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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학원 생활

그냥 일기

by 수호


몇 번째 슬기로운 학원 생활인지 모르겠다. 한 주가 지날 때마다 중1 학생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이 아니었다. 학원엔 요즘 감기 유행이 도는 것 같다. 시험기간이 다가와서일까. 다들 컨디션이 좋아 보이질 않는 것 같다.


시험이 다가오면 이상하리 만큼 아픈 친구들이 많다. 다들 컨디션 관리 잘 해야 할 텐데, 생각해 보면 나도 그랬다. 이상하게 시험만 다가오면 아팠다. 의사는 내게 시험 증후군이리고 했다. 난 그 말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었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무언가 압박이 다가오면 사람은 힘들어지는 것 같다. 사실 별로 공부를 열심히 한 학생이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영향을 받았는지 잘 모르겠다. 근데 이건 성적과는 별개의 문제 같다.


중1 친구들은 언제나 해맑다. 틈이 있으면 폰 만지고 싶어하는 여학생들과 고마워요, 말해달라고 하는 남학생들. 한쪽 구석에서 누워서 자거나 폰을 몰래 만지는 여학생 친구도 있고 조용하고 과묵하고 수염이 자라고 있는 남학생 하나.


쌍둥이 친구들은 그 중 특히 밝다. 고마워요, 말해달라는 친구들이기도 하다. 둘은 정말 점으로 구별해야 할 만큼 닮은 친구인데 성격도 비슷하다. 그 중 한 친구는 내게


쌤, 오늘은 행복해 보이시네요.

그래요?

행복하고 슬퍼 보여요.

?


아이들의 통찰력은 무섭다. 저번주보다 오늘은 행복해 보인다고 하였는데 거기에 슬픔도 있었다. 이유는 묻지 않았다. 사실 그렇게 느껴진다는 데 이유가 뭐가 중요할까.


그리고 기분 탓이면 좋겠지만 아이들은 날 뚫어져라 쳐다 본다. 사실 누군가가 날 보는 걸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그런데 어린아이들은 무언가를 뚫어져라 볼 때가 있다. 그게 중1들도 그럴 줄은 몰랐다. 중2부터는 그러진 않는다. 사실 여기엔 차이가 있다.


수업에 집중해서 보는 것과 내 얼굴을 뚫어져라 보는 것은 다르게 느껴진다. 정확하게 설명은 못하겠지만 그냥 그렇다. 그러면 그냥 나도


쌤 얼굴에 뭐 묻었어요?

아니요.


지나치게 솔직한 학생들이라 거짓말할 생각도 없다. 그래, 보고 싶을 수 있지. 뭐가 눈에 꽂혔는진 모르겠지만.


중2 수업 때였다. 자전거를 급하게 타고 온 탓인지 더운 탓에 외투를 벗고 반팔만 입은 채 수업을 진행했다. 나의 쇄골 부분엔 작은 레터링 타투가 있다. 근데 그게 보였나 보다. 여확생 둘이 귓속말하는 게 들렸는데 의식이 됐다. 아, 원장쌤 귀에까지만 안 들렸으면 한다. 이젠 외투 벗지 말아야지.


사실 타투라는 건 뭐랄까. 나도 나이를 먹고 알게 된 건데 생각보다 감내해야 되는 것들이 많았다. 학창 시절, 교실에 떨어지는 쓰레기를 선생님이 버리라고 했다. 내가 버리지 않은 쓰레기라서 억울한 마음도 그땐 들었던 것 같다. 제가 안 버렸는데요, 반문하면 담임 쌤은 쓰레기에 이름 적혔냐고 했다. 그냥 줏어라 그런 말이었나. 어쨌든. 타투를 했다는 건 내가 버리지 않은 쓰레기도 버려야할 때가 생기는 것 같다. 내가 만들지 않은 시선이나 눈들이 따라오곤 하니까. 그리고 그것에 증명을 필요로 하는 듯도 했다.


어젠 뭐처럼 진짜 책 한번 안 펼쳤다. 시험 기간이라고 연합 회의도 2주간 미루기도 했고. 저녁엔 영화를 봤다. 야당. 예전에 야당 이미지 단역 역을 캐디에게 연락 받았다. 수영장 파티 씬. 마약을 한 사람들. 그땐 너무 낮은 금액에 참여하지 않았다. 수영복 입었는데 이건 좀..


영화를 보면서 충격이었다. 마약을 한 사람들의 표현 중 하나는 성적이었으니까. 난교 씬도 나왔다. 역겨웠다. 영화가 19세 이상인 건 알았지만 진심으로 역겨웠다. 어쩌면 외면했던 것 같기도 하다. 마약과 술의 결과물 중 하나일지 모르는데. 그런데 난 그 난교 씬에서 이태원 참사 장면이 떠올랐다. 누군가가 죽어가고 있는데 춤을 추고 있는 그런 짧은 영상이었다.


