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두개가 미래를 바꾼다

나는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by 카일 박

분수대 앞에서 한 어머니가 아이에게 동전 두 닢을 건네며 말한다


“하나는 네 소원을 위해서 다른 하나는 네 소원 만큼 간절한 다른 누군가의 소원을 위해서”

(나는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페트릭 브링리)


동전 두 낲으로 어머니는 배려를 가르쳤고 살면서 얻을 가치는 더 크다 아이의 귀여움은 호모 사피엔스의 생존을 위한 무기다 . 난 아이가 없다 지독한 나르시스트 어머니를 둔 내 유년의 불행을 내 세대에서 끊었다 . 어릴적 부터 계획한 일이다. 허공을 끊어지지 않도록 날아다니며 공기를 연결 하는 나비의 운명이 다했다. 자식이 있다면 내 능력 안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줄것이다 올바른 인격으로 성장 할 수 있도록 꿈과 열정을 심어주고 그 와중에도 잃지 않는 휴머니즘도 중요하다 내 마음 속 살아 있는 거의 모든 표현과 찬사를 줄거다 하지만 재산은 안준다. 미리 밝힐 거다. 나비도 중력의 무게를 견듸어야 함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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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메트로 폴리탄 뮤지움


줄리아니가 뉴욕 시장일 때 범죄율이 줄었는데 역으로 19년전 뉴욕 흑인 출생율이 딱 그 줄어든 범죄율 만큼 줄었다 숫자는 거짓이 없다. 사회 현상의 원인, 결과를 정확히 추론 할 순 없으나 상관 관계는 있다 아이들이 미래라는데 반만 동의한다 그들은 검증 되지 않았다 긁지 않은 복권일 수는 있으나 삶은 희망만을 갖고 살 수 없다 안타깝게도 그들 중 10%는 범죄자가 된다. 들여다 보지 않는다고 일어 나지 않는건 아니다 범죄가 일어 나면 우린 다 같이 사회적으로 지탄 하지만 우리는 그 지탄으로 부터 자유로울까 통계를 보자. 범죄를 저지른 지인을 지지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한국 사람들 95%가 예스라고 답했다 대한민국은 논농사 문화권이라 모내기와 물때기를 공유해서 우리의 가치가 중요했다 정의의 잣대가 객관적이지 않고 보편적 공감대에 의해 고무줄처럼 달라진다 하지만 같은 논농사 문화권인 2위 베트남 조차 65%만이 예스라고 답한걸 볼때 그 해석의 설득력은 궁핍해진다. 범죄에 모른척 하는건 중립이나 중용이 아니다. 범죄에 동조하는 거다. 대한민국은 심각한 병을 앓고 있다. 출생율 최하, 사기 범죄 일위, 자살 일위, 노인 복지 OECD 국가중 최하, 국민 행복지수 최하 인 상황에서 우린 무언가를 해야 함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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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솔로란 프로에서 한명씩 단상에 서 자신을 소개하는데 문화 충격을 받았다. 어떤 사람인가가 아닌 어떤 걸 갖고 있는지를 소개한다. 자가 여부, 전세인지 아닌지, 평수, 사는 곳이 어딘지 심지어 결혼 후 부모의 재정적 지원 여부. 이들 세계에서는 낯설어 보이지 않는다. 자식에게 물려줄 재산은 독이든 성배다. 물려 주어야 할건 독립심같은 보이지 않는 가치지 물질이 아니다. 물질은 유한 하고 자식은 결국 홀로 서기 한다. 빠를 수록 좋다. 사람이 없어 외롭진 않으나 경제적, 심리적으로 독립하지 못하면 인간은 외롭다 동전을 주는 대신 그 동전으로 소원하는 그 무엇이 더 중요하다. 무능력은 사랑을 일으키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지 물질이 아니다. 이 세상 모든 어머니를 위해 두번째 동전을 던져 본다 동전 두개가 미래를 바꾼다 동전 두개로 꿈꿔지는 미래. 우리 문명은 그렇게 발전해 온것이다.


“하나는 네 소원을 위해서 다른 하나는 네 소원 만큼 간절한 다른 누군가의 소원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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