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호 Jan 04. 2024

기차 안에서

그냥 일기

달리는 열차 안에서 글을 쓴다. 사실 열차 안은 글을 쓰기 꽤 편한 공간은 아니다. 일단 ktx 와이파이는 불안정한 편이다. 연결이 안 될 때도 있기도 하고 뭐..


막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다. 어떤 사람의 코골이 소리에 지루할 틈이 없는 객실이다. 내가 치는 타자 소리에 깬 건진 모르지만 코골이를 멈췄다. 글은 어쩌면 가장 오래된 저주일까. 뭔가 괜히 나 때문에 깬 거 같아 머쓱하다. 사실 코골이 소리가 사라져도 달리는 열차의 소음은 이미 귀의 피로를 높여준다.


막차여서 그런가 많이 빈 열차 안이다. 곳곳에선 꿈으로 탈선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황유원 시인 탓인지 자꾸만 기차를 타면 탈선하는 상상을 한다. 기차가 탈선하면 부모님이 슬퍼할 텐데 말이다.


바깥은 영하2도이지만 여긴 패딩을 입긴 덥다. 가디건을 벗어도 더워서 니트만 입고 있다. 그러자 살짝 쌀쌀한 공기가 뭔가 가을 혹은 여름 밤을 알리는 거 같아 시원한 기분이 든다. 엄마는 내가 집에 내려올 때마다 뭔가를 얹어주려고 노력한다. 그 결과 난 빈 반찬통을 들고 내려가 상경 때는 그 반찬통을 가득 채워서 올라간다. 덤으로 죽도 싸주셨다. 내일 아침에 먹으란다.


기차는 정말 빠르다. 청년 할인까지 받으면 17800원인가에 탈 수 있다. 초밥집 갈 비용을 아끼면 서울에서 안동을 갈 수 있다는 뜻이니 이건 놀라운 일 아닌가. 기차에서 메일 좀 쓰고 블로그 좀 하고 그러니까 원주에 도착했다. 1시간만에 안동에서 원주를 갔다니 이것도 놀라운 일이지.


집에 내려가면 내가 올라가길 싫어하는 부모님. 뭐, 나도 나중에 애를 낳으면 이해할까. 모르겠다. 학생 때는 진짜 (과장 좀 해서) 차 한번을 태워주질 않았던 아빠가 성인이 되고난 후부터 언제부턴가 꼬박꼬박 역까지 터미널까지 바래다 준다. 난 지금도 이건 이해가 안 된다. 학생 때는 안 되고 지금은 되나. 사실 그때가 더 고팠는데 말이다.


뭐, 신년도 이러니 저러니 벌써 일주일이 지나고 있다. 내일은 작품 리허설이 있다. 사실 아무것도 준비를 안 한 탓에 내일 난 쪽팔림을 당할 준비를 해야할지 모른다. 부끄러워서 가재마냥 바위 뒤에 숨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뭐 연습은 하러 가야 하니까.  


들어가는 작품이 세 개가 있다. 옛날엔 상상도 못 했을 일이기에 감사할 뿐이다. 감사하긴 한데 여유가 충분하진 않아 슬플 뿐이다. 준비를 얼마만큼 해도 난 만족 못 하겠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 한다는 것은 디폴트니까.


어렵다. 어디까지가 성공이고 어디까지가 실패인지도 모르겠는데 그냥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산다는 건 생각보다 더 성공에 가까운 거였던 거 같다. 



작가의 이전글 새해가 밝아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