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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39, 2부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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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다흔넷 Oct 30. 2022

일상 (1)

9 said

일탈이 일상이 되는 아이러니한 권태로움

열심히 노력하다가 갑자기 나태해지고 잘 참다가 조급해지고 희망에 부풀어올랐다가 절망에 빠지는 일을 또 다시 반복하고 있다. 그래도 계속해서 노력하면 수채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그 속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야겠다.

 - 테오에게 보내는 고흐의 편지 가운데 -

 


여행 40 여일 차. 오늘이 며칠인지 날짜 계산이 잘 되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오늘이 평일인지 주말인지 하물며 무슨 요일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저 떠나야 하는 날과 도착해야 하는 날들로만 이 지나가는 시간들을 계산할 뿐이다. 짐을 싸고 푸는 일도, 숙소를 옮겨 다니는 일도 어느덧 일상이 되었다. “9 Project” 라는 초유의 여행이 시작되고 이런 매일의 일탈적 행위들이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일탈이 일상이 되어 버린 아이러니한 권태로움을 느낄 때 쯤, 나의 최애 나라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



2년 전, 막상 혼자 여행을 가기로 마음을 먹고 난 후 오히려 난 여행지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애를 먹고 있었다. 그저 홀로 가볍게 떠나자 했던 마음과는 다르게 이왕이면 최대한 많은 곳을 가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고, 그러다 보니 동남아를 갈까, 미주는 어떨까, 유럽이 좋지 않나, 그냥 국내만 쭉 돌아볼까 등등 하루에도 수십번씩 마음이 바뀌고, 여행 계획을 짜면 짤수록 그 곳이 어디가 되었든 100% 완벽하게 내 마음에 들지가 않았다. 그렇게 지리멸렬하게 여행 계획만 짜고 있던 중 아는 선배가 어차피 똑같이 돈 쓰러 가는 거 한 군데만이라도 평소 꼭 가보고 싶었던 나라를 가보는 건 어떻겠냐고 조언을 해주었다. 평소 내가 꼭 가보고 싶었던 나라? 라고 자문을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라가 있긴 했다. ‘네덜란드’



어릴 적 내 꿈은 ‘네덜란드’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하는 것이었다. 딱히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어느날 우연히 TV에서 본 튤립과 풍차의 나라는 7살 꼬마였던 내게 동화 속 먼 나라 모습처럼 느껴졌던 모양이다. 그런 이유로 ‘네덜란드’에 가기 위해 동화책에 나오는 여느 이야기처럼 그 나라 왕자님을 만나 결혼을 해야만 그 곳에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순수했던 꿈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진짜로 그렇게 믿었던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주변에서 ‘네덜란드’라는 말만 들으면 몽글몽글 그때의 애틋한 느낌이 느껴지곤 한다. 몇 년 전인가, 관상을 좀 볼 줄 안다는 지인이 가만히 나를 쳐다보더니 


“9님은 하이네켄 같은 사람을 만날 거 같아요.”


이 황당한 말에 푸하하 머쓱하게 웃긴 했지만 내심 그 표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와~ 하필이면 콕 찝어 ‘네덜란드’산 초록 맥주 같은 사람이라니… (하긴 카스같은 사람이라고 했으면 한 대 때렸었겠지만;;) 그 순간 순진했던 꼬마 시절의 꿈이 떠올라 신기하기도 하면서 한 편으론 이쯤되면 정말 ‘네덜란드'가 나의 운명의 나라는 아닌가 싶은 생각에 그 분의 촉이 맞아 주길 바라 봤었다. 뭔가 간지 나잖아. 훗.




밤 10시가 훨씬 넘은 어둑어둑한 시각, 오가는 사람 한 명 없는 ‘암스테르담’ 중앙역에 홀로 도착했던 2년 전과는 다르게,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한 대낮에 우리는 무사히 중앙역에 도착했다. 어둡고 낯선 거리를 오가며 구석 진 숙소를 찾아 헤매느라 울 뻔 했던 2년 전과는 다르게, 내려야 할 버스 정류장에 우리의 호스트가 미리 마중 나와 있어 주어 우리는 손 쉽게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한 눈에 서로를 알아 본 우리는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숙소까지 잠시 걸어 갔다. 호스트는 한국인으로 이 곳에 오래 사신 교민 분 같으면서도 어딘가 포스는 사뭇 남들과 다르게 느껴졌다.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이었지만 눈빛만큼은 짙었고, 여리한 몸에 비해 한참이나 큰 아빠 자켓같은 옷을 무심히 걸쳐 입었지만 어딘가 세련되었다. 호기심 많은 Y도 그걸 느꼈는지 조심스럽게 하시는 일을 물어본다. 그 분은 수줍은 듯 우리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신 채 모기만한 목소리로 작게 “미술”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고만 대답해 주셨다. 반 고흐의 나라에서 예술을 하시는 분을 만나다니. 나중에 몰래 이름을 검색해 보니 가벼운 대답과는 다르게 그 분은 국내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작가라 깜짝 놀랐다. 우리가 이런 분의 스튜디오를 숙소로 빌리게 된 것은 뜻밖의 행운이었다.



