. 난 낚시에 예전부터 걸리는 게 있어서 누구랑도 낚시이야길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낚시 애길하니, 가만히 있는 이 아이 입에서 대답이 나오는 속도가 보통이 아니었다. 그래서 특별 이벤트로 낚시 가기로 결정했다. 우리 아침 일찍 크러커베렐식당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선착장, 벨마로 달려 내려갔다. 아마 낚싯대는 한 10년 전에부터 차고에 한구석에 꾸겨 넣어던 거였다. 평상시에 파도 소릴 듣는 걸 좋아해서 해변을 찾아봤지만 낚신 별로였고, 여기에서 애랑 말이나 좀 편하게 하고 맛있는 걸 사주고 싶어서 내리 달려 내려갔다. 도착한 거기엔 우리말고도 서너 사람들이 여기저기 띄엄띄엄 그날 아침 일찍부터 모래 해변에서 낚시를 드리우고 앉아있었다. 거기선 낚싯줄을 드리우고 책을 보거나 아님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있었다. 미국 해변에선 술은 금지다. 해변에서 술병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으면 경찰이 아주 센 벌금 티켓을 먹인다. 그리고 낚시면 증명서( License)를 사야 하는데 여긴 바닷물 낚시여서 증명서가 필요 없었다. 공짜다.
이제껏 미국생활이라 것이 직장생활에, 애들 태어난 후엔 산모 산후조리부터 시작해서 애들 커지면 좀 해방되나 싶었는데 애들 이런저런 학교활동에 다 따라다니고 특히 애들 생일파티엔 동네 애들 모두 초대해서 파티 엔터테인너까지 해야 했기 때문에 낚시는 둘째치고 그리하던 골프도 손에서 놓은 지 오래다. 낚시한 기억이라곤 어렸을 적에 인천 앞바다에서 낚시해 본 것 빼곤 한 적이 없었다. 그때 정신 나간 망둥이 딱 한 마리 잡았던 기억은 난다. 낚시라면 나에겐 트라우마 같은 것이 있어서 낚시를 고의로 하지 않고 있었다. 난 광주사테에서 악명 높다던 20사단 보병 출신이다. 100킬로에 30킬로 군장으로 하룻밤을 꼬박 새워서 군막사롤 들어오던 앞에서 한가로이 낚싯줄 던지고 있는 강태공을 생사를 가르며 들어온던 군인이었던 내 눈에 좋게 보여질 리가 없었다. 그 당시엔 우리 연대에서 불사조를 만들여는 목적인지 말도 안 되는 강훈련을 했다. 훈련 중에 분대 전체가 질식사로 죽은 적이 있었다. 그러니 같은 장소에서 한 집단은 죽어가는데 한 집단은 담배 연기 짤짤 피워가면서 한가롭게 물고기가 잡고 있던 그들을 난 좋게 볼리가 만무했다. 그것도 밤새워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군부대로 들어가는 강 모퉁이가 우리 군부대 들어가는 바로 입구였다. 한가롭게 앉아서 군인들이 지나가는 길목에 담배 연기나 뿜여대는 그들의 모습은 한 사회 안에 불공평한 것이 너무 많다는 생각으로 꽉 차 있던 나에게 결심을 하게 만든다. 그 일로 불평등한 집단의 아픔을 간과하지 않을 것과 다신 낚실 하지 않는다는 결심을 하게 했다.
