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일기
나는 돈을 빌리지 않는다. 친구 관계에 있어서 하는 말이다. 돈이 없으면 굶는 스타일이지 빌리는 스타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성격 덕인지 잘 빌려주지도 않는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니까 달라졌다.
빌려 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잘 생각해보니 학생 신분에선 잘 몰랐던 것 같다. 사회인이 많아지자 생각보다 돈을 빌려 달라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정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빌려주는 편이다. 오죽하면 나한테 연락하겠냐. 10을 빌려주고. 방금은 또 30을 빌려줬다.
내 통장에 남은 금액은 20이다. 오늘 세탁소와 수선집에 가려고 했는데 다음에 가야겠다.
다들 돈이 참 슬픈 것 같다. 돈, 그게 뭐라고. 그게 뭐라고 하기엔 너무 큰 것 같아서 말을 고쳐야 할 것 같다. 돈, 그렇게 중요한가.
이클래스에 접속하자 대학원생이 된 걸 실감한다. 과제를 열린게시판에 올린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내가 쓴 과제도 볼 수 있다. 조회수를 통해 대충 사람들의 관심을 알 수 있다. 석사 신입인 내가 올린 과제의 조회수는 12. 박사 과정에 있는 어떤 사람의 조회수는 30이 넘는다.
강의가 끝나고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다들 후다닥, 나가는 듯하다. 나 빼고 다 아는 사람인가 하는 기분 탓도 든다. 물론 기분 탓이다. 혼자서 강의실을 나오자 배가 고팠다. 그래서 학부 동기한테 연락했다. 이미 점심을 먹었다고 하여 난 집으로 갔다.
집으로 가기 전에 학생증을 받으러 갔다. 학생식당을 지나가야 하는데 많은 학부생들이 보였다. 밥을 먹기 위해 옹기종기 모인 학우들. 과잠을 보자 대부분 신입생인가 싶었다. 활기가 있어 보였다. 생기가 있다고 할까. 다들 대학생 같아 보였다. 나는 대학원생이 되자 학부생과 대학원생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옛날엔 그냥 대학생, 학우라고만 통일 했는데 말이다. 나도 나이가 드는 것 같다. 뭐, 당연한 말인가.
어제는 어떤 대학원생이 내게 물었다. 20대냐고. 그렇다고 대답하자 강의 중인 책이 이해가 되냐고 물었다. 안 된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그 나이대는 그렇다고 했다.
사실 이번 주 강의 내내 난 그랬다. 이게 좋은 작품인가? 무슨 내용이지? 영화, 재밌긴 한데 그래서 이게 뭔데? 나는 줄곧 몰랐고 이해되질 않았다. 소설을 읽을 때도 잘 이해 못하는 특성 탓인지 다른 분야에서도 서사가 잘 이해되질 않았다.
좋은 작품도 잘 모르겠고. 대학원은 토론식 수업이라고 했는데 사실 잘 모르겠다. 강의식 수업이 여전히 편한 것 같기도 하고. 서로 토론이 원활하게 진행되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물론 서로 오가는 대화(?) 속에서 생각보다 예리한 것들이 많긴 하다. 생각할 거리도 많고. 그런데 그 몇 마디를 위해?
난 여전히 모르는 게 많고 사람들은 내게 대학원 입학 동기를 묻는다. 별 생각 없는데 말이다. 내가 너무 준비가 되어있질 않은 것 같았다. 나만 이렇게 인생 대충 사는 건가 싶고.
어젠 중3 학생 수업이 있었다. 중3 학생은 한 명이라 거의 과외처럼 진행된다. 그 친구는 게임을 좋아했다. 게임하는 낙으로 사는 듯보였다. 나도 그랬었는데. 그런데 그 친구는 미래에 대한 생각은 없어 보였다. 물론 나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속으론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은 걸 하게 놔두는 사회면 어떻게 될까. 그 친구가 하루 1시간만 게임하는 게 아닌 원하는 만큼 게임을 하고 주말에도 공부가 아닌 게임을 할 수 있게 되면 어떻게 될까. 다이아 랭크를 찍을 때까지 게임을 하게 두는 가정이라.
삶의 목적은 어디에 있을까. 최근 생태주의 책을 배우고 있다. 발럼우드라는 작가는 악어에게 물려 죽을 뻔한다. 그러자 깨우친다. 인간은 (동물의) 먹이가 될 수 있구나. 우리가 얼마나 똑똑하든 공부를 했든 별개로 악어 앞에서 우리는 평등한 인간이었다. 그냥 육즙 풍부한 고기일 수 있다는 거다.
사람이 죽으면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종교를 믿는 이유는 이런 거일까. 삶이 덧없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심지어 언제든 죽을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현재 행복하게 사는 게 목표가 아닌 미래를 위해서 산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포기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그런데 의미를 논하는 건 또 어떤 의미일까. 과거-현재-미래는 분열되고 분절된 개념인 걸까. 지금 이렇게 말하는 순간도 현재는 과거가 된다. 1분 뒤라는 말은 1분 뒤에 현재이자 지나간 과거가 되고. 그렇다면 시간관은 단절된 것들이 아닌 연속적인, 이어진 개념인 걸까.
이것에 대해 시간관은 이미 정리가 되어 있다. 사실 여전히 와닿는 건 없다. 이어진 개념이든, 크로노스든 카이로스든. 그런데 그냥.. 행복했으면 좋겠다. 돈을 빌리면서 현생에 치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돈이야 있든 없든 사실 행복과 비례하지 않을 수도 있는 건데. 부족해도 부족한 데로 살아가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언젠간 모두가 빌린 돈을 갚을 때가 올 거다. 다시 빌리게 될지도 모르지만 다들 돈 걱정 없이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