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사랑을 깨닫고, 그렇게 부모가 되어간다.
“엄마니까.”
그 한마디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내 아이가 생기기 전, 두 살배기 아이를 키우는 친구 집에 놀러 간 적이 있다.
내가 도착했을 때, 아이는 낮잠을 자고 있었고, 친구는 나를 맞이하려고 주방에서 과일을 씻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 깜짝 놀란 우리는 황급히 방으로 뛰어갔다.
방에 들어가 보니, 아이는 잠에서 깨어 침대에서 내려오려다 살짝 넘어져 있었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지만, 놀란 아이는 서럽게 울었고, 친구는 아이를 품에 안고 달래며 반복해서 말했다.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그때는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 네가 미안하다고 해? 네가 넘어뜨린 것도 아니잖아?”
내가 의아해하며 묻자, 친구는 조용히 웃으며 한마디 했다.
“엄마니까.”
그때는 정말 몰랐다.
그 말속에 담긴 무게를, 그 미안함이 어떤 마음인지.
그리고 몇 년 뒤,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엄마가 되고 나니 아이가 안쓰럽다는 감정이 자꾸만 불쑥불쑥 올라왔다.
먹는 것도, 자는 것도 문제없고, 모든 것이 정상이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그러다 어느 날, 이런 문장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사랑은 최선을 다하면서도 늘 부족함을 느끼는 것이다.”
그렇구나.
이 감정이 바로 ‘안쓰러움’이구나.
평범한 나 자신 때문에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많았다.
늘 더 많이, 더 완벽하게 해주지 못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세상의 모든 좋은 일이 아이에게 일어나길 바라고,
그저 건강하고 평안하게, 행복하게 자라주기만을 바랐다.
때때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어린 시절의 나를 안아주는 것과 같다고 느꼈다.
내가 받았던 것, 받지 못했던 것, 모두를 아이에게 주고 싶었다.
아이가 나와 함께 어린 시절을 다시 한번 걸어가 주기를 바랐다.
나는 진흙탕 속에서 허덕일지라도,
너만큼은 머리 위로 높이 들어 올려,
내가 보지 못했던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우리 부모님도 이런 마음으로 나를 키우셨겠지.
그렇게 사랑을 깨닫고, 그렇게 부모가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