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일기
아아. 아, 목소리가 잘 나오나 확인해야 한다. 이걸 왜 타자로 하냐고 한다면 그냥 리얼리티를 위함이랄까. 어젯 밤엔 술을 마셨다. 이렇게 말하면 거나하게 마신 듯하지만 맥주 한 잔과 소주 반 병이긴 하다. 그래도 목이 잠기고 취한 알쓰라는 걸
잠긴 목이 증명한다. 수유에서 오랜만에 만난 형들과 한잔했다. 연극쟁이들에게 필수는 술이라고, 술을 안 마시는 연극인을 보고 싶을 정도다. 다들 이렇게 술을 좋아하다니.
수유에 오자 가오리역에 있는 연습실이 생각났다. 봄부터 여름까지 저기서 시간을 보냈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기엔 추위가 허락하지 않았다. 최대한 빠르게 역에서 술집까지 이동하였고 막차를 타러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보다 빠르게 역까지 갔다.
올해 미국으로 떠났을 때와 형들은 똑같은 얼굴이었다. 다들 조금씩 바뀐 게 있다면 누군가는 회사에 들어갔고 누군가는 작품을 더 많이 찍었다는 것. 또 누군가는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기도 했다는 것.
다들 이리저리 잘 사는 모습이 그냥 보기 좋았다. 사람냄새 난다는 게 이런 느낌인가.
사실 모임에 가기 전까진 가기 싫었던 것도 사실이었는데
그냥 내향인 특유의 에너지인 것 같다. 모임이 취소되면 생각보다 기분 좋아지는 그런 내향인의 특성..
어떤 형은 모임 전 날부터 설렌다고 했다. 이런 술자리에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을 보면 신기하다. 나는 술자리에서 에너지도 잃고 생기도 잃고 돈도 잃는 편인데
그렇게 옛날 얘기에 추억에 잠기자 도와주셨던 많은 분들 얼굴이 생각났다. 생각하니 좋은 인연들이 많았구나. 그 사실 하나가 지금까지 사람들을 모이게 만든 것 같았다.
조감독님은 1차 회식을 쏘셨다. 19만원을 아무렇지 않게 낼 수 있는 으른이라.. 나는 그냥 게으른 사람인데. 전에 모임 때도 조감독님이 1차를 쏘셨다.
정산하자는 금액이 단톡방에 올라왔다. 역시 술집엔 돈이 많이 나가는구나. 이럴 때면 나도 술고래처럼 술을 마시고 싶다. 술값은 N빵이니까. 허허, 그런데 다시 생각하니까 술 안 좋아하는 게 다행인 듯하다. 어떤 형은 매일마다 소주 페트병을 마신다고 했다. 소주 페트병의 양은 소주 한 병 반이라고. 그래서 양이 딱 좋다고.
이런 걸 생각하면 난 술을 좋아하지 않아서 돈을 아끼는 듯도 했다. 연말이어도 방에서 밍기적 거리고. 이불 안에서
오징어게임2 나왔네, 하고 있고
오늘은 프로젝트의 마지막 날이다. 그냥, 그렇다고. 이따가 2시까지 가야 하는데 벌써 귀찮다. 사실 어제부터 귀찮았다. 아니 한, 일주일 전부터?
성과발표회라는데 가서 뭐하지. 남들이 낸 성과를 구경한다는 건 꽤나 지루한 거였다. 내가 왜 남들이 낸 성과를 봐야하지?
성과, 올해 내가 이룬 성과는 뭘까. 사실 따지고 보면 있겠지만 아쉬움이 남는 해인 건 사실이다. 올해도 등단하지 못 했단 사실이 슬프기도 했다. 내가 그만큼 준비도 하지 않았으면서 말이다. 말로는 당당했는데. 역시 말만 당당했던 것 같기도 하고.
https://www.youtube.com/watch?v=E4O-HSagpXE
내가 즐겨듣는 앨범 중 하나는 윤지영의 '나의 정원에서'이다.
이 유튜브의 첫 댓글(나한테만 그런가)은 '다시 글을 쓰고 싶어졌어요, 감사합니다'이다. 사람들을 가장 쉽게 위로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노래일까 생각했다. 예술이란 건 다시 생각해도 놀라운 거였으니까.
어제 회식에선 예술에 대해 얘기가 나왔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돈이 첫 번째가 아니라고. 돈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었다. 돈보다 중요한 것이 경험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태양의 서커스를 보라고 나에게 표를 사준 형이 있다. 100달러가 넘는 금액을 아무렇지 않게 쓰신 거였다. 꼭 보라고, 내가 사줄 테니까.
지금도 형들의 존재에 감탄했다. 말로만 듣던 선배가 실감 나기도 했다. 선배, 후배를 이끌어주는 사람. 귀감이 되는 사람.
지금도 태양의 서커스를 보던 순간이 생각난다. 무대가 시작되자마자 흘렀던 눈물도. 그랜드 캐니언보다 태양의 서커스에 더 감동 받았다는 사실이 잊혀지질 않으니까.
다음에 라스베이거스를 간다면 스피어를 보고 싶었다. 스피어를 보고 그때 '이모님'이랑도 만나고 싶었다.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길 자꾸만 이모님이 생각났다. 엄마 같은 분이셨다.
아, 오늘 사진은 냉면이다. 이유는 없다. 그냥, 추울 때 더 생각나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가령 아이스크림이라거나 냉면이라거나. 너무 추우면 또 먹고 싶진 않아지지만 적당히 추우면 먹고 싶어지는 것들. 그 중 하나가 난 냉명 같다. 술 마시고 나면 탄수화물이 당기는 법이라고.
그러니까- 오늘은 올해의 마지막 금요일이라는 거. 다들 맛난 거 많이 먹고 새해 복 많이 받을 준비하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