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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건축가 Nov 10. 2023

문호리 상가주택 '기연가'

건축주와의 인연은 기이했다.

우린 첫 만남에서 충분히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드렸고 자책하며 일의 기대를 접었었다.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건축주는 다시금 우리를 찾아 주었다. 

건축주는 우리와는 다른 기억으로 그 날의 기이했던 인연을 추억했다. 

다른 건축주와 거나하게 마신 낮술은 건축주와의 친밀감으로, 그 와중에 상담을 결행한 것은 약속을 지키려 애쓴 모습으로. 

그냥 좋은 모습만 보려 애쓴 덕일 것이리라.     


서종 지방도에 접한 대지는 도로에 면한 곳은 좁고, 깊어질수록 넓어지는 특이한 형상을 가졌다. 접도한 좁은 면은 상가의 입지로는 큰 약점이었다.

다행히 보행자 위주의 접근 보다는 차량의 접근이 많은 지역이라 차량의 빠른 이동 속도에서 맞닥뜨리는 다채로운 형상을 상상했다. 

양 방향의 이동에서 보이는 서로 다른 입면의 모습, 대지의 안쪽 깊은 곳까지 이어지는 유연한 곡면으로 다르게 읽히는 건물의 볼륨이 기이한 인상을 만들고 호기심을 불러 새로운 인연으로 이어지길 기대했다.   

  


이 집은 상가주택이다.

주택보다 상가 면적이 크지만 건축주가 거주할 곳이니 이 곳은 그들에겐 집이다.  

우린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가지 않는다. 낯선 집에 들어가는 것을 꺼려한다.

집이 가족에게만 ‘장소’의 의미를 가지는 까닭일 것이다. 

상가는 낯선 이들이 더 많이 찾아줘야 존재 가치가 증명된다. 

그렇기에 태생적으로 상가주택은 그 구성이 이율배반적이다. 

우리는 이 집이 이 곳을 찾는 이들에게 ‘기연가 미연가(긴가민가)’ 하길 바랐다.

집인지 아닌지의 모호함이 이 곳을 찾는 이의 경계심을 풀어주길 기대했다.

1층 상가 내부
2층 상가. 창 밖으로 녹색의 베란다가 보인다.
2, 3층 복층 형식의 상가

그렇다고 집을 희생(?)시키는 것은 원치 않았다.

4층의 집은 안주인의 바람대로 마당을 두었다. 중정은 자연스럽게 채의 분리를 가져와 내밀한 침실의 영역과 거실, 주방으로 나뉘어 안채와 사랑채의 역할을 하도록 하였다.

침실과 이어진 뒷마당은 오롯이 안주인의 장소로 텃밭과 좋아하는 꽃과 나무로 채워나갈 여지도 두었다. 

하지만 이런 마당과 채의 분리는 밖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기연가 미연가’를 위해 주택은 전체 건물의 모습에 통일되어 보여 진다.

  

4층 주인 세대의 현관
침실과 다이닝을 잇는 긴 복도.
주방에서 바라본 다이닝
다이닝과 연결된 중정
다락의 계단 하부에는 수납장이 숨어 있다.
건축주의 놀이터, 다락.
주인세대 침실
침실과 연결된 베란다. 북한강과 나즈막한 산이 보기 좋은 곳이다.
욕실에는 베란다와 산이 보이는 창이 있다.


3층에는 계단실의 좌,우측으로 복층의 상가와 임대 세대가 있다.

임대 세대에는 특별한 장소가 제공된다. 지붕이 있는 마당이다. 

방 두개의 작은 집이지만 생활의 영역은 반외부의 성격을 가진 마당까지 확장되고 독립된 단독주택의 장점을 두루 누릴 수 있게 된다. 

툇마루가 있는 3층 임대세대의 마당
3층 임대세대의 주방과 거실 전경. 거실 앞에는 작은 베란다도 있다.


‘기연’(기이한 인연)은 ‘비장소(지방도)’에서 ‘장소(기연가)’로 들어가는 비밀번호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인연이 깊어 목걸이 반쪽을 나누는 할부로 그 인연의 끈을 놓지 않듯이 이 집이 할부되어 서로 관계없는 이들이 묶이는 장소가 되기를 바랐다.    


기연(奇緣)    

 

술에 취해 당신을 만났어요

당신의 실망한 얼굴이 그려져

또 술을 마셨네요

당신은 술에 잠기지 않은

내 진심을 봤다고 말해줬어요

기뻐서 또 술을 마셨어요 

    

당신과의 여정은 그렇게 시작됐어요

여행의 시작은 기대와 두려움이었고

함께 걸을 땐

힘들고 지치기도 했죠

그럴 때 우린 서로 술 한 잔 내주었어요

그 술은 위로였고 응원이었어요  

   

기연은 만날 수 없는 

인연의 억지가 아닌가봐요

기연은 꼭 만나야할 사람은

만나지는 당연이 아닌가 싶어요     


손잡고 함께 했던 여행의

끝이 보이네요

저기 당신이 꿈꾸던 집이 있어요

우리가 함께 했던 까닭이 

저 집이었는데

종착지에 다다르니 당신이 보이네요 


-시쓰는 건축가 조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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