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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호 Dec 19. 2023

안녕한 길을 따라 걷다

4. 고독할 권리**

흘러가는 것엔 방향이 있다. 원숭이 나무 타듯 넘어가는 시간도, 상류에서 하류로 흐르는 강도 그렇고. 이 흐름을 깨는 방법은 역설적이다. 김해경이 자신을 버리고 이상으로 살길 원한 것처럼 극단적이어야 한다. 그 극단의 흐름 속은 시간이 어쩐지 다르게 흘러가는데 그곳에서 튀어져 나와 현재를 살아가는 천재는 시차 부적응에 끊임없이 분열한다.


그럼에도 전혜린을 죽음으로 몰았던 건 분열증이 아니다. 자본주의의 탓이 아니란 거다. 그가 죽은 이유는 세상을 너무 사랑해서다. 그가 왜 죽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이상의 유작이 실존하는가처럼 말이다. 단지 그가 너무 세상을 사랑했기에, ‘평범하게 사는 게’ 죽음이기에.


이봉구에게 기자처럼 보이는 한 남자가 묻는다. 전혜린의 죽음에 있어서 사실관계를 확인하려는 질문이었고 이봉구는 화를 낸다. 자살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말에 기자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왜 그 당시 많은 문인이 죽음을 선택했는가, 가난 때문 아니었을까 하고 혼잣말하지만 죽음에 내러티브가 필요하진 않았다.


이봉구의 말마따나 전혜린은 휴머니스트였다. 세상을 너무 사랑한 그는 안타까운 천재였다. 그는 세상에 대한 상처를 짊어진 채 죽음까지 안고 갔다. 독일에 가고 싶었지만 결혼이라는 방법으론 가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업적과 인정이 여성이란 이유로 손가락질받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가 바랐던 건 비단 여성 인권으로 그치지 않았다. 인간에 대한 존엄이었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존엄한 대우를 받는 것, 그것에 있어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적 구별은 필요 없었다. 


보들레르는 파리의 사회를 적나라하게 그려냈다. 세상이 더 나아지길 바랐던 마음에서 비롯된 시는 지금까지 읽히고 있다. 전혜린이 남긴 수필은 감성적이다. 그 감성이란 소년 소녀 같아서 나이 들수록 찾기 어려워지는 거다. 전혜린의 세상을 사랑한 마음은 김수영의 자유와 닮았다. 언뜻 보기엔 너무나 순순해 어린아이 같다. 팽이처럼 돌아가는 어른들이 신기하던 시절. 각자의 힘으로 세상을 돌아가게 만드는 줄 알았던 어릴 때. 전혜린은 한 명의 독자로서, 작가로서, 휴머니스트로서 자신을 숨기지 않았다. 그 모습은 언뜻 날카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특히 박인환에 대해 말이다. 하지만 전혜린은 박인환을 존경했다. 그 어디에서도 존경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박인환의 시를 외웠다는 거에서 추측할 수 있다. 전혜린은 박인환의 시를 좋아했고 계속 쓰길 바랐다. 박인환이 시 나부랭이 따위라고 말하며 시의 무의미를 논해도 전혜린은 계속 박인환이 쓰길 바란다. 누군가는 그 시를 지금, 이 순간에도 읽으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의미를 찾는다고 하면서 말이다. 어쩌면 전혜린 스스로한테 하는 말일지 모른다. 살아가는 데 의미를 찾지 못했던 까닭은 그가 너무나 세상을 사랑했다는 아이러니 때문일 테니까. 평범해지는 건 죽기보다 싫었기에, 역류한 그는 이상과 어쩐지 닮았다.


<명동백작>에서의 전혜린 모습. 결혼 전후의 모습에서 많이 변한 것이 보인다.


*이 시리즈는 연작입니다.

**이근화 시인의 산문집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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