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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적이

날마다 적는 이야기라고 쓰고 그냥 일기라고 읽는다

by 수호

22.06.03


장학복지팀에서 전화가 왔다. 인문 100년 장학금에 대한 거였다. 백분위 92 이상이면 생활비 장학금도 지급된다는 요지였는데 나는 91.4라고 했다. 억울했다. B0를 받은 강의가 떠올랐다. 드랍할까 말까를 몇 번이나 고민했던 중간 고사 시기. 그렇게 꾸역꾸역 그래도 하라는 건 다 했는데 비제로를 줬다. 상상평 시절에. 처음 받아본 비제로였다. 그전엔 하라는 거 다하면 비플은 줬으니까. 상상평 전에도 그랬다고 난 생각한다.

교수를 탓한다는 건 웃긴 일이다. 결국엔 내 탓이니까. 그리고 비제로를 받은 과목이 아닌 다른 강의를 탓해도 되는 거니까. 근데 억울한 건 하릴없다. 비플 이하를 받은 적 없었던 탓일까. 4점 대에서 떨어질 줄 몰랐던 거였을까. 물론 이번 학기에 내가 열심히 하진 않았다. 그래도 하라는 건 다 했다. 아니, 장학금 250만 원을 못 받아서 이런 거다. 생활비 대출 300에서 감면되는 걸 상상하며 좋아했는데, 필요가 없어졌다. 등록금은 이미 전액 감면받고 다니니까. 자랑이 아니라, 필요가 없게 된 장학금이 됐으니까. 대출에서 벗어나고 싶었는데, 50만 원만 갚으면 되는가 하고 좋아했는데. 0.6 차이로 못 받는다는 게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비제로를 받은 강의가, 교수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내가 그렇게 못 했나. 내가 작품을 그렇게 못 썼나. 이게 말이 되나.

어디에 털어놓고 싶다. 밖엔 비가 오고. 방은 눅눅하고. 최근에 심란한 일도 겪은 탓인지 더욱 기분이 나쁘다. 이번 학기는 유독 힘들었다. 열심히 하고 그런 걸 떠나서 뭔가 심적으로도 힘들었다. 오늘 세금 환급 37인가 32이가 들어와서 숨통이 겨우 트였는데. 왜 가난한 학생에게 자꾸 이런 시련이 생길까. 운전학원에 등록하는 비용은 85나 하고. 돈 없으면 살지 말라는 걸까. 통장 잔액을 보면 헛구역질이 난다. 옛날처럼 조바심이 나고 조급하진 않지만, 불안한 건 여전하니까. 다음 학기에 또 강의를 들어야 하는데, 벌써 싫다. 그 교수를 보기 싫다. 만나기도 싫다. 전공 학점을 채우려면 들어야 하고, 근데 듣긴 싫고. 하라는 거 다 해도 어차피 점수는 낮게 줄 텐데. 이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다.

글 쓰는 데도 돈이 드는 세상에서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20.11.05


치과에 갔다 왔다. 역시 이빨은 잘 닦아야 한다. 위잉 소리 마다 속으로 몇 번이나 되새겼을까.

몇 년만에 본 친구들인데 여전하다. 마스크를 끼고 있다는 거 말고는 다른 게 없다. 얼마나 더 시간이 지나야 얘내들은 변할까.

시내는 아주 조금씩만 달라졌다. 그냥 건물 몇 개가 간판 바꾼 정도와 가게 바뀐 정도다. 여전하다.

많은 시간이 흐른 듯했지만 사실은 별로 안 지났을 수도 있다.

나만 시간이 더딘 것도 빠른 것도 아니고 다들 똑같은 시간이 흐르는 건데, 분명 절대적인 건데 왜 이렇게 느껴질까.

옛날엔 시간관하면 카이로스와 크로노스가 있다는 등 몇 개를 들었었고 읽었었는데 기억이 안 난다.

뭔가를 많이 알고 싶어했고 그만큼 아는 척하고 싶었던 게 스무 살이었다.

철도 없었고 개념도 부족했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은 것 같은데 그래도 옛날보단 좀 더 나아졌다.

김사월의 노래를 들을 수 있게 되었고 즐길 줄 알게 되었다. 김사월 <수잔> 앨범은 책 읽을 때 듣기 좋았다.

옛날에는 김사월의 노래를 유튜브에서 듣고 바로 꺼버린 게 기억난다. 난해한 곡을 들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나의 취향이 아닌 노래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게 어쩌면 남의 취향을 존중하게 되었다는 뜻 아닐까.

그 시절엔 말로만 취존을 했던 것 같다. 지금은 존중보다는 내 상관 아니다가 더 맞는 표현 같지만 예나 지금이나 터치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은 배려심을 조금은 갖게 된 것 같다. 내가 힙합을 좋아하는 거랑 똑같은 이치일 테니까.

시를 쓰는 걸 누가 이해해줄까. 나부터 생소하고 이상한 걸 한다는 걸 자각했다.



20.10.28


오늘부로 말가를 나왔다

딱히 할 게 없어 게임을 했다

다른 사람들은 전역을 하면 도대체 무엇을 할까. 막상 나온 말가지만 할 게 없다.

버스정류장에 내렸을 때야 집에 왔다는 게 실감났다. 터미널을 지나갈 때까지만 해도 아무 느낌이 없었다.

어제는 조용했고 오늘은 얘길 나눌 사람이 없다. 그래도 수고했다고 전화가 온 게 신기하다. 내가 이런 친구도 둔 줄은 몰랐는데.

열심히 쓴다고 시는 쓰고 있지만 월하 백일장 말고는 성과가 없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지표라도 보여주면 좋겠다.

확실히 부대 안에 있을 때가 속이 편했다.

천성이 쫄보라 걱정도 많다. 복학까진 시간이 많이 남았고 알바를 하자니 군인 신분이고.

알바천국에 들어가자 야간 알바가 많이 보인다. 야간만큼은 아직도 자리가 나니 신기하다.

2년을 교대근무를 했다. 그래도 야간은.. 밤낮 바뀌는 건 여전히 자신없다. 적응이 되는 게 말이 안 된다.

앞집에 조그만 댕댕이 두 마리가 있다. 인절미 같다. 말랑말랑해 보인다. 만지고 싶은데 다가오진 않는다.

딱 손 닿을 거리만큼 경계하고 다가온다. 밀당도 잘하고.. 내가 나가면 달려는 오는데.. 밥을 줘야할까.

거의 모든 용품들을 소대원에게 나누어주었다. 양말까지도.

하지만 사진은 남기지 않았다. 언젠가 후회할 것 같긴 하다.

전역자한테 전역날 뭐했냐고 물으니 치킨을 먹었다고 했다.

나는 그런 것도 없어서 할 말이 없다. 게임을 밤새라도 해볼까.

노래는 질리도록 듣고 있다. 블루투스 스피커 연결하고 빵빵하게 틀고 있다.

좋아하는 앨범을 무작정 돌리고 돌려도 끝이 나질 않는다. 땅거미는 지고 있고

점심엔 시리얼을 우유에 태워먹고 사과 하나를 먹었다. 배가 고프다. 뭐라도 사가지고 올 걸 그랬다.

쓰다 보니까 더 답이 없는 것 같다. 그만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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