그러던 내가 지금 세월이 한참 지나고 그런 기억도 가물가물해지고, 그리 힘차게 내렸던 결심도 흐물흐물 해 지고 있을 쯤에 아들 녀석을 위해서 바늘귀에 작은 생선을 끼우고 있었다. 그날 아침 바람은 아주 셌다. 해변 쪽을 향해서 불러오는 바람이 눈을 못 들 정도이고 그 바람에 맞혀서 따라 들어오는 파도도 엄청 셌다. 하두 세게 쳐들어 오니까 낚싯봉을 불어오는 바람에 반대로 던져진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래도 던졌다. 그랬더니 던지는 족족 파도에 밀려 도로 밀려 돌아왔다. 결국 파도가 시작하는 점밖으로 못 던지는 거다. 검도를 했으니, 머리 치기만 수백만 번 연습한 사람이었다. 아마 발로 차라면 못하겠지만 머리 위로 던지라며 한번 해볼 만한 거였다. 그래서 이젠 낚시라고 생각지 않고 맘을 가다듬고 머리치기라 생각하고 힘껏 던졌는데 아이고~ 공교롭게 내가 내 발에 꼬여 앞으로 모래사장 위에서 꼬구라 넘어졌다. 나는 완전히 패대기쳐 저서 한 바퀴를 크게 원을 그린 후엔 나동그라져서 대자로 주욱~ 푹신푹신한 모래사장 위에 퍼져 있었다. 어쩌다가 이런 고난도를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땐 짙은 회색 구름, 그리고 바람과 코 끝엔 세차게 스쳐가는 부서진 파도뿐이었다. 그게 다행인 건지?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파도가 시작하던 점, 한참 뒤로 낚싯밥이 떨어졌다. 소가 뒷걸음 하다 쥘 밟으려고 한 것일까? 의자에 앉으려고 돌아서려는데, 아니~ 이럴 수가……., 어느 정신 나간 물고기가 내 낚싯밥을 그 잠깐사이에 물어 버린 거다.
“아~ 감동……이였다. “
내가 황해안 앞바다에서 손가락만 한 망두일 봤었지만 내가 대서양 앞바다에서 물고길 잡다니~. 아~ 이 흥분과 긴장 속에 한 반시간을 싸웠나? 보다. 평상시 물고기 확 잡아당기면 줄이 끊어진 다는 걸 "죠스"영화에서 본 게 있었다. 간신히 그놈을 좀 풀어줘웠다 다시 댕겼다. 이걸 반복하다 결국 반시간을 싸우다가 물 밖으로 끌어냈는데 여기 물고기는 100파운드에, 1미터가 훨씬 넘는 블루피시를 잡아끌어 올리는 순간이었다. 혼자 물밖으로 끌어내지 못해서 옆에서 같이 낚시하던 두 세병이 병합해서 간신히 물밖으로 끌어낼 수 있었다. 여기 물고기는 일단 무진 컸다. 인천 앞바다 망둥이 100 마릴 한꺼번에 낚은 량이었다. 물고기 크기에 따라서 집에 가져갈 수 있었는데 이 정도 크기를 집에 가지고 가도 벌금형이 아니었다. 여기서 한 가지 배운 게 있었다. 결국엔 해변에 일찍 왔던 사람들 보다 조금 더 던진 거였다. 그게 결국 낚싯밥을 파도 밖으로 던질 수 있었고, 그래서 완전 초자가 그 물고길 월척할 수 있었다.
그래 난 그날 돌아오면서 이미 존경에 눈으로 바라보던 큰 아이한테 이때 뭘 좀 배워 줄려는 목적으로 목소리 낮추어서 이렇게 가르쳤다.
"애야! 남을 보다 너무 월등하지 마라 그러면 미친놈 취급받는다. 왜냐하면 너무 월등하면 모자란 사람은 무시하고 똑똑한 사람은 경계한다. 근데 조금만 월등해라. 반발짝만 잘하자. 그러면 가까이 와서 친구 하려 한다. “그러니 쪼끔만 낫게 살아라"
마치 월척을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조금"과 "많이"를 사용해서 아이에게 이렇게라도 조언을 주고 싶었다.
"그러니, 아침샤워시간을 조금만 조절해자"
<침묵>
큰아이는 샤워가 문제이었는데 적어도 샤워시간은 조금 조정을 해야 되지 않나? 해서 한 말이었다. 어쨌거나 큰아인가 확실히 못 알아들은 게 분명한 게, 그 이후엔도 여전히 아침 샤워는 한 시간이 넘었다. 이 애는 청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여서 아침마다 5종의 샴푸로 온몸의 부분을 나눠서 벌겋게 살을 특별 트리스먼트를 하신다. 그래도 이 아이겐 나는 아빠랑 잡았던 그 물고기가 그 아이의 가장 인상을 남기는 큰 기쁨이었으면 했다. 그렇다면 어느 날 이 아이가 몰츠를 알아갈 때, 이때의 감흥이 몰츠의 기재가 될 것임이 틀림없었으니 나는 그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살다가 창업이든지? 새 직장이든지? 세상에 태어나서 생전해본적이 없는 도전을 할 땐 이런 느낌을 성취될 이미지에 로오딩해서 힘을 얻을 테니 말이다. 그걸로 됐다, 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