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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호 Dec 23. 2023

안녕한 길을 따라 걷다

6. 서울 명동부터 상계동까지 글감 찾기*

명동도 서촌도 상계동도 백사마을도 모두 서울이었다. 어쩐지 서울이 문학적으로 느껴졌다. 비문학적인 어떤 획일성과 딱딱함보다 서울은 생각 이상으로 부들부들했다. 만지면 강아지 털처럼 보드라울 것 같아 손을 내밀고 싶었다.


이상과 김유정은 당대 최고의 시인과 소설가인 친구였다고 한다. 이상은 다자이 오사무처럼 동반 자살을 김유정에게 권유했다고 한다. 김유정은 거절했다. 이상은 일본으로 갔고 김유정은 고향으로 돌아갔다. 김유정 문학관은 김유정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형상화다. 소설 속 묘사를 통해 김유정 문학촌이라는 작은 마을을 구체화시켰다. 김해경은 일본에서 생을 마감하며 이상을 형상화시켰다. 전혜린의 자살은 광기의 천재라는 수식언을 붙이게 했다. 김수영도 그런 맥락에서 이름이 빠지긴 어려울 듯하다.


죽음이란 건 포장이 아니다. 덧붙여지는 수식어에 대해 반박도 반발도 할 사람이 없으니, 자꾸만 말이 생긴다. 말이 초원을 달리듯 끊임없이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멈춘다. 그렇게 떠나간 말들이 언덕에 올라가 있다. 고개를 들고 말을 쳐다보면 가히 가늠하기 힘든 경지임이 느껴진다. 천재가 되기 위한 조건은 요절도 자살도 죽음도 아닌데.


이태원 참사의 생존자였던 한 학생이 끝내 자살했다. 형이상학적 죄 때문일까. 무엇이 그를 죄의식에 사로잡히게 했을까. 살아남았다는 게 죄가 되는 세상은 너무 불공평하다. 이런 주장은 일기에 적힌 문장 같아서 어떠한 근거도 없다. 힘없이 떨어지다 보면 추락에 끝이 없어서 방에 말을 가둬둔다. 일기장 안에 적어둔 말들이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방문을 걸어 잠그고.


백사마을은 많은 말들이 갇혀 있었다. 고양이가 자리한 지붕마다 말의 씨가 보였다. 식빵 굽는 고양이의 배를 들추면 알라딘처럼 말이 새어 나올 것 같았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이곳에 살던 사람들을 내쫓고 재개발을 하는 걸까. 아파트가 그렇게 중요한 걸까. 누군가의 고향이, 누군가의 부모가 살던 집을 허물고 새 건물을 짓는다는 게 고양이한테 사료 주듯 간단한 걸까. 어떠한 말로도 이 기분이 나아지질 않는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본 서울은 너무나 컸다. 그리고 너무나 발전했다. 발전이 꼭 유의미하지만은 않다는 걸 알기에 반짝반짝 빛나는 조명이 켜질수록 반감이 생겼다. 이봉구가 명동에서 찾고 싶었던 건 추억일지 모르겠다. 생기있던 그 순간이 전쟁으로 인해 사라졌음을 직접 목격했으니까. 첫사랑이 항상 아름다운 건 그때의 그 순간이 그리운 걸 테니까.


서촌에서 본 이상의 집은 초라했다. 모두가 갈 길 바쁘게 걷는 길 사이에 위치했음에도 주목받긴 어려워 보였다. 학생들이 가득했던 이상의 집보다 주변을 산책했던 게 인상 깊었다. 청와대가 가까웠고 색이 바래진 지붕은 어쩐지 부모님의 주름 같아 보였다. 세월을 숨길 수가 없었다.


글을 쓰다 보면 어떤 흐름이 만들어질 거라고 했는데. 조각난 글들을 모아도 균열은 지워지질 않았다. 그래서 글감을 찾으려고 했다. 언젠간 이 글이 어디선가 새 글이 되길 바라면서 말이다. 처음 글감을 찾으려고 했던 곳은 김유정 문학관이었다.


