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아니면 폭우

그냥 일기

by 수호


오늘 밤태풍이 온다고 한다. 그러니 다음 주는 폭염 아니면 폭우랬다. 강우량을 보니 남해안 지역은 꽤나 심각할 것 같았다. 태풍이 올라오는 탓인지 날씨 또한 굉장히 습해졌다. 어제만 해도 덜 습한 것 같았는데 말이다.


금요일 막차를 타고 안동으로 내려오는 기차 안이었다. 대피도우미석으로 좌석을 예약했는데 옆 좌석에 앉은 아저씨가 정말 매너가 없었다. 신발은 벗은 하얀 양말이 드러나는 발에선 꼬릿한 냄새가 올라왔다. 귀를 아무렇게나 파는 모습이나 팔걸이 부분을 자꾸 자기 혼자 썼다. 나에게 팔걸이는 공용 부분보단 경계선에 가까운 것인데 그 분에겐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사실 그래서 열차 안에서 내내 불편했던 건 사실이다. 나 또한 땀냄새가 엄청 날 것 같아서 할 말은 없었던 것 같다. 그냥, 나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덜 주는 존재가 되어야지 하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나도 어느 상황에선 누군가에게 안 좋게 보일 것 같았다. 그 사람에겐 사실 그게 자연스러운 모습일 수도 있으니까. 나에게 자연스러운 모습이 누군가에게 안 좋은 모습이라면 어떨지 사실 가늠이 안 된다. 남을 너무 의식하고 위할 필요는 없지만 같이 더불어 살아간다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 같았고


가족이 어젠 다 같이 모였다. 자전거도 타고 밥도 먹고 그렇게 종일 돌아다녔던 것 같다. 상주의 한 카페를 갔는데 알파카가 있었다. 토끼와 개, 오리, 공작과 이름 모를 새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먹이를 줄 수 있게 당근을 1000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혹은 리뷰를 쓰면 당근 하나를 갖고 갈 수 있게 했다. 당근이라는 먹이가 내 손에 있자 알파카부터 시작해 모든 동물이 내게 관심을 보였다. 당근이 없어지자 관심이 없어졌다.


당근은 힘이었다. 힘이 있을 땐 이렇게 참 다들 달려드는데.


가족들에게 내가 만든 영화를 보여줬다. 영화를 보여준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일단 모두가 한 자리에 모이게 만들 수도 없었고 20분 남짓한 단편영화이지만 20분을 집중시키는 건 더 어려운 일이었다.


태풍이 온다는 소식 탓인지 형들은 일찍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다시 조용해진 집, 나의 본가는 이렇게 조용한 곳이었지. 어젠 다 같이 늦게까지 형들과 게임을 했다. 아마 우린 나이가 마흔이 넘어도 게임을 할 것 같았다. 몇 살이 되어도 마찬가지일 것처럼 그렇게 새벽까지 게임을 했다.


덥다, 더워서 지친다. 습하다. 내 자취방과 마찬가지로 본가에도 에어컨이 없다. 형들은 이게 더욱 힘들게 느껴졌던 것 같다. 하긴 에어컨 없이 사는 것과 있다가 없는 건 다른 차원이니까. 사실 본가가 내 자취방보단 더 시원한 편이다. 금요일 밤엔 정말 쾌적하게 잤다. 이불을 덮고 자야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 만큼 날씨가 시원했다. 땀을 흘리지 않으면서 아침에 일어났다.


오늘은 사실 습해서 좀 지치긴 하지만 그래도 쾌적하다. 매미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조용한 시골. 시골이라 해서 시원하지 않다는 게 현실이긴 한데 뭐. 그렇다고 자연이 그렇게 뛰어날까 하면 그것도 아니다. 사실 오히려 서울 도심 공원이 더 보긴 좋다. 얼마 전엔 화랑대 공원에서 올빼미를 봤다. 올빼미 새끼였다. 신기했다. 서울 도심의 공원에서 올빼미 새끼가 발견되곤 합니다?


분명 성체도 있다는 뜻일 텐데, 올빼미는 맹금류 아니든가. 그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사진을 찍다 주변을 둘러봤다. 난 자신 있었다. 성체에게 질 자신.


한강에선 수달이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국립극장에서 올린 연극의 제목이 맞았다. 서울 도심의 개천에서 작은발톱수달이 발견되곤 합니다. 작은발톱수달은 못 봤지만 올빼미 새끼 둘은 봤다. 아직 새끼인지라 귀엽고 털이 부들부들할 것처럼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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