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처럼 묶어 세는 방법이 다양한 나라가 또 있을까.
짝이 되는 켤레는 다른 언어 문화권에도 있는 것이니 그렇다 쳐도 우리네 사물을 세는 방식은 참으로 다양하다.
볏단이나 생선을 묶어 세는 뭇(10마리), 한 손에 잡을 만한 분량의 손(고등어 한 손은 두 마리), 바늘을 묶어 세는 쌈(바늘 24개), 한약의 분량을 나타내는 제(한약 20첩),
오징어를 묶어 세는 축(오징어 20마리) 등.
왜 묶음의 단위가 이렇게나 많은 것일까.
아니, 왜 묶는 것일까.
상상해 보면, 내가 살아왔던 사회가 묶음의 단위가 필요했었기 때문이지 않았나 싶다.
고등어 한 손을 사면 옆집 할머니와 나눠 먹었고 가족과 함께 먹을 김치를 담글라 쳐도 몇 뿌리가 아닌 몇 단으로 소용되었었다.
대파가 뭐라고.
대파 입장에선 마늘, 쪽파 등을 제치고 이리 우뚝 선 것이 가문의 영광일지 모르겠으나,
한 단이 아닌 뿌리로 나눠지는 아픔을 겪어 내며,
가족의 해체, 공동체의 해체를 몸소 겪는 비애가 더 아플지도 모를 대파.
오늘 산책 길에 무리 진 대파를 보여 참 만감이 교차하는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