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여섯번째 항암치료와 그 이후
역시 오전 7시에 병원에 도착.
결과를 보니 특별히 문제될만한 건 없었다.
호중구수치(ANC)는 1591, 저번보다 떨어졌지만 항암을 진행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딱 한 가지 불편했던 점이 구역감이라 그 점을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교수님께서,
"이제 케모포트도 심었겠다, 경구약 항구토제를 다시 주사제 포스아프레피탄트(에멘드주)로 바꿉시다."
B가 빠진지 두번째가 되는 날.
시작은 물론 항구토제였다.
저번에 주사로 맞았던 두가지 약물에 다시 돌아온 에멘드까지 총 세가지.
에멘드가 멈추지 않고 들어가는 게 신기하다.
이어서는 A-V-D 순으로 맞았다.
이제 D인 다카바진 주사가 빨리 끝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그러진 않았다.
저번과 똑같이 끝나니 오후 2시 정도가 되었다.
이번엔 견디기 힘들만큼의 구역감이 찾아왔다.
치료가 진행되고 약물이 누적되면서 내가 점점 지쳐가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던 참에 찾아온 강도 높은 구역감이었다.
몸이 지친 건 지, 아니면 마음이 지친 건 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2-2]부터 나타나는 패턴인데, 치료 당일과 그 후 이틀 정도는 설사를 하고, 그 후에는 다시 변비가 찾아오고 있다.
항암치료를 하면 설사도 변비도 다 나타날 수 있는 일이기에, 그냥 그런가보다 하며 지내고 있다.
4일 내도록, 주사 당일까지 포함하면 5일간 구역감으로 고생을 했다.
이젠 냄새에도 좀 민감해진 것 같다.
특히 병원의 냄새, 항암 주사실의 냄새가 머릿속을 맴돌면서 주사가 끝난 며칠간 계속 괴로웠다.
한글날인 9일 오후에는 엄마가 외출을 하고 집엔 나 혼자 남아있었다.
"아들 좋아하는 방울토마토 냉장고에 있으니 좀 먹어, 엄마 나갔다 올게."
몇 개 집어먹고 있는데, 갑자기 참을 수 없는 구역감이 올라온다.
이내 먹었던 방울토마토를 다 게워냈다.
구역감이 계속 있어서 그런가, 작은 자극도 바로 구토로 이어진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론, 혼자 있을 때 구토를 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에겐 보여주기 싫은 모습이었거든.
특히 엄마가 그런 모습을 봤다면 더 걱정하셨을 테고, 그건 되려 내게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래서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게끔, 변기를 깨끗하게 청소했다.
저녁 쯤엔 엄마가 돌아왔고 토마토는 좀 먹었냐고 묻는다.
"아직 속이 좀 안 좋아서, 그냥 몇 개 먹다 말았어."
솔직히 이럴 땐 어떻게 해야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려야 하나.
그나마 교수님께서 다음 항암은 1주를 미뤄주셔서 여유가 좀 생겼다.
남은 기간 몸도 마음도 잘 회복해야겠다.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해 늘 이성적인 판단을 하려고 대단히 애쓰는 편이지만, 그런 나의 이성이 맥없이 무너지던 날들이었다.
처음으로 치료를 포기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로는 예정된 스케줄대로 진행을 해야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 과정이 고통스럽고, 그 고통이 줄어들진 않는다는 걸 알아서인지 마음은 자꾸 다른 생각을 품는다.
'벌써 반이나'라는 생각보단 '아직 반밖에'라는 생각이 앞서는 요즘이다.
다들 그렇게 암과 싸우면서, 또 스스로와 싸우면서 이겨낸 것이겠지.
암과 싸우고 이겨내는 분들 모두가 정말 존경스럽다.
나는 내 마음 한편에 자리 잡은 포기라는 단어를 부정하지는 않기로 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려한다.
마음을 잘 다잡고 마지막까지 잘 버텨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