숙소는 예술가의 스튜디오답게, 고흐의 후배(?)답게 집안 곳곳 예술가의 기운으로 가득했다. 복층으로 된 천장이 높은 스튜디오로, 예전엔 작업실로 쓰긴 했지만 최근 다른 곳에 작업실을 구하셔서 요즘에는 이렇게 Airbnb로 용돈 벌이를 하고 계신다고 한다. 작가님이 떠나시고 둘만 남겨진 숙소에서 Y와 나는 드디어 우리가 원하던 숙소를 구한 거 같다며 아이처럼 좋아했다. Y는 이 곳에서 비범한 예술의 기운이 느껴진다며 마치 산에 올라 온 듯 숨을 킁킁 들이마신다. (그놈의 샤머니즘 못 잃어) 하늘 만큼 높은 천장, 바다 만큼 넓은 창문, 사방이 빈티지스럽게 아무렇게나 꾸며 놓은 듯 하지만 나름의 미적 감각을 뽐내며 꾸며 놓은 듯한 인테리어. TV 대신 라디오가 있는 것도 좋았고, 2층 서재에는 각종 책들과 읽을거리로 가득한 것도 좋았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마음에 들었다. 마침 집 근처에 대형 마트도 있었다. 하루 종일 빵 조각 밖에 먹지 못했던 우린 대충 짐을 풀고 마트로 가 스테이크용 고기와 신선한 야채, 네덜란드 산 초록 맥주 6병을 사와 예술의 도시에 도착한 첫 날을, 그리고 비범한 예술가의 집에서의 아름다운 첫 날 밤을 거하게 즐겼다.


“예민한 사람이라고 다 까탈스러운 건 아니고, 무디다고 해서 다 무난한 것은 아니다.”


그날 밤, 모든 것이 완벽했던 그 집에 한가지 문제점이 발견되었다. 높은 천장 위 자그마하게 달린 창문 틈 사이로 거리의 가로등 불빛이 은근하게 신경 쓰일 딱 그 정도의 조도만큼 집 안으로 새어 들어 오는 것이었다. 하필 그 불빛은 우리가 누운 침대 머리 쪽으로 곧장 쏘아 내려 오고 있었다. 상위 2% 안에 드는 초예민함을 가진 난 뭉근히 새어 들어오는 불빛이 약간 신경 쓰이긴 했지만 거리의 가로등 불이라 어쩔 수 없는 빛이려니 하고 그냥 참고 잤다. 반면 나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다지 예민하지 않은, 너무나도 무딘 성격을 가진 Y는 미세하게 새어 들어오는 불빛이 여간 신경이 쓰였는지 All night long 밤새도록 왜 창문이 저기 달려 있냐, 나가서 가로등을 끄면 안되냐, 창문에 뭐 좀 가릴 건 없냐, 침대 위치를 바꾸면 안되냐는 둥 오만 까탈을 부려대며 앉았다 일어났다 누웠다를 반복하며 뒤척거렸다. ‘예민한 사람 = 까탈’이라고 생각한다면 경기도 오산이다. 



나는 예민한 반면 까탈스럽진 않고, Y는 무딘 반면 굉장히 까탈스러운 타입이다. 음식과 관련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예시. 같은 음식은 절대 매 끼 연달아 먹지 않으며, 비슷한 맛의 메뉴를 중복해서 시키는 것에 굉장히 분노함.) 와인잔은 무조건 얼룩이 있어서는 안되고, 식기는 필히 뜨거운 물로 소독을 해야 하며, 밥 먹을 땐 고개 든 시선 안에 화장실이 보여선 안된다. 어느 숙소에 가든 침대 맞은 편엔 거울이 있어선 안되고, 베개나 이불이 붉은 색이어도 안되며, 잘 때 화장실 문이 열려 있어서도 안된다. 이 모든 까탈스러움은 역시나 Y의 맹목적인 샤머니즘에서 나온 것들이다. 그렇게 계속 이리 저리 뒤척거리는 녀석의 앞으로의 밤들이 내심 걱정스러웠지만 그래도 난 이 숙소가 꽤 마음에 들었고 그러므로 저런 불빛 따위는 내겐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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