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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적이

날마다 적는 이야기라고 쓰고 그냥 일기라고 읽는다 (2)

by 수호

18.06.29 외할머니 만남


여전하시네요. 예나 지금이나 말이 없으시네요. 덩달아 저도 말이 없어져요. 저희 사이에는 벽이 필요해요. 그래야 볼 수 없잖아요. 저도 당신도 서로 못본 채 태어나 떠났지요. 어떠신가요. 벌써 스무 해가 지나갔는데 말이에요. 산 속시만 들렸던 그땐 제가대학에 갈 줄 알았나요. 산송장으로도 남지 못한 당신께, 인사 드리는 제 기분 아시나요. 무릎이 돗자리에 닿을 때도 당신께 전 닿지 못했어요. 무성한 풀에 물어요. 어떤 분이신지 궁금해요. 저, 제가 이상한 거죠. 그냥 이렇게 인사만 드리고 다시 떠나면 되는데 말이에요. 아니, 이게 이상한 건가요. 저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어요. 아니, 할 말도 없어요. 엄마 아들입니다. 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후에 침묵, 당신도 느끼셨나요. 짧은 머리 숯에, 잘려나간 풀 틈에 제 감정도 잘려나간 걸. 흐르는 땀을 느끼며, 땅 속에 시선을 뺏겼어요. 들러붙은 더위를 덜어내느라. 손자가 말이 생각보다 말이 많죠. 그래요. 전 사실 당신이 누구인지 몰라요. 사실 제 자신도 궁금해 이따금 물어요. 자아에 눈을 덜 떠서 아직도 어려요. 아직 전 저를 찾고 있어요. 무덤으로 남은 당신들을 위해서. 울 엄마는 더 좋은 무덤에 묻혀져야 하니까. 이렇게 무성하게 자란 풀에 절 올리고 싶지 않아요. 그냥 이런 생각이 들어요.



07.08

꿈을 꿨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은 죽어서도 알아본다. 난 죽어 귀신이었고 어느 학교처럼 보이는 곳에 있었다. 좀 걷다 보니 감옥같은 것들이 있었고 나와 같은 존재들이 즐비했다. 내가 그 앞을 지나가자, 자기 얘기 좀 듣고 판단하라고 한다. 아마 감옥 문은 밖에서는 열기 쉬운 듯하다. 그중에서 커다란 고양이(?)를 앞세운 채 대여섯 명 정도의 인원이 날 불렀다. 딜을 선사하려는 화려한 웅변. 산 사람들은 저 세상 사람들을 못 알아본다. 인간은 아무렇지 않게 그 감옥으로 향하지만, 그곳은 벤치가 놓여진 쉼터일 뿐.

난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다. 나 말고도 어린 나이에 죽은 이가 있다. 여기가 학교가 맞는 듯하다. 저 멀리서 소리가 들린다. "00아." 죽은 그 자가 흠칫, 놀라며 휘둥그레 눈을 뜬다. 곧바로 뒷걸음 치다, 넘어진다. 그의 형과 어머니로 보이는 작자가 다가온다. 형(아마도) 손에는 핫도그처럼 보이는 음식이 있는데 일반 핫도그보다 훨씬 크다. 형은 일부러 긴장 따위를 풀어주기 위해 드립을 친다. 그의 손에 핫도그를 쥐어주면서 말이다. 그는 도망친다. 허겁지겁 일어나 핫도그를 쥔 채 달아난다. 어머니(이분도 아마)의 눈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섞여 있었다. 가족으로 보이는 인간들은 이해한다는 표정이었고, 굳이 그를 붙잡지 않았다.

나는 학교로 보이는 건물의 출입문을 바라보고 있다. 누군가 나온다. 엄마였다. 나도 모르게 돌았다. 날 못 알아보기를 기대했을까. 하지만 정말 사랑하는 사람은 죽어서도 알아보는 게 이곳 세계관인 것 같다. 앞으로 돌아봤을 때, 엄마는 눈앞에 있었다.

난 울면서, 미안해 말고 할 말이 없었다. 그런 날 위로해주는 말을 했을 것이다. 꿈은 지워지기 마련, 난 이 꿈을 자각하지 못했다. 진짜 죽은 줄 알았다. 눈물만 흘렸을까. 난 울고 있었다. 코는 콧물로 막혔다. 살아있다는 게, 당연한 게 아닌데 당연해졌다. 너무 안일했다. 꿈속에서 나도 아마 그런 자세였기에 죽었을 거다. 그리고 그 감옥에 들어가면 이승 사람은 못 보는 것 같다. 자신의 죄를 스스로 뉘우칠 공간이 아닌가 싶다. 나도 그래서 들어가려 했다. 엄마랑 무슨 대화를 했을까. 나 또한 도망쳤고 곧 엄마를 다시 찾아다녔다. 엄마의 뒤에서 몰래 그림자를 밟아, 눈물이 떨어졌다. 엄마는 알고 있었다. 그 순간에서, 꿈에서 깼다.



