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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호 Jul 17. 2023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그냥 일기

먼 옛날의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그래봤자 5년 전이라는 게 흠이지만. 25년 인생에서 5년 전이면 인생의 5분의 1이니까. 나름 오래된 이야기 아닐까. 갑자기 나이가 어려진 탓에 만 23세가 되었지만, 어쨌든.


그러니까 이 얘기를 하려면 스무 살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고 내가 쓴 소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병원에 다녔다>의 본 이야기이기도 한다. 무슨 말인지 알 리가 없지, 궁금하면 졸작 때 오면 된다. 오진 않겠지만..


무슨 이야기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일까. 사실 별 이야기 없다. 그냥 남들 하는 알바를 나도 경험했던 건데, 그게 그냥 조금 특별했다는 기억이니까. 정신적으로 많이 성숙해질 수 있었던 게 병원이었으니까. 병원은 아픔이 합법이 되는 곳이다. 방금 전까지 아프다고 어린아이처럼 굴던 아주머님이 자기 아들이 오니까 괜찮다고 시치미를 떼는 모습에 많은 감정이 오갔다. 눈앞에서 사람이 심장마비로 쓰러지는 것 또한 봤었고. 지금 하려는 이야기는 후자다. 그때의 기억을 조금 더듬어 본다.


 방금까지 눈웃음을 지으시던 고재종 아버님이 쓰러지셨다. 스트레쳐카를 급하게 끌고 오는 외부응급실 간호사. 외부응급실까지 갈 시간 없다고 2층의 다른 과에서 빌려와, 주변 환자들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달려온다. 과장님은 아버님 상태를 살펴보더니, 안색이 어두워진다. 간호사는 코드블루, 라고 말한 뒤 말이 흐려졌다. 과장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려 했고 간호사는 곧장 문밖으로 나간다.


 아직도 어리둥절했다. 죽빵 한 대 맞은 것처럼. 아니, 시발. 이 상황이 낯설었다. 아니 처음이었다. 눈앞에서 누군가 죽어가고 있는데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유니폼을 찢고 싶었고 울고 싶었는데 그마저도 민폐일까 봐······. 닥치고 있었다. 입뿐만 아닌 모든 걸 닥치고 있었다. 숨 쉬는 것마저 잊어버릴 때까지 조용히. 시간이 흐르고 있을까. 아니 이 상황이 몰래카메라가 아닐까. 


 전화가 울린다. 받을 수 없다. 껐다. 화면을 껐는지 진동 모드로 바꿨는지 일단 껐다. 다시 화면이 켜졌을 때 실감 났다. 아. 내 환자였지. 내가 책임져야 하는 거겠지. 산소마스크 끼면 불편하다고 아버님이 그랬는데. 아니. 불편해도 껴야 한다고 얘기했어야 했네. 아. 나 이제 스무 살인데 간접 살인인가. 아닌가, 자살방조인가. 맞나. 모르겠다. 아까 코드블루라고 했는데, 정지, 마비, 뭐였지. 그냥 모르겠다. 뒤섞이더니 뭐가 처음이었는지도 까먹었다. 기억을 도려낼 수 있다면 토한 것처럼 마구 섞여 있을 거다. 


과장님이 가운에서 손수건을 꺼낸다. 흐르는 땀을 닦는다. 


잠깐. 김간.


빈 메아리가 울린다. 과장님 목소리만 들린다. 한 번 더.


김간.

네네.


헐레벌떡 문이 다시 열린다.


깼네. 환자 깼네.


흐르는 식은땀과 창백한 얼굴의 아버님. 창백하다는 말과 식은땀은 이럴 때 쓰는 거였다. 만져보지 않아도 체온이 느껴질 것만 같았다.


간호사는 급하게 다시 무언가를 확인하는 듯했고 과장님의 표정에서는 안도가 느껴졌다. 처음으로 의사도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저렇게 땀을 흘리는 모습은 일하는 동안 처음 봤다. 과장님도 놀라기는 하는구나.


