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일기
나는 앞을 나아가고 싶었다. 나뿐 아닌 우리는 모두 나아가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했으니까.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다면 사실 오늘을 살아가는 건 너무 슬픈 일 아닌가.
물론 시간관은 그렇게 근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시간은 연속적이기도 불연속적이기도 사실 과거-현재-미래라는 분할 자체가 무의미할 수도 있으니까. 뭐, 이건 나중에 언젠간 얘기가 나올 거고
오디션을 봤다. 평소의 내 실력보다 훨씬 못 보여줬다. 텍사스 홀덤 딜링을 보는 장면이었는데 테이블은 책상이고 카드는 종이였다.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책상은 테이블 홀덤보다 훨씬 작을 뿐더러 피칭을 할 이유도 없을 만큼 작은 공간이었다. 셔플을 하기에 종이 카드는 불리했다. 카드가 섞이질 않았고 꼬였다. 나는 자꾸만 긴장했고
자유연기 또한 사실 만족하질 못한다. 앉아서 해야 했는데 공간이 너무 한정적이었다. 움직임도 너무 최소화해서 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자유연기 또한 만족하기 어려웠다. 잘했다라고 하기도 못했다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뭐랄까, 그냥 3할 정도 보여준 느낌이랄까.
오디션이 끝나고 화가 났다. 내 자신에게도 그리고 그 상황을 이겨내지 못한 것도. 사실 불리한 상황일수록 더 노련하게 대처해야 하는데 쉽질 않다. 가로수길을 걸으며 컴공 형한테 전화했다. 오디션 때 일을 얘기하자, 그냥 홀덤 테이블이라고 생각하고 하라고 했다. 그러니까 평소 하는 것처럼 카드 피칭하고 그러라고.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그 작은 책상 안에서 모든 걸 해내려 하는 것보다 그냥 평소처럼 던진 다음 문제가 생기면 작다는 핑계를 해도 되는 거였다.
그리고 그 편이 나에게도 유리했을 것이다. 부족한 실력을 자신감으로 메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고. 이미 지나간 것이기에 무의미하긴 하지만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해봐야지.
카드가 사실 제일 문제였다. 종이 카드라니, 텍사스 홀덤에 대해 조금만 알아도 종이 카드가 아닌 플라스틱으로 준비했을 텐데. 사실 책상을 둘 거면 최소한 두 개를 붙여두거나 했을 텐데
가로수길은 한적했다. 더웠고 관광객이 많았다. 외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도로 바닥에도 앉아서 사진을 찍었다. 피자집에 들러 피자를 먹었다. 조각으로 파는 곳이었는데 맛은 평범했던 것 같다. 이미 만들어둔 걸 다시 데우는 것이기에 아무래도 갓 구운 맛과는 비교되었다. 빠르고 가볍게 먹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인 가게였고
돌아오는 길엔 프린트 가게를 들렀다. 무인으로 운영되는 그 프린트 카페다. 역사 안에 위치했고 가격이 무척 비쌌다. 페이지 당 70원인가. 내일 학원 가서 뽑을까 고민하다 그냥 뽑았다. 하루라도 더 연습해야지.
앞으로 오디션 연락이 언제 올지 모르겠다. 사실 이번 계기로 텍사스 홀덤 딜링을 특기에서 지우기로 했다. 나는 전문가의 실력이 아니다. 연습을 하는 동안도 지울 수 없는 사실이었다. 부족해도 최선을 다 하려고, 사실 최선을 다 한 것 같지도 않다.
마음이라는 어플을 다시 하고 있다. 1-2년 전에 깔아서 일본어 연습을 했던 어플이었다. 다시 어플을 이용해보니 한국 사람과도 꽤 연결이 잘 되는 것 같았다. 전화는 처음에 낯설었지만 몇 번 하다 보니 익숙해지고 있다.
하루는 고딩과 연결되었다. 고2라고 했던 것 같다. 여자친구가 있냐고 그는 물었고 그런 이성친구 이야기를 서로 했다. 그러다 이상형 얘기가 나왔는데 그가 나라고 했다. 그러자 내가 나를 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했다. 웃으면서 얘기해서 최대한 장난임을 나도 어필하고 싶었지만 그가 반응이 없었다. 장난으로 안 들렸던 걸까. 어쨌든 그게 귀여웠다.
나도 고딩 때 아자르?라는 게 유행했다. 그때 유행했던 건 얼평이었다. 모르는 여자한테 연결이 되면 우리들(남고생) 얼굴을 보여준 뒤 순위를 메기는 거였다. 그게 왜 유행이었는진 모르겠다. 수학여행 갔을 때, 애들이 그걸 참 많이 했던 기억만 난다.
아마 저 고딩도 이런 느낌 아닐까. 친구랑 장난하는 중이었다든가.
마음을 하면 외국인이 참 많다. 인도네시아 사람이 유독 눈에 띄는데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이 많은 것 같았다. 그 사람들은 대개 k-pop을 얘기했다. 한국 아이돌의 인기를 실감한다. 엑소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국위선양하고 있는 아이돌을 생각하자 신기했다.
한 번 전화가 연결되면 7분 정도 시간이 주어진다. 더 하고 싶으면 유료 ㅎㅎㅎ 대화를 이어나가고 싶어도 유료다. 7분이 길게도 느껴질 때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7분이 무척 짧게 느껴질 때도 있다.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은 국적 불문하고 존재하는 것 같았다. 다른 언어의 한계가 있어도 대화가 잘 될 때가 있다. 물론 상대가 그렇게 느끼지 않을 수도 있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