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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호 Apr 05. 2024

벚꽃엔딩

그냥 일기

벚꽃이 만개했다. 봄이 되었다는 걸 알리는 신호 중 하나는 꽃이었고 

꽃이 가득한 봄엔 활기가 돋았다. 생기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꼭 산책나온 댕댕이 같았고

난 그 사람들 사이에서 석촌호수를 걸었다. 동호와 서호를 걸어도 빠지지 않는 사람들. 벚꽃잎의 개수보다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벚꽃을 보러 나온지 실감 됐다. 나도 그 중 하나였고


꼭 벚꽃 터널 같은 구간이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봤는데 벚꽃으로 둘러싸여 하늘이 잘 안 보일 정도로. 물론 과장 좀 보탠 표현이지만 그렇다고 거짓말은 아니었다. 벚꽃이 가득해서 우린 함께 웃을 수 있을 것 같았고


나도 모르게 우리란 표현을 썼다. 시를 쓰다 보면 '나'보단 '우리'란 말을 쓰게 된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나도 모르게 쓰는 '우리는 우리를' 같은 표현들


우리로 지칭할 사람이 없어도 1인칭인 나보다 3인칭인 우리가 좋다. 괜히 함께하는 기분이 들어서 그런 걸까. 모르겠다. 모르겠단 표현도 그만 써야 하는데 나도 나를 모르겠는 걸


로이킴의 봄봄봄이란 노래와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이 울려퍼지는 거리. 또 아이유의 봄 사랑 벚꽃 말고나 십센치의 봄이 좋냐 같은 노래들. 봄이 왔음을 꽃과 새보다 먼저 알려주는 가요들이 있다. 시간이 오래 지나도 사랑받는 노래들의 특징을 생각했는데


그냥 듣기 좋은 거 아닐까. 장르를 떠나 듣기 좋으면 그게 노래고 음악이고. 당연한 얘기를 너무 당연하게 쓰는 중인데


이렇게 일기를 쓰는 이유는 열차 안이기 때문이다. 열차 안에선 비약도 몽상도 자유롭지 않을까. 그래서 황유원 시인은 세상의 모든 최대화를 썼던 게 아닐까. 사실 나도 무슨 소리인진 모르겠는데 어쨌든 본가로 내려가는 ktx 안이다. 2시간 동안의 가는 길엔 노트북 두들기기 딱 좋은 시간. 잠자기엔 사실 애매하다고 느끼기도 하고. 


무엇보다 기차 안에선 자는 게 좀 불편하다. 버스만큼의 편함은 없는 거 같다. 아마 불빛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요즘은 행복하다. 너무 행복해서 그 행복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릴 정도다. 이유는 모르겠다. 어떤 사람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지지만 곧 그만큼 아파진다. 이 정도면 나도 정말 병인 거 같다. 개복치 같은 나란 존재, 아니 우리란 존재.


지방 행사 알바를 잡았다. 부산과 광주를 가는 행사였다. 어제 오전에 행사 참여 거부를 밝혔다. 어떤 극단에서 진행하는 지원사업에 붙은 게 이유였다. 행사 실장한테 뭐라고 말할까 생각하다 실장을 소개해준 형한테 전화했다. 그 형이 먼저 실장한테 내 얘길 불었다. 살짝 민망했는데 뭐 그 형 답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올곧을 수 있는 방향으로 쭉 뻗은 나무 같은 분이었고


강가출판사랑도 책 얘길 나누었다. 그래서 뭔가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최대를 보여주고 싶었는데 욕심만 앞서서 글을 못 쓰는 중이다. 그래서 도서관에 가서 시인들의 산문집을 빌렸다. 그리고 알라딘 중고서점에 가서 시집을 샀다. 근 몇 년만일까. 노원 알라딘에 가서 시집을 한 두개 씩 고르는 게 소소한 행복이었던 대학생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냥 벚꽃을 보면서 울고 싶어졌다. 나도 정말 미친 거지. 어쨌든 다른 알바를 구해야 하는데 이것도 이것대로 머리가 아프다. 이 전에는 백화점에 입점한 팝업스토어에서 알바했는데 너무 싫었다. 그냥 누군가가 날 싫어한단 그 느낌을 너무 오랜만에 받은 탓일까. 일이야 거기서 거기니 상관 없었다만 사람이 중요한 거니까. 이렇게 말해도 뭐 그 사람들도 내가 달갑진 않았을 테니 머쓱한 일이다.


기차에서 보는 바깥 풍경을 좋아한다. 이렇게 말해도 거의 노트북 화면만 보지만 말이다. 하늘을 쳐다보면 가끔 귀여운 구름들이 떠다닌다. 물고기 구름. 강한 햇볕. 중간중간 보이는 벚꽃. 작은 천. 


벚나무는 다음 주에 꽃을 떨어뜨릴 거다. 그리고 사실 벚꽃을 질 때가 더 예쁘다. 바람 한번에 수두룩하게 떨어지는 벚꽃잎을 보면 꼭 영화 속 한 장면이 연상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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