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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호 Dec 10. 2022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그냥 일기

어제아래였나. 꿈 속에서 하루가 나왔다. 


하루가 누군지 궁금하면 에세이라니를 읽으면 되는데, 이번 달에 나올 예정이다. 뭔가 이렇게 쓰니까 꼭 <부티의 천년은 이렇게 시작한다>를 쓰는 기분이 난다. 자,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테니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꿈 속에서도 하루가 죽었다는 사실을 난 알고 있었다. 이게 꿈인 건 아는데 그렇다고 자각몽은 아니고. 근데 또 꿈에서 깨고 싶다거나 부정하는 등의 반응은 없었다. 난 그냥 하루가 죽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이것이 꿈이라는 것만을 알았을 뿐이다. 이유는 모르겠다. 꿈이 그렇지 않은가.


깨고 났을 때 기분이 너무 별로였다. 하루는 꿈에서마저 평소의 하루와 같았으니까. 사실 며칠이 지난 상태로 변질되었을 수 있지만, 최대한 그때를 떠올려보면


하루는 2018년의 하루와 똑같았었다. 무슨 대화를 했는지가 안 떠오르지만 느낌이 약간


"밥 먹었어?"

"응."


이런 식이었다. 너무 한결 같았던 하루에게 난 꿈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사실 한번은 꿈에서 나오길 빌었는데 이렇게 나오니까 이상했다. 죽고 난 후의 하루가 아닌 생전의 하루여서 그런 걸까. 그냥 과거의 어떤 한 장면 같기도 했는데 뭐라고 형용하긴 어렵고. 사전엔 등록된 단어지만 내 머릿 속에선 생각이 안 나서 표현을 못 하겠는 어떤 상태인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어젠 회식이 있었다. 회식이라고 말하면 뭐하지만 어쨌든 비슷한 걸 했다. 동기가 많았다. 진짜 몇 년만에 같이 술잔을 부딪힌 동기도 있었다. 옛날 학생회를 같이 했던 친구가 우울증 이야기를 했고 회장까지 맡은 그 친구한테 그런 면이 있다는 게 


말은 안 했지만 내심 안타까웠다. 걸어가는 길에서도 갑자기 슬픔을 느낄 수 있는 감성적인 친구였는데 나는 1학년 때부터 겁이 많은 탓인지 친하게 지내질 못했던 것 같다. 그냥 걸어가다가 이 순간이 친구들과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면 슬프다고 했다. 내가 어떤 반응을 했는진 모르겠다. 그냥 하루가 생각났다. 하루가 죽었을 때 울었던 블랑이 떠올랐다. 블랑은 3대 460을 칠만큼 거대한 친구였는데 그가 그렇게 아이처럼 울 줄은 몰랐던 터였다.


어느 순간부터 블랑은 하루의 죽음을 부정했다. 부정인지 도피인지 외면인지 어떤 건지 정확히 꼭 집을 수는 없지만 아무튼.


꿈에서 하루와 나눴던 대화를 미치도록 생각해내고 싶은데 생각나질 않는다. 안일했다. 적었어야 했다. 그때의 감정을 기록해야 했다. 이틀 정도 지난 탓에 아무것도 또렷이 기억나질 않아 엉망이 됐다. 엉망인 기분은 꼭 휴지 같아서 아무렇게나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어진다. 이미 쓰레기통에 가득찬 감정 기복이 '살려줘' 외치는 것만 같은데


모르겠다. 진짜 세상은 아무것도 모르겠다. 살아갈수록 더 모르겠고 그냥 모를 때가 더 좋았던 것 같다. 근데 지금도 모르겠고 모른다는 말은 이렇게 모순 덩어리인데 내가 지금 뭘 말하는지도 모르겠고


하루가 나와 친하지 않았다면 살아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였다. 평범한 여자애들이랑 친했더라면 지금까지 잘 살고 있지 않았을까. 왜 나같은 애들이랑 친해져서,,


이런 부정적인 생각은 끝이 없는데, 내 잘못이 아니라고 나도 아는데


아니, 내 잘못이 진짜 없는 걸까. 하이데거(맞나)가 말한 '형이상학적 죄'가 이걸까. 그렇다면 그냥 이 생각은 죄의식에 불과한 걸까. 

종강이 다가온다. 일주일을 앞둔 종강. 영어 시간에 앤젤라 네이글의 <인싸를 죽여라>를 찾아왔는데 교수가 과격한 언어를 빼라고 했다. 내가 갖고 온 자료는 트위터 같은 곳에서 사용되는 혐오 표현 내지 그런 언어였다. 

manosphere를 얘기하자 앞의 학우는 못 알아들었고 내가 코리안 세이스 남초 커뮤니티라고 하자 옆의 학우가 웃었다. 둘 다 아마 공대생이었던 것 같은데 확실히 대학 강의실에서 언급되길 꺼려지는 단어긴 하다. 


나의 발표는 SNS의 나쁜 점이었고 나는 극우파에 해당하는 남초 커뮤니티와 극좌파에 속하는 트위터 몇을 이야기할 생각인데, 강의실에 돌 정적이 벌써 상상된다. 근데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난 영어를 못한다는 거.


영어도, 하루도 아무것도 모르겠다. 어제 바이럴 홍보 영상을 찍고 왔었고 그때 한 배우가 그런 말을 했다. '출근이 재밌는 몇 안 되는 직장'이라고 배우를 정의했는데 곱씹을수록 맞는 말이다. 출근하고 싶은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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