김유정의 소설이 마을이 된 이곳. 어째서인지 천재들은 일찍 죽었고 그의 유품 하나 없이 글이 이루어낸 마을은 느낌이 이상했다. 무슨 연관성이 있는 건 아니지만 해방일지를 떠올렸다. 교수님은 정지아의 소설을 읽고 기분이 좋아졌다고 했다. 그렇지만 곧 개에게 물려 기분이 나빠졌다고 했다. 개와 소설 사이의 연관성을 생각했다. 우리가 사는 세계엔 비약이 허다하기에 이 정돈 약과 아닐까. 


죽음이 해방이었던 오이디푸스 왕처럼 김유정은 폐결핵에서 벗어나서야 해방감을 느꼈을까. 이상이 권유했던 동반 자살은 안티고네처럼 고귀한 행동이었을까. 죽음도 자살도 아직 경험하질 못해서 하나도 모르겠다. 확실한 건 그의 글도 이상의 시도 여전히 숨 쉬고 있다는 거였다.


학생 때 교과서에 숱하게 실린 김수영의 시를 읽었다. 별 느낌을 받지 못했다. 문학을 예술로서 향유하지 않으면 그 가치는 절감된다. <명동백작>이 아니었다면 그가 말한 ‘온몸으로’ 시를 쓰는 행위는 이해 못했을 거다. 김수영이 보여준 행동은 용기로 일관됐기에 그가 말한 혁명은 해방 그 이상의 의미였다. 진정한 자유에 대한 촉구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도 곰곰이 생각해볼 문제였고.


빨치산인 아버지의 자식이었던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폐결핵으로 죽음을 앞둔 상황에도 글 한 편 더 쓰겠다는 의지는 지금의 우리에게 무엇을 가리키고 있을까. 21세기의 청년들에게 해방이란 무슨 의미일까. 비로소 해방되고 일기를 쓴다면 어떤 내용이 기록될까. 나는 개츠비도 요조도 되지 못할 거 같은데, 그냥 노을 지는 창밖을 바라보다 잠들진 않을까.     


“우리 형일이, 몸은 바보지만 마음은 바보로 살지 않게 해 주세요. 우리 형일이 다리를 깨끗이 고쳐 주세요. 전보다 더 빨리 뛰어다닐 수 있게, 그리고 오토바이가 와도 피할 수 있게 고쳐주세요.” 

(노경실, 『상계동 아이들』, 사계절, 2004. 50쪽.)


동화를 보기 전 당고개역에 갔다. 시장에는 지하철이 지나갈 때마다 두부처럼 떨리는 듯했다. 역으로 가는 길 곳곳은 공사 중이었고 시장 안으로 들어갈수록 서울에서 멀어지는 느낌이 났다. 백사마을과 상계동은 서울과 사이가 안 좋은 걸까. 


아이들이 놀고 뛰던 동네가 이런 곳이었구나, 동화 속에는 공간에 대한 묘사가 없었기에 몰랐다. 이곳이 배경이었다는 말에, 동화 속 장면이 머릿속에서 구체화 됐다. 형일이 어머니의 말도 더 깊이 다가왔다. 모든 부모의 마음은 어쩜 저렇게 일관될까. 나도 저런 날이 올까.     


글이 남긴 흔적을 봤다. 그 흔적은 때론 배려심 없었고 때론 친절했다. 글이란 게 알다가도 모를 사춘기 학생 같아서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한다. 먼저 손을 내밀 때까지 눈을 마주쳐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오래 보아야 한다. 찬찬히 살펴본다. 글이 남긴 흔적을 사랑스럽게.


감정을 글로 표현하는 것에 익숙했다. 처음 연기를 배울 땐 감정 표현이 너무나 어색했다. 글이 아닌 말로 보여주는 것은 낯선 일이었으니까. 그것을 카메라에 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앞으로도 더 걸릴지 모른다. 어쩌면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힘닿는 데까진 해보고 싶다.


사실 내가 실기를 도전하고 글을 쓰는데 엄마는 조력자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연기가 하고 싶다고 엄마에게 얘기를 꺼내기 어려웠다. 이후로 특별한 기억은 없다. 어느 날 갑자기 전화가 왔고 엄마는 내게 물었다. 바다에 뜬 무지개를 본 적 있냐. 엄마는 신나 있었다. 그러곤 카메라로 찍어서 내게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그러고 엄마에게 온 카톡은 아래 사진 한 장이었다.     



*마지막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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