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일기
나는 분명 간절했었다. 간절했고 바랐던 것 같았는데 사실 덜 간절했던 것 같다. 되게 오래도록 기다렸던 오디션인데 나는 사실 준비가 되어 있질 않았다. 바라기만 했고 욕심만 앞섰다. 어떻게 해야 할까.
오디션 연락이 왔다. 연락이 오고 정확하게 일주일 뒤였다. 어떻게 보면 충분히 연습할 시간임에도 난 충분하게 하질 않았던 것 같다. 일단 변명 먼저 하자면, 딜러 특기에 대해 자신이 떨어졌다. 딜러 배역 오디션을 보는 건데 내 실력이 전문가 수준은커녕 너무 모자란다는 것이다. 홀덤펍에 급한 대로 가봤지만 돈이 부담 됐다. 그리고 나는 게임 참가자가 아닌 딜러를 연습해야 하는데 할 곳이 없었다.
당근에도 에타에도 올려봤지만 관심을 가져주는 한둘이 있을 뿐이지 아무도 게임을 참여하러 오진 않았다. 그래, 모든 연습은 원래 혼자서니까. 근데 딜러는 게임을 진행하는 역할인데
피칭이라도 급한 대로 연습하다 깨달았다. 나 생각하니까 홀덤 테이블에서 딜러 의자에 제대로 앉아본 적도 없었구나. 높이가 다르고 위치가 달랐다. 카드도 달랐고 무게도 다른 느낌이었다. 내가 가진 카드보다 홀덤펍에 있는 카드가 더 잘 섞이고 날려졌다.
연기를 못하면 덜 준비 되었구나 하거나 뭐 그럴 것 같은데, 특기가 준비가 안 된 경우엔 어떤 반응이 나올지 모르겠다. 사실 그게 좀 두렵기도 하다. 가서 내가 실수하면 어쩌지. 카드가 엎어지면 어쩌지. 딜러 영상을 찾아볼수록 자신감만 떨어졌다. 한 손으로 피칭하는 딜러의 숏츠를 보자 나도 모르게 주눅들었다. 아, 저게 딜러 중에서도 간지 넘치는 딜러지.
뭐, 그렇게 주말을 어영부영 보내버렸다. 금요일엔 회의가 있었다. 그래서 광복절에 학교를 갔다. 사실 광복절에 학교에 모인 학생보다 교수자가 더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공휴일에 출근하는 교수라, 이것도 쉽지 않지.
회의엔 학부생도 있다. 대학생들을 볼 때면 자꾸 옛날 생각이 난다. 나도 저때는 내가 많이 아는 줄 알았는데, 많이 배운 줄 알았고, 항상 겸손해야 하는데 그러는 게 쉽지 않았다. 나의 사고에서 모든 것을 보려고 했고 이해하려 했고
물론 누군가가 나를 위처럼 똑같이 생각할 수도 있다. 난 여전히 배움도 부족하고 모자란 게 많으니까. 그런데 오지랖이랄까. 나이가 들면 확실히 오지랖이 생기는 것 같다. 말을 내뱉으면 꼰대가 되는 걸 텐데 뭔가 알려주고 싶고 굳이 후회 안 했으면 좋겠는데
겪어보기 전까진 모르는 게 원래 맞는 걸 텐데
결국엔 어떤 경험은 필연적으로 겪어야지만 성장할 수 있는 것 같다. 물론 그 성장에 대한 입장이 다를 것 같다. 누군가에겐 불필요한 상처에 불과할 테고 아물지 않아서 흉터가 될 수도 있고
최근 대학원 동문의 부고 소식이 들렸다. 말이 좋아 동문이지 사실 난 누군지 모른다. 그런데 대학원 단톡방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자 마음이 뒤숭숭했다. 내가 하루를 잃었던 것처럼, 누군가에겐 그 분이 하루 같은 존재였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자 불편했다. 마음이 불편해서 창밖을 보자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날씨가 덥지 않았다. 이젠 저녁이 되면 꽤나 선선했다. 길고 긴 여름도 끝이 보이는 걸까. 올 여름도 작년 여름도 분명 여름은 맞지만 서로 다른 여름이었다. 우리는 매번 다른 여름을 향해 나아갈 것이며
앞으로도 몇 번의 다른 여름 앞에서 굴복할 수도 좌절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다른 여름으로 나아가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린 항상 같은 여름을 보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내일은 분명 오늘보다 더 나은 하루가 될 것이고
교수님에게 오디션 소식을 전했다. 교수님은 얘기한다. 만약 붙으면 어떻게 할 거예요? 우린 달력을 봤다. 다가오는 개강. 대학원과 연기, 영화를 병행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붙고 나서 생각한다고 했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