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일기
요즘 날씨를 보면 가을이란 말이 어색하다. 한 달 전만 해도 정말 더웠던 거 같은데 어느새 가을도 끝나가고 겨울이 다가오고 있으니까. 가을은 겨울로 넘어가는 중이라는 뜻이 아닐 텐데. 뭔가 대학이 취업사관학교로 전락하듯이 하나의 관문이 된 거 같다. 가을은 겨울로 넘어가는 관문. 그렇게 말하면 뭔가 슬프다.
취업을 하기 위해 대학을 선택한다는 여론을 보았다. 내 얘기 같아서도 할 말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친구들 모두가 공감하는 이야기 같아서. 나는 대학을 그렇게 생각하질 않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백수인 거겠지. 취업을 포기한 청년이 늘고 있다는대 왜 자꾸 인터넷은 내 얘기를 들추기는 걸까.
드라마 촬영이 끝나자 뭔가 아쉬움과 홀가분이 둘다 남았다. 워낙 작은 배역이라 사실 큰 기대는 안 된다. 그럼에도 느껴지는 아쉬움은 나름의 정이 들었단 뜻일까. 세 번을 가면서 촬영장도 스태프도 편하게 느껴졌다. 처음 느꼈던 현상이다. 내가 현장에 익숙해질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홀가분은 끝났다는 것에서 느껴지는 안도감일 거다. 그리고 더 촬영이 없다는 아쉬움. 아직 배고픈데. 아직 목 마른데. 이 정도 찍어선 아직 만족할 수가 없는데 하는 그런.
브런치에 일기를 약 한 달만에 쓴다. 종이 일기로도 따로 쓰질 않으니 한 달만에 쓴 일기란 뜻이다. 매일 일기 썼던 적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힘들어졌다. 자기 전에 책 읽던 습관도.
사실 나태해졌다는 뜻밖에 안 되는 건데. 이렇게 겨울이 다가오면 신춘문예 시즌임을 실감한다. 아마 많은 작가 지망생들은 열심히 글을 쓰고 퇴고 중일 거다. 한 달 뒤면 슬슬 우체국에 들러 등기를 부쳐야하니까. 최고의 작품을 보내기 위해 오늘도 퇴고 중이겠지.
어려운 일들이 많아지고 있다. 첫 째는 건강이랄까. 허리가 아픈 게 낫질 않고 있다. 디스크가 악화되면 안 되는데. 행사 알바를 한 탓이었을까. 다니던 헬스장의 기한이 끝난 것도 한몫한다. 다시 계약을 하기엔 뭔가 돈이 아까운 듯도 하고. 어렵다. 결국엔 다 돈으로 귀결되니까.
유튜브를 시작했고 구독자는 500명을 넘겼다. 광고 수익창출은 천 명부터였고. 앞으로 500명은 또 언제 기다릴까 싶고.
결국 내 수중에 지속적으로 들어오는 돈은 없었다. 이게 가장 큰 문제가 될 거다. 단편영화에 들어가는데 연습을 세 번 한다. 사실 이 연습은 하루 중 3-4시간이지만, 그 3-4시간 때문에 다른 일을 할 수가 없게 된다. 연습을 한다고 연습비를 주는 것도 아니고.
그 사실이 제일 비참해진다. 단편영화를 찍기 전 준비하는 건 문제가 아니지만 돈이 되질 않는다는 것. 촬영은 3회차. 받는 돈은 15. 그러면 15를 6으로 나눈 꼴이 된다. 나의 하루 가치가 3 정도라니.
물론 그걸 몸값으로 연결시키면 안 되는 거다. 몸값이라는 말도 사실 웃긴 거고. 그냥 그렇다고.
이런 푸념을 어디가서 하겠는가. 혼자 썩히긴 싫으니까 이런 곳에서라도 푸는 거고. 찍기로 한 장편독립영화는 촬영이 자꾸만 연기되고 있다. 감독이 감기에 걸린 것 같다. 취소된 촬영 날. 하루만 구하는 단기 알바를 구해야 하나.
그래서 주변에 보면 정말 다양하다. 대리운전을 하는 사람도 있고.
LH집도 신경 써야하고. 읽어야 할 책은 많고 밀린 책은 늘어나고. 연기 연습은, 발음 교정은, 끝도 없는 준비가 막막할 때도 있고. 통장에 돈이라도 가득했으면 좋겠다가도 여기까진 정말 내 욕심 같기도 하고.
가끔은 작품을 하나씩 집중해서 찍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다는 걸 매번 실감한다. 하나씩 찍어서 언제 올라가겠는가. 그래도 뭐 일이 많진 않아서 겹쳐서 찍는 경우는 잘 없긴 하다. 나도 뭔 소리하는질 모르겠다. 이만 말을 줄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