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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색깔이 좀 변하더라도]

11. 일곱번째 항암치료와 그 이후

by 아피탄트

2023년 11월 10일(다시 일곱번째 항암)


채혈 & 피검사 결과


늘 검사결과는 좋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항암제 투여 전 진료


묘안을 생각해오겠다고 하셨던 교수님께서 정말 묘안을 가져오셨다.

우선 항구토제를 경구약으로 바꾸기로 했다.

상품명은 '아킨지오 캡슐'

네투피탄트와 팔로노세트론, 두가지 성분의 복합제이다.


그 외에 스테로이드인 덱사메타손 정맥주사와 신경안정제 로라제팜 근육주사까지, 총 4가지 성분의 구토 예방 조합이다.


한편 신경안정제인 로라제팜을 처방해주신 이유는 제가 '예기성 구토'가 의심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지난번 항암치료를 중단했을 때, 항암제가 아닌 항구토제 투여 중에 구토를 했는데요.

이런 경우를 포함해 항암치료 예정일 대략 하루 전부터 시작되는 구토를 일컬어 '예기성 구토'라 하며, 보통은 심리적인 이유, 주로 과거의 경험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는 포기하고 싶었다.


"저 너무 힘들고 무서워요. 항암치료 횟수를 좀 줄이면 안될까요?"


교수님은 이런 상황을 많이 겪어보신 듯, 단호하고 냉정하게 말씀하셨다.


"네 안됩니다. 끝까지 해야합니다."


그 단호함에 별다른 대꾸를 할 수 없던 나는 여느 때처럼 암병동으로 가야만 했다.



걱정이 무색했던 AVD


걱정과 달리 효과는 대단히 좋았고, 위험한 순간 하나 없이 지나갔다.

2시간 반~3시간 동안 편안히 치료를 마치고 퇴원할 수 있었다.

남은 기간도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전히 사람들은 참 따뜻해


구토로 치료를 중단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인 중 한 명이, 임산부 입덧캔디로 알려진 레몬캔디와 구역감에 좋다고 알려진 포카리스웨트를 선물로 보내줬다.

치료를 받으면서 캔디를 계속 물고 있었는데, 체감상 효과가 괜찮았다.

(학술적인 근거는 없는지 찾아보려 했지만 결국 찾지는 못했다...그냥 개인적인 경험입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갈 땐 택시를 탔는데, 그 택시기사님은 승객과 대화를 나누는 걸 좋아하시는 분이었다.

조용히 가는 걸 더 좋아하는 나지만, 기사님에게서 왠지 알 수 없는 편안함같은 게 느껴져 나도 그 날은 얘기가 하고싶었다.

허리 디스크를 앓고 계신다던 기사님은, 어린 나이에 이 과정을 이겨내가고 있는 내가 참 대단하다고 말씀해주셨다.

약 기운때문에 다소 몽롱했던 지라 대화 내용이 자세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기사님께서 보내주신 작은 응원이 위태로운 나를 또 지켜준 건 확실하다.

그 마음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기록해둬서 평생 기억해야지.



2023년 11월 11일~13일


그러나 구역감은 다시 찾아왔고


2일차부터는 다시 구역감이 조금씩 시작되었다.

교수님께서 처방해주신 항구토제와 신경안정제를 3일간 꾸준히 복용했다.

그러나 구역감은 사라지지 않았고, 6번째 항암과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났다.

말을 할 때 더 심해지는 경향이 있어서 결국엔 말 수까지 줄여가며 이겨냈고, 다행히 구토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요즘은 힘든 시간을 이겨내보려고 마음을 다잡는데 집중을 하고 있다.

전에는 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할 수 있어서, 마냥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1 후반전은 전반전보다 더 힘들테니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는 축구이다.

축구는 전반전과 후반전으로 나뉘고, 그 사이에 쉬는 시간인 하프타임이 있다.

체력소모가 심하고 전술적인 스포츠이다보니, 하프타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후반전, 나아가서는 경기결과를 좌우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하프타임은 경기를 무사히 마치기 위한 재충전의 시간이다.

동시에 전반전을 돌이켜보며 부족했던 부분을 냉정히 파악하며, 후반전에는 어떻게 전술을 수정해서 나아가야 하는지를 파악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15분 동안 해내야하고, 다시 남은 45분을 뛰어야 하기에, 후반전은 전반전보다 더 힘들 수밖에 없다.


지금 내 상황이 하프타임이 막 끝나고 다시 운동장으로 나가서 후반전을 뛰고 있는 선수가 아닐까 생각한다.

2주 미뤄진 항암은 오히려 재충전을 위한 시간이 되었고, 그 사이에 남은 회차는 어떻게 해야할지 대책을 세우기도 했다.

덕분에 후반전의 시작은 나쁘지 않았지만, 다시 또 어려운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후반전은 전반전보다 힘들테니까.


그렇지만 결과가 승리임을 알고 있기에 물러설 마음이 없다.

끝까지 버티기만 하면 되는 게임, 잘 버텨봐야지.




#2 사랑의 색깔이 좀 변하더라도


암을 겪기 전엔 막연하게 내가 그래도 부모님보단 오래 살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항암치료를 견뎌내고 있는 지금은, 반드시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게 되었다.


당연히 아니길 바라지만, 그럼에도 어쩌면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혹시나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당연히 슬퍼는 하시겠지만, 그래도 그 슬픔 속에 미안함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사랑하는 대상에 미안함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않기는 참 어려운 것 같다.

언젠가 사랑이 뭔지 깊이 고민한 적이 있었는데, 모든 빛의 색을 더하면 흰 색이라 했던가.

비슷하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감정을 더하면 그게 바로 사랑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에게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을 모두 느끼는 것도 그 때문 아닐까.


그리고 애석하게도, 사랑 속에서 미안함이라는 감정이 자리잡고 있는 부분이 꽤 큰 것 같다.

가까울수록 서로가 더 소중하고, 그럴수록 서로에게 스스로의 부족함이 더 미안해지기도 하나보다.

그래서 사랑할수록 미안해지나보다.


요즘들어 나는, 서로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한다.

소중한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당한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것도 이 때문 아닐까.


그렇게 사랑 속에서 미안함이라는 감정만 분리해내고싶다.

그 결과 사랑의 색깔이 좀 변하더라도, 변해서 사랑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에게 크고 작은 의미로 남아있는 참 감사한 사람들과 서로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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