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일기
촬영 당시 체지방이 5.9kg였다. 거의 1주일 안에 4kg을 뺀다고 복근 말고는 볼품도 없다.
가장 힘든 촬영이었던 것 같다. 어떤 의미로든.
본래 촬영일보다 촬영도 미뤄졌었다. 본 촬영일이 있던 날은 친구의 발인이 있었고 나는 양해를 구했다.
촬영이 있기 하루 전날, 나는 장례식에 갔다. 장례식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익숙한 것도 이상한 거고 그저 영정사진을 보면서 하염없이 울다 입관하는 친구를 보며 어린아이처럼 또 하릴없이 울었다.
식당에선 편육 말고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았다. 한 잔, 두 잔 들어가는 소주잔을 보면서 어른들이 말하는 인생의 쓴맛이 저런 걸까 싶었다. 소주를 어쩌면 달다라고 말하는 게 과장이 아닌 걸지도 모르겠구나 싶었고
해가 지고 저녁이 되자 이후에 있을 과외가 생각났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과외생 집까지 어떻게 갔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날 어떻게 수업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멍했던 거 같다.
수업이 끝나고 기숙사에 돌아와선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붕어방으로 갔다. 유산소 운동을 위해 며칠을 뛰었던 붕어방인데 그날따라 더 길고 넓어 보였다. 두 바퀴를 뛰면 심장이 터질 것 같았고 땀이 미칠 듯이 흐르다 다섯 바퀴를 뛰면 스스로 한계점에 다했는데
그날은 50분을 쉬지 않고 계속 뛰기만 했다. 50분만 유산소 하라는 친구 말이 아니었다면 언제까지 뛰었을지 모르겠다. (기억이 나질 않지만) 어느 순간부터 땀과 눈물이 같이 흘렀다. 어느 순간 울고 있었고 마스크는 땀 때문인지 눈물 때문인지 축축했다. 그렇게 쓰러지듯 벤치에 앉았고
휴대폰을 바라봤다. 새벽은 더운 여름을 까먹게 할 만큼 쌀쌀했는데도 쉽게 열이 식질 않았다. 그러나 곧 추워졌고 감기에 걸리면 어떡하나 싶었는데
아프다는 것도 살아 있는 자의 특권이었다. 건강은 눈에 보이지 않는 왕관이라 건강한 자는 자신이 왕관을 쓴지 모른다고 했는데,
불공평하다고 여긴 세상이 그 이상으로 역겹게 다가왔다. 친구의 장례가 있은 후, 사람들은 내게 괜찮냐고 물었다. 내가 아닌 유가족한테 할 말이 아닌가 이것은. 물론 걱정해주는 건 고맙다. 그렇지만 진짜 대답을 모르겠다.
그렇게 여름이 지나 겨울이 왔고 봄이 왔다. 곧 맞이할 여름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