잘려고 누웠다가 떠오른 소식을 눌렀다. 이태원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할로윈 데이였다. 그리고 그 짧은 영상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누군가는 죽어가는 사람,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춤추는 사람. 기괴했다. 무서웠고. 다른 영상들도 몇 개 있었는데 내 기억 속엔 여전히 그 춤추는 영상만이 기억에 남는다.


야당에서 본 장면도 그랬다. 검찰이 들어닥친 상황에도 사람들은 각자의 본능적인 행동에만 충실한다.


사실 야당을 다 보고 어젯밤 잠에 들 때도 그 장면이 생각났다. 영화임에도 너무 역겨웠다. 하필 내가 최근에 공부하는 게 <성스러운 동물성애자>라는 책이었다. 진정한 주파일(동물성애자)은 동물에게 가학적으로나 성적 도구로서 이용하는 게 아닌 동물이 원할 때만 한다는 거였다. 오히려 파트너(책에선 대표적으로 수컷 개) 자신의 항문을 내어주는 주파일 게이도 있었다. 사람도 서로가 원할 때에만 관계를 맺는다는 건 힘든 일일 텐데 동물과도 그런다는 건 너무 신기하고 대단한 일이었다. 나의 편견과 무지를 깨주는 책이었는데


어제 야당을 보고 잠에 들기 전 다시 그 책을 좀 읽다가 잤다. 주파일 중에는 쥐와 사는 사람도 있었다. 쥐 7마리는 파트너 개념이 아닌 무리였다. 그리고 당연한 거지만 성관계는 맺지 않는다. 주파일은 고양이와도 하지 않는다. 말이나 대형 견처럼 서로의 체형이 어느 정도 보완(?)될 때만 그 관계를 형성하고 동물이 원할 때만 한다. 사실 그 원하다는 표현이 나도 책을 읽기 전까지 아니 책을 읽는 중에도 이해가 온전히 되질 않았다. 동물이 원할 때?


동물을 오래 키웠지만 동물이 시그널을 보낸다는 건 가늠이 안 됐다. 물론 발정기의 수컷 개가 다리에 메달리거나 허리를 움직이는 등의 행동은 본 적 있다. 하지만 그것도 매체에서나 영상으로 본 것이고 실제론 본 적 없었다.


갑자기 동물성애 애기를 하려는 건 아니었는데. 어쨌든 <야당>은 그랬다. 더 얘기하면 스포니까. 그래도 마지막 반전에서 준 카메라 워크는 너무 인상 깊었다. 줌 아웃이 되면서 줌 인이 되는 듯한 카메라 워크였다. 물론 영상을 다시 봐야지 자세히 알 것 같았는데 같이 영화를 본 사람도 그 장면을 기억했다. 진짜 압권인 샷이었다. 영화의 내용이 어떻고 잘 만들었고를 떠나서 그 샷은 정말 정말 멋졌다.


단지 야당에서 슬펐던 건 너무 사실적이었다. 난교 씬은 정말 짧았지만 너무 역겨웠고 마약을 주입하는 주사기를 볼에다가 꽂고 그걸로 계속 폭행(가학)을 저지르는 장면 등 너무 사실적으로 묘사된 장면이 많았다. 청불을 달아놓으니까 영화가 미쳐 날뛰는 느낌이었다. 물론 현실에서도 충분히 가능하고 영화보다 심한 일도 많으니까 문제는 없지만


내 옆에 여자 관객은 보기 힘들어 했던 것 같다. 거의 강하늘 배우에 동화되어서 영화를 보고 있었다. 비명도 지르고 눈도 가리고. 안타까운 신음 소리도 내고.


그리고 강하늘이 맡은 '야당'이라는 마약 브로커의 직업은 가히 신기했다. <댓글부대> 속 댓글 알바 혹은 영화 속에 나오는 삼성 댓글 관리팀이 생각 났다. 실제로 있냐 없냐도 궁금하지만 너무 있을 법한 일이었다. 또한 하필이면 최근에 강하늘 배우가 맡은 영화 중 하나는 BJ였다. <스트리밍>은 나도 보질 않았지만 영화 속 강하늘 배우는 싸이코(?)적인 면모를 가진 비제이였던 것 같다. 뭔가 이번 <야당>과 비슷하게 볼 수 있는 성격들이 좀 있을 것 같았는데 영화를 안 봐서 더 얘길 못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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