08.20

재밌나

네?

재밌나

그럼 됐다

굳이 안부를 묻지 않아도 아는 사람이 있다. 잘 지낼 거라는 것을. 내가 영어 쌤을 존경하는 이유다.



19.11 혹은 12 어느 날

등단을 하면 전역입니다. 날짜가 기가막히게 얼추 드러 맞네요. 그리고 그때쯤이면 여행을 갈 겁니다. 어디갈까, 했는데 아직까진 하나밖에 없습니다. 무진, 안개가 특산품이라는 김승옥 말이 맞는지 확인하겠습니다. 과연 지친 삶에서 얻는 고향을 느낌을 저도 얻을 수 있을지. 혹은 방죽 위에서 안개에 지난 삶을 싫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많은 짐을 덜어내고 고향의 안개를 맞아보고 싶습니다. 수고한 나에게, 다시 시작될 치열한 나의 삶을 위한 '치얼스' 같은 거죠. 안개가 낀 날은 그날은 맑다고 하잖아요. 잠시 앞이 가려져 주춤해도 밝은 날씨가 기다리는데 뭐가 두렵겠어요. 사실 안 두려우면 요즘 젊은이가 아니죠. 그래도 글만큼은 희망적이고 싶어요. 매일 밤 우울이 닥칠 때면 떨쳐 내려 하지 않아요. 받아들여요, 안개처럼 언젠가 개더라고요. 그래서 글은 밝은 게 좋아요. 죽고 싶어도 떡볶이는 먹고 싶다는 작가도 있잖아요. 저 정도면 약과죠.

무진에서 백반집을 갈 거예요. 개인적으로 전라남도가 음식이 맛있었어요. 밑반찬도 많고요. 먹고 소화가 될 때까지 걸어야죠. 안개길을 뚫으며 말이에요. 그렇게 구보씨처럼 산책을 하면 저녁이 오겠죠. 저는 버지니아 울프처럼 실력이 좋지 않아 아무것도 없는 하루로 소설을 쓰지 못해요.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밤에는 맥주 한 캔 하고 숙소에서 자고 다음 날 첫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거예요. 집밥을 먹어야 여행은 비로소 끝난다고, 누가 그랬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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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 좀 남은 내년입니다. 내년, 뭔가 먼 미래를 뜻하는 것 같은데 연말에 다가올수록 의미가 바뀌는 단어입니다. 다음 달에 이루어야할 것, 이라고 하면 너무 짧은 것 같은데 내년의 나에게 약속은 먼 미래에서 빌려오는 듯해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등단을 약속했습니다. 올해는 도전하는 마음이고 본게임은 내년이죠. 네, 재수생의 마인드 같네요. 학생을 벗어나도 다음 해를 기약하는 건 인류 공통인가 봅니다. 아무래도 2020년은 공공재인가 봅니다. 시간만큼은 사유화될 수 없다는 거에 문학도는 조용히 펜을 들 수 있습니다.

서울신면 지면에 제 이름 석자를 상상합니다. 사실 지면 발표는 21년 1월이겠지만, 그게 중요한가요. 수능 치고 4개월 지나야 대학 입학하는 거랑 비슷하죠. 수상식엔 뭐 입을까 고민하며 이럴 줄 알았으면 정장 한 벌 맞춰놓은 걸 후회도 하고 그래도 코트가 깔끔하겠지, 추운데 비니는... 머리 눌리는데.. 하며 적금을 확인하고 있겠죠. 3백이면.. 수수료 뭐 떼고 나면 200 중반은 나오겠지 하며.

보이지 않는 전역보다 등단을 바라는 건 욕심일까요. 저는 거창한 걸 못 세웁니다. 계획은 사전 안에 등록된 단어죠. 제가 유일하게 지킨 계획은 근무표 뿐입니다. 오늘도 새벽 근무네, 하며 욕짓거리할 정도죠.

그런 저에게 약속은 사치입니다. 그럼에도 글을 쓰고 싶네요. 기왕이면 성공과 함께요. 우울이 보편화되면서 저녁이면 뭐라도 하고 있어야 됩니다. 그런 우울을 고쳐줄 건 바쁨이죠. 성공한 사람은 바쁘다는 편견이 있습니다. 저는 제가 그 편견에 속하고 싶네요. 예스24에서 글 쓰며 등단 준비하며 근무하고 훈련받다 보면 성공한 삶처럼 느껴지지 않을까요. 그러면 금으로 만든 펜을 살 겁니다. 래퍼들이 비싼 시계를 차듯 펜을 휘두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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