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일기
사실 이 정도 더위면 재난이 아닐까 싶을 만큼 사악한데, 지구 어디에서는 진짜 재난이 일어나고 있다. 전쟁은 갑자기 많아졌고 물리적 전쟁뿐 아닌 관세라는 탈을 쓴 전쟁도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한국의 낙농업은 큰 위기를 앞두고 있다고 한다. 멸균우유의 수입으로 인한 국내 우유가 가격 경쟁에서 밀려났고 낙농업은 청년들이 이을 생각이 없다고 한다. 이 상태로 유럽에서 넘어오는 우유에 관세가 붙지 않는다면 국내 우유는 가격 경쟁에서 밀리게 될 것이다.
물론 기존의 국내 우유사의 문제가 많았다. 저지방 우유라고 했지만 실상은 기업에게 유리한 포지션을 가져가는 우유였고 어떻게 보면 자업자득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수입산에만 의존하게 되는 미래는 마땅하질 않은 것 같다.
러시아에서 지진이 일어났다고 했다. 8.7이라고 했나. 그 정도면 주변 지각에도 영향을 미칠 정도라고 한다. 하와이와 일본에선 주의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 대지진이 07.05라고 떠뜰었던 이야기를 본 적 있다. 정확한 날짜를 맞춘다는 건 사실 사람의 영역 밖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쓰는 시간 개념 자체가 인간들만이 합의한 결과물인데 그것이 자연과 일치할리가. 더욱이 인간들만이 합의했다고 하기엔 시간관이 다른 부족도 존재한다. 현재 쓰이는 2025년이라는 개념도 서구에서 넘어온 곳이고
예수 탄생 2025년이라는 건 통용되지 않은 개념일 수 있다. 그렇기에 7월 5일이라고 예고한 대지진은 처음부터 우습게 느껴졌다. 못 맞추면 만 5일이라고 하려나 싶기도 했고. 사실 이런 얘길 하려는 게 아니고
재난을 우리는 가볍게 여기는 것 같다. 2017년 수능 전 날, 포항에서 지진이 일어났다. 하지만 사람들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지진으로 인한 생명과 안전 조심보다는 수능이 미뤄진다는 사실에 분개한 것 같았다. 반응이야 원래 엇갈리는 거지만 이해가 되질 않았다. 이태원 참사가 있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학교의 에브리타임에선 반응이 엇갈렸다. 놀다가 죽은 애들인데 왜 추모해야 해?
공대생이 많은 학교라지만 이해가 되질 않았다. 추모가 언제부터 기준이 있었을까. 놀다가 죽으면 추모를 받으면 안 되는 걸까. 익명의 힘을 빌린 공간이라 그런 말이 오간 거라고 자위했지만 그럼에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다가올 재난에 대해서 한국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더라도 분명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2011년처럼 일본에 쓰나미가 닥치면 일본만의 문제가 아닌 것처럼. 물론 지금의 세계 흐름은 글로벌이 아닌 것 같다. 각 국가들은 각 민족 국가를 얘기하는 것 같다. 합치가 아닌 자국 중심으로 말이다. 물론 미국의 트럼프 한 명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이라는 나라가 그렇게 된 게 너무 큰 것 같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책을 읽었다. 우리가 보름달을 얼마나 볼 수 있을까요, 식의 제목이었다. 책 제목만큼 내용이 아름답진 않았다. 그냥 사카모토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읽어볼 정도다. 거기선 트럼프와 바이든 얘기가 짧게 나온다. 트럼프가 당선되질 않길 바랐던 사카모토. 아마 예술을 하고 인문학을 공부한다면 트럼프를 지지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얘길 하면 좌파로 몰아가는데 글쎄.
장강명 작가도 우파다. 본인이 보수라고 얘기했다. 나 또한 보수 진영이다. 보수라고 윤석열 전 대통령을 지지하냐고 하면 그건 아니다. 그렇다고 현 정부를 지지하냐고 했을 때도 그렇지 않다. 세상은 내가 보는 것보다 더 촘촘하고 예민하고 이해관계 투성이인데 보이지가 않는다. 만약 그런 걸 볼 수 있게 된다고 묻는다면 그 대답 또한 글쎄
나는 그냥 살기 좋은 나라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모두가 행복할 순 없지만 덜 상처 받는 세상이 있었으면 좋겠고. 그런 세상이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최근에 <애프터 양>을 봤다. 음악 감독이 류이치 사카모토였다. 책에서는 아주 짧게 한 문장으로 애프터 양이 나왔다. 사실 류이치 사카모토에게 애프터 양은 별 관심 가는 영화가 아니었는 듯하다. 영화를 보면서 낮게 울려 퍼지는 피아노 소리가 마음을 건들였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피아노는 신기했다. 양의 마음이, 아빠의 마음이 피아노처럼 천천히 울려 퍼졌다.