나도 그제야 숨을 쉬었다. 아니.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과장님과 간호사는 상태가 호전될 때까지 쉬어야 한다고. 검진은 다음에 하자고 했다. 의자에 누워있던 아버님이 몸을 조금씩 일으켜 세우려고 했고, 나는 등에 손을 갖다 대고 천천히 받친 채 밀어줬다. 환자복은 이미 흥건했다. 아버님은 눈웃음을 지으며.


놀랐지.


그리고는 힘이 드시는지 아무 말도 못 하셨다.     


그 후에 아버님을 뵌 적은. 상태가 나빠지실 대로 나빠지셔서 예전 같지 않으셨다. 산책한다고 자주 겉옷을 입고 나가셨는데, 1인실로 옮기신 후로는 보이지 않는다. 방 안에서 겨울잠을 자는 것처럼.

방에 들어갈 때마다. 누워 계셨다. 다행히 영화가 재밌다며. 아드님이 가져다준 노트북으로 영화에 빠지셨다. 한국 영화 중에서도 액션. 아버님은 왜소한 덩치를 가지셨지만, 영화 속 주인공보다 남자다웠다.


 몇 주 후에 아버님을 보았을 때도 눈웃음 짓고 계셨다. 1인실에서 짐을 다 싸고 아드님과 함께 어디론가 가는 듯했다. 중환자실이었다. 말을 잇지 못했다. 네 글자에 모든 게 설명됐다. 그럼에도 아버님은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으셨다. 내과계 중환자실로 가셨다. 금방 퇴원하실 거로 약속하셨는데. 까먹으셨나 보다.     


 난 대학에 들어갔다아버님이 좋아하셨다서울에 있는 학교라니 마냥 좋아라하던 아버님자기 젊었을 때는 건축업에 종사했다고영화 속에서 깽판 치던 용역들이 수두룩했다고. 10층 창가에서 새로 짓는 아파트를 보며.

에휴옆에 강이 흐르는 데 기반이.

뭐라고 하며전문지식을 뽐내셨는데요새는 지하에 주차장을 만들어서 물 빼는 작업이 힘들다고

깡패들이 막.

이러며 영화 속에서나 보던 이야기를 들려주시고.

대학에 들어가며 자연스레 병원 일은 그만뒀다.


아버님, 설쇠기 전에 퇴원하셔야죠.

나도 그라고 싶지. 근데 어아냐. 과장님이 찍어줘야 나도 나가는데.


시트를 정리하면서 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아버님 아드님은 설 때 오신대요?

바쁜 데 뭐 하러 와.


와, 에서 흐려졌다. 말이 뭉게구름처럼 흐려졌다.   

   

설날 때 교대 근무 날이었다. 아버님은 영화를 보고 계셨고. 짧은 인사와 꼭 집에 가셔야 해요, 라는 짧은 말을 남겼다. 그날이 마지막이다. 마지막까지 아버님은 미소를 잃지 않으셨다.


그냥 그때의 일기를 조금 각색했다. 이걸 소설로 써봤고 그렇게 탄생했던 작품이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병원에 다녔다>다. 이건 소설00이란 곳에서 당선됐는데 받진 않았다. 소설 교수님이랑도 얘기를 나눠본 끝에 등단할 곳은 아니라는 판단이 내려졌다. 


이 얘기를 하자면 길지만, 아이들의 순수한 열정을 이용하는 어른들이 많다. 나는 물론 아이가 아니지만. 문창과 실기를 준비하면서 이상한 곳에 등단한 애들이 있었고 어떤 곳에선 착취당하듯 글을 썼다. 안타까웠다. 어중간한 재능과 순수한 열정을 악용하는 거니까. 사실 엔터 쪽 회사에도 굉장히 많다. 그곳도 원리는 같았다. 연기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악용하는 어른이었다. 아이들은 돈이 됐으니까. 정확히는 애들의 부모겠지만. 그리고 운이 좋으면 그 중 한둘은 키울 가치도 있었겠지. 문제는 나머지 8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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