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후기
독립 출판사 마저에서 <에세이라니>라는 책이 발간됐다. 겨울에 나왔으니 벌써 시간이 꽤 지났다. 글을 썼던 건 여름부터였는데
매주 한 편씩 글을 썼고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꽤나 쌓였던 것 같다. 참여하는 인원이 꽤 많았는데 몇 달을 얼굴 보고 그러니 나름 내적 친밀감이 쌓였던 것 같다.
사실 책을 받고도 안 읽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5할은 아쉬움 때문이었을 거고 4할은 귀찮음 때문이었을 거다. 그 귀찮음이 나에겐 디폴트 값인데
그러다 천천히 읽어보기로 했다. 장정 반년을 거친
사실 몇 개는 그냥 넘어갔다. 개인적으로 호흡이 긴 걸 안 좋아한다. 읽다 벅차면 그래서 포기한다. 솔직히 좋은 책은 많고 읽을 시간도 부족하니까. 너무 이기적인 생각인가.
만연체는 보통 호흡이 길 수밖에 없는데, 최근엔 백은선 작가 말고는 기억나는 만연체는 없다. 호흡이 길어도 읽기 편하다는 건 역시 작가라는 걸 입증하는 거였고
에세이라니에서 가장 눈에 띈 건 아무래도 입지가 있던 사람이었다. 장강명 작가의 후배로 보이는 어떤 사람도 참가했는데
아버지의 어머니라는 여자는
이라는 표현이 글에 적혀 있었다. 어떨까 생각해도 내가 가늠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글에서 대충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은 있었지만 공감은 다른 영역이었다. 그에게 할머니는 어떤 존재였기에, 글에서마저 저렇게 쓰였을까. 어쩌면 너무 글은 너무 솔직한 장르 같다. 다른 그 어떤 참여자의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인상 깊었고
실제로도 그 사람의 글이 읽기 편했다. 이미 글을 쓴 경력이 상당해 보였는데 그걸 증명하듯 문장은 절대 복합하지 않았다. 기사나 칼럼을 읽듯 편했고
맨 처음을 시작하던 참여자의 글도 인상 깊었다. 인터넷 썰만큼이나 자극적이고 재밌는 이야기들 뿐이었다. 저런 인생이면 쓸 글이 부족하지 않을 것 같았다.
출판사 마저의 대표이자 참여자인 김루시 작가 또한 문장이 담백하고 내용이 인상 깊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까 나는 확실히 문장이 좋은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다. 솔직히 몇몇의 작가 글은 뛰어넘겼을 만큼 호흡이 길고 답답했다. 힘들게 다 읽어도 내용을 상기할 가치는 없었다. 사실 내가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니기에
무례한 평가가 아닐까 싶다. 역시 글은 너무 솔직한 장르라, 위험이 따른다.
그래도 어쨌든 다 읽고 나니 무언가 따뜻한 감정이 올라왔다. 잘 쓰는 작가의 글을 읽었을 때랑은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다. 뭐랄까, 사람냄새 나는 글이라고 할까. 이게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형용하긴 어렵다. 형상화하긴 내 소양이 부족한 것일 테지만
좋은 글은 어떤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어떠한 감정 중 포근함, 따뜻함은 얻기 어려운 느낌인데
오랜만에 느껴서 좋았다.
시인의 에세이를 좋아했는데 아마 앞으로도 바뀌진 않을 거다. 그럼에도 한번은 읽기 좋은 책이라는 느낌을 <에세이라니>에서 받았다.
여담으로 이 글이
브런치에서 쓰는 100번째 글이다. 꾸준히 쓰진 않았지만, 뭔가 이젠 읽어주는 사람도 생긴 거 같고 신기하다. 사실 작년부터 공모전에서 어떤 수상도 하질 못해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는데 ㅎㅎ
졸업을 위해 다시 시를 끄적이니 느낌이 이상했다. 실기 시절엔 그렇게 싫었던 거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