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야기
눈웃음 지으시던 아버님이 쓰러지셨다. 스트레쳐카를 급히 끌고 오는 외부응급실 간호사님. 과장님은 아버님 상태를 살펴보더니, 안색이 어두워지셨다. 간호사님과 과장님의 대화에선 코드블루, 라는 말 외에는 내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 말이 점차 흐려지더니 과장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간호사님은 곧장 문밖으로 나갔다.
어리둥절하다. 죽빵 한 대 맞은 것처럼. 아니, 시발. 이 상황이 실감이 안 났다. 아니, 눈앞에서 누군가 죽어가고 있는데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유니폼을 찢고 싶었고 울고 싶었지만, 그마저 민폐일까 봐······ 닥치고 있었다. 입뿐만 아닌 숨까지 닥치고 있었다. 이 상황이 몰래카메라가 아닐까 싶었다.
전화가 울린다. 껐다. 화면을 껐는지 무음으로 했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손이 바로 꺼버렸다. 다시 화면에 전화가 울리자 실감 났다. 아버님은 내 환자였다. 내 책임이다. 산소마스크가 불편하다는 아버님. 불편해도 껴야 합니다. 사실 불편함이 어느 정도인지 몰랐다. 스무 살에 나는 건강이 환자들의 눈에만 보이는 왕관인 것을 몰랐다. 머릿속엔 코드블루, 살인, 방조, 정지, 마비 마구 뒤섞이더니 뭐가 뭔지도 까먹었다. 기억을 도려낸다면 토한 것처럼 마구 어질러져 있을 것이다.
과장님이 가운에서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으신다. 김간. 과장님 목소리만 메아리친다. 다시 김간. 네네, 하며 헐레벌떡 문이 열린다. 깼네. 환자 깼네. 흐르는 식은땀과 창백한 얼굴의 아버님. 창백하다는 말과 식은땀은 이럴 때 쓰는 말이었다. 만져보지 않아도 체온이 느껴질 것만 같았다.
간호사님은 급하게 무언가를 확인했고 과장님의 표정에서 안도가 느껴졌다. 의사도 사람이었다. 저렇게 땀 흘리며 일하는 과장님을 처음 봤다. 놀라긴 하시구나. 나도 그제야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과장님은 아버님 상태가 호전될 때까지 쉬어야 한다고 하셨다. 검진은 다음에 하자고 했다. 의자에 누워있던 아버님이 몸을 일으킬 수 있게 도와주었다. 아버님 등에 손을 갖다 바친 채 천천히 밀어줬다. 흥건했다.
아버님이 눈웃음을 지으며, 놀랐지.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셨다.
그 후에 아버님은 상태가 호전되질 않으셨다. 1인실로 방을 옮기신 후로는 산책도 자주 나오지 않으셨다. 방 안에서 겨울잠을 자는 것처럼 방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방에 들어갈 때마다 누워 계신 아버님. 아드님이 가져다준 노트북으로 영화 보는 중이라 하셨다. 한국 영화 중에서도 액션을 좋아하셨다. 아버님은 왜소한 덩치는 영화 속 주인공과 비교되었지만 남자다움에선 뒤처지지 않으셨다.
몇 주 후에 뵌 아버님은 특유의 트레이드 마크인 눈웃음을 짓고 계셨다. 1인실에서 짐을 다 싸고 있었다. 그렇게 내과계 중환자실로 가셨다.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아버님은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으셨다.
아버님, 설쇠기 전에 집에 가셔야죠. 나도 그라고 싶지. 근데 어아냐. 의사가 찍어줘야 나도 나가지. 시트를 정리하면서 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아버님 아드님은 설 때 온대요? 바쁜 데 뭐 하러 와. 말이 흐려졌다. 뭉게구름처럼.
설날에는 교대 근무 날이었다. 아버님은 영화를 보고 계셨다. 꼭 집에 가서 가족들과 밥 먹어야 해요. 짧은 인사를 했다. 그날이 마지막이다. 마지막이었지만 아버님은 미소를 잃을 기미조차 보이지 않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