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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

그냥 일기

by 수호


어젠 오디션을 보고 왔다. 뭐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하핳.

오늘은 비가 온다. 어제 새벽부터 왔던 것 같다. 장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했다. 덥고 습하고 비가 와도 시원하질 않는 것 같았다.


어젠 무척이나 더웠다. 30도라는 기온이었던 것 같다. 오디션장엔 여러 사람들이 보였다. 긴장을 지울 수 없어 보이는 사람과 여유로워 보이는 사람. 교복을 입고 온 남자 둘. 나는 열심히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내 이름이 불렸다. 이름이 불리고 오디션장에 들어가는 동안 다시 긴장이 시작했다.


생각했던 분위기였다. 단지 사람이 한 명이라서 조금 당황스러울 뿐. 심사를 하는 사람은 무관심해 보였다. 정확히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달까. 인사를 하든 말든 그냥 관심이라는 것 자체가 귀찮아 보였다.


나는 그렇게 긴장을 지우지 못한 채 뚝딱거렸던 것 같다. 하, 하고 난 다음 생각이 많아졌다. 바로 다음 거 해야 되니 그럴 시간도 없는데. 입고 온 셔츠를 벗고 다음 지정 연기를 하려고 했는데 까 먹었다. 그렇게 시작한 연기, 자유연기까지. 반응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궁금한 거 있어요? 묻는 마지막 말에

잠시 생각하다


혹시 피드백 부탁드리면 송구스러울까요? 라고 했다.


그러자 피드백이 시작됐다. 내 눈을 처음으로 본 것 같았다. 여러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 중 충격이었던 건,

왜 초등학생으로 잡았어요?


?


머릿속에 물음표가 찍혔다. 그렇게 안 잡았으니까. 그냥 땡깡 부리는 거였는데 그렇게 보였던 거였다. 그렇게 보인 것이니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안 잡았어요가 중요한 게 아닌 그렇게 보인 게 중요한 거니까.


상식적인 선에서 이 대본이 초등학생으로 잡을 수는 없지 않나요? 하는 식으로 말을 이어붙였다. 자기 편한 대로 연기하려고 한 거로밖에 안 보인다 등등


왜 그렇게 잡았어요? 그가 물었다.


아무 말도 못했다. 내가 너무 과했나. 그런데 초등학생 응석으로 보일 정도라니. 편한 연기 아닌데. 난 이런 연기 제일 싫어하는데. 나한텐 큰 도전이었는데 심사하는 입장에선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그가 해준 말이 어제 하루를 지배했다. 초등학생, 초등학생.


학원에서 수업을 진행했다. 중학생 애들한테 너무 힘을 썼는지 마지막 고2 수업 때는 발음이 자꾸만 샜다. 왜일까. 내가 너무 피곤했나. 사실 신경 썼던 것이 허무하게 끝났을 때의 그 허망함이 날 너무 실망시켰던 것 같다. 이렇게 내 오디션은 개같이 망했구나.


오디션 전 날, 친구한테 전화로 연습했다.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이 많아졌다.


퇴근 후, 피로가 밀려오는 느낌이었다. 걸어가려다 도저히 힘이 나질 않았다. 그래서 걷다가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도 집까지 10-15분 정도는 걸어야 했다. 이 착잡한 기분을 어떻게 할까 생각했다. 친구한테 전화로 털어놓으면 편해질 것 같았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그렇게 잠에 들었던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오고 있었고 오후에 회의를 가야 했다. 귀찮다. 서울국제도서전도 오늘 예약해뒀는데 사람 많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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