<애프터 양>을 본 사람이 얘기했다. 완벽한 인공지능 형제와 불완전한 인간 형제 중 누구를 선택할 거냐고. 나는 후자였고 그는 전자였다. 그는 도라에몽 같은 존재가 필요했던 것 같다. 도움이 되는 존재. 인간 형제는 도움이 되질 않은 확률도 높았다. 적이 될 확률도 존재하고.
그럼에도 나는 인간 형제가 맞다고 생각했다. 전지전능한 건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가장 완벽하고 전지전능한 존재인 신을 만들었지만 신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예수는 유대인에게 죽음을 맞이한다. 자신의 제자에게도 배신 당하고. 물론 그런 모두를 사랑으로 품어주는 존재다. 그렇기에 신인 것이다. 신은 완전할 수 없지만 사랑으로 모두를 품어줄 수 있는 존재, 그게 인간이 가장 궁극적으로 바랐던 지향점 아닐까.
물론 이 얘기에서 기독교를 고려하질 않았다. 보면서 불편하다면 죄송하다.
최근에 든 생각이다. 애니메이션처럼 비현실을 다룬 이야기들은 결말이 참 중요하다. 이것은 비단 비현실이 아니다라는 걸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이다. 도라에몽의 결말은 꿈이다. 물론 이것은 팬이 만든 것으로 알고 있다. 작가가 죽었기에 결말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팬의 바람은 도라에몽이 비현실로 그치질 않길 바란 것이다. 꿈일지언정 꿈을 꾸는 순간 만큼은 가장 행복한 현실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진격의 거인 결말은 매우 흥미롭다. (영화 기준이다)
진격의 거인을 역사로 만든 것이다. 그러니까 거인이라는 비현실, 판타지가 아닌 실제 있었던 얘기로 둔치시킨다. 그래서 진격의 거인을 좋아하는 팬들은 역사라고 말하게 되는데, 결말을 실제로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먼 미래, 그러니까 지금의 우리들이 영화관에서 진격의 거인을 보는 것으로 결말이 끝난다. 이는 진격의 거인을 보는 우리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영화를 보는 인물들은 <진격의 거인> 주인공인 엘렌, 아르민, 미카사다. 그들은 후손이자 먼 미래에서 자신들의 조상이 거인이 되며 인류를 위해 싸웠던 역사를 극장에서 보는 것이 된다.
이러한 결말은 개인적으로 굉장히 흥미로웠다. 자기가 좋아하는 이야기가 단순히 가짜가 아닌 진짜가 되길 바라는 팬들의 바람을 잘 반영한 것 같았다.
일본에 갔을 때, 놀라운 것은 <귀멸의 칼날>이었다. 마침 무한성 편이 영화로 개봉하고 있었는데 역사에는 귀살대가 있었다. 그리고 각 역사마다 귀살대 인원이 배치되어 있었고 스탬프를 찍을 수 있었다. 훗카이도 곳곳에 위치했고 스탬프를 찍는 가족을 봤다. 여자 아이와 엄마, 아빠. 평범한 가족으로 보인 그들은 스탬프를 찍고 사진을 찍으며 좋아했다. 엄마와 아빠, 아이가 모두 <귀멸의 칼날>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보고 좋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국에선 가능할까 생각했다. 우리도 서울의 역사 곳곳에 스탬프를 배치하는 건 어려워 보이질 않았다. 그렇지만 <귀멸의 칼날> 같은 캐릭터가 있을까 싶었다. 케데헌? 글세, 우리나라가 만든 건 아니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에겐 원피스, 나루토, 귀멸의 칼날 같은 캐릭터가 부족했다. 국민이 좋아할 콘텐츠인가, 그리고 좋아할 캐릭터와 이야기인가 했을 때 우리는 모두를 충족시키기 어렵다. 일본도 물론 마찬가지겠지만 가족이 모두 한 콘텐츠를 좋아한다는 건 보기 좋아 보였다.
지금처럼 유튜브와 케이블, OTT 등 각자의 플랫폼으로 경쟁하는 시대 속에선 쉽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