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한 글을 써야지

그냥 일기

by 수호


오늘은 오랜만에 촬영을 갔었다. 학생들 공모전 촬영이기에 규모가 크지도 않았고 준비할 것도 없었다. 사실 준비할 시간도 없었다. 전 날 밤, 문자가 왔다. 내일 시간 되세요?


그렇게 인천 영종도로 갔다. 을왕리는 두 번째였다. 1년 전인가, 2년 전에도 을왕리에서 촬영이 있었다. 유튜브 촬영이었고 겨울이었다. 매서운 바닷바람이 불어오지만 나는 상의를 벗고 있었다. 오늘은 태풍과의 싸움일 줄 알았는데 점점 비가 내리질 않다 집에 갈 때쯤에는 해가 떴다. 폭염 아니면 폭우랬는데 오늘은 둘다 아니었다. 그냥 소나기 정도랄까 이 정도면. 돌아올 때 합정에서 내부순환로를 이용했는데 맑아진 날씨 덕인지 홍대엔 사람이 많았다. 원래 많은 곳인가.


촬영은 재밌었다. 6월에 인덕대학교 학생들과 뮤직비디오 과제 작품을 촬영했는데 그때 뵀던 친구들도 있었다. 이미 아는 얼굴이 있어서인지 편하기도 했고 상대 여배우가 활발했다. 본인 피셜로 자기는 진돗개 스타일이라고 했다. 리트리버나 이런 건 들어봤는데 진돗개는 처음 들어봤다. 어쨌든 그 만큼 사람을 좋아하고 잘 따른다는 뜻이라고 했는데 객관화가 잘 되어 있었다.


내 손목을 잡아서 위치를 이동시키는 등 스킨십이라기엔 애매하지만 스킨십(닿긴 했잖아)을 아무렇지 않게 그는 했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티는 내지 않으려 했지만 뚝딱 거렸던 것 같다. 어? 닿는데? 어 잡는데? 어?


오랜만에 손길이라 그런가 부드럽고 좋았는데, 이런 걸 쓰고 있자니 뭔가 솔직한 게 아니라 변태 같기도 하고


나름 합이 잘 맞았다. 웃음 코드도 비슷했던 것 같고. 또래에다 같은 직종(?)을 만난 탓인지 나도 신났다. 그렇게 촬영이 끝나고 집에 도착하자 그가 생각났다. 흠, 인스타 맞팔을 핑계로 카톡을 보내봤는데


지금의 나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답장을 봐선 얘기를 나눌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이게 무슨 의미일까 싶기도 하고. 사실 여기까진 평소에도(?) 종종 겪는 일이기에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카톡을 다시 보니 그가 알 수 없음으로 떴다. 알 수 없음? 이거 차단했을 때 뜨는 거 아닌가. 혹시나 부담이 될까 봐 문자 내용을 종지부를 찍어서 보냈다. 항상 건강하세요, 같은 이런 마무리 말.


이유는 모르겠다. 사실 다른 건 상관 없는데 괜히 신경이 쓰이는 표시였다. 알 수 없음이라. 단톡방에 그는 알 수 없음으로 표기되고 있다. 나만 그런 건가.


뭐, 이렇게 적어두니까 그냥 뭐랄까. 좋은 말로 하면 금사빠인가. 사실 호감 내지 관심이긴 한 것 같은데 흠. 아 혹시나 오해될까 봐 언급하자면 커플 역이었다. 나는 연기 이전에 관계를 중요시 여기는데 이런 촬영 때는 매번 힘들다. 처음 보는 상대가 내 여자친구라니. 그래서 난 나중에 결과물을 보고도 만족하질 못한다. 스스로가 어색함을 느낀다. 상대가 나에 대해서, 내가 상대에 대해서 덜 친한 게 보인다. 커플, 친구 이런 거는 사실 가장 연기하기 어려운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친한 척할 수 있지만 친한 건 별게니까.


3년 전인가, 아마 연기를 시작한 초창기였던 것 같다. 홍보영상 보조출연을 갔었다. 홍대의 어떤 출구앞에 위치한 술집이었다. 크기가 컸던 곳이고 야외포차 같은 느낌의 컨셉이었다. 그곳에서 처음 본 상대와 마주 앉아 술잔을 부딪혔다. 그는 홍보영상에서 딸 역할로 나오는 분이었다. 나와 비슷하게 생겼던 느낌이었는데 물만 든 술잔을 여러 번 부딪혔다. 내 기억이 맞으면 8, 9번 부딪혔는데 뭔가 취해가는 기분이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웃는 게 매력적이었고 홀리는 기분이었달까. 촬영이 끝나자 술에서 깬 기분이었다. 아무 생각없이 집에 돌아갔는데 돌아가면서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그가 누군지 연기를 지금도 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그냥 서로 묵묵히 일하다 보면 만나겠지 생각했지만 한 번도 만나질 못했다.


사실 배우가 배우를 만나는 건 흔한 일 같았다. 공연 무대를 준비하면서, 촬영을 하면서 만난 연이 연인으로까지 발전하는 경우를 말이다. 사진 작가와 만남을 계기로 이어나가기도 하고. 사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신기할 뿐이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내가 너무 소극적인가.


그냥 솔직하게 글이나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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