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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 May 31. 2021

나를 치료한 악기, 플루트

상처에 반창고를 붙이듯 마음에도 필요하다

    남편이 퇴사를 하고 혼자 일하다 작은 의류 매장을 하겠다고 나를 끌어들였다. 집에서 살림만 하는 것보다 일을 하고 싶긴 했지만 살림과 일 병행하며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아이들도 중고등 시기라 너무 중요한 때이기도 하고 딸은 주기적으로 병원을 다니며 약을 먹어야 했고 체크를 해야 해서 부담이 컸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고 브랜드 네임과 로고, 매장 인테리어 등 많은 것을 내게 일임했다. 화가인 아버지의 재능을 조금 물려받은 덕을 이렇게 써먹게 될 줄 몰랐다. 그러나 재능만 갖고는 할 수 없어 도서관에 가서 관련된 책을 뒤져 공부를 했다. 판매도 대학 때 알바 잠깐 한 것이 전부여서 전반적인 지식이 필요했고 경영에 대해서, 광고에 관한 것까지 하나하나 배워 나갔다. 어느 때는 재미도 있었고 새로운 분야를 배우는 게 흥미롭고 단조롭던 삶에 활력도 줬다.  발바닥에 땀이 난다는 게 이런 거구나 알 정도로 바쁜 적도 있었다. 오더 때문에 해외 출장을 갈 때는 엄청난 부담 ( 그 제품이 잘 안 팔리면 어쩌지...)이 있었지만 남편과 둘이 가니 기분이 새롭고 마치 신혼인 것처럼  좋기도 했다. 하지만 남편이 직장 상사가  되어 함께 일 하는 건 피곤하고 짜증 나고 때론 몹시 자존심도 상하고 힘들다는 거다. 힘들지 않은 직장이 어디 있겠냐만 나름의 고충은 다 있단 거다.

    가을 겨울 의류 판매하다 보니 봄 여름은 준비하는 때라 시간이 좀 있었지만 매장을 비워 놓을 수는 없고 자리를 지켜야 했다. 손님을 기다리는 시간은 참 지루하고 힘겹다. 북적이고 매출이 막 오르면 힘들어도 힘든 줄 모를 텐데 한가로이 지킨다는 건 어깨에 한 짐을 지고 있는 거와 같다. 엄마이자 주부니까 애들도 챙겨야지, 끼니는 또 뭘 해야 하나, 장 봐야 할 것들 잊을까 메모해 놓고, 며느리니 집안 행사도 참여해야지, 내 어깨는 무게가 늘어났다. 어느 순간 숨을 쉬고 있는데 남편이 왜 자꾸 한 숨을 쉬냐는 거다. 나도 모르게 힘이 드니 한숨처럼 깊은숨을 내뱉고 있었나 보다.


    그러던 어느 날 어디선가 아름다운 악기의 선율이 들려왔다. 자연스레 발걸음이 향해졌고 플루트를 배우는 옆 매장의 젊은 여사장을 보곤 뭔가 띵한 충격을 받았다. '우리 집에도 뒹굴고 있는 악기가 있는데...' 갑자기 나도 해보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끼고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역시 뭐든 지가 하고 싶어야 그게 정답이구나.. 어릴 때 아버지가 피아노 배우라고 교습소 보내 주실 땐 그리 하기 싫었는데 그때 좀 더 배워 놓을걸 후회가 된다. 악기도 자기와 맞는 게 있는 걸까. 플루트는 호흡으로 부는 거라서 이 악기를 불고 나면 속이 후련해지는 걸 느끼게 됐다.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내 비상금을 털어 내 악기를 사기로 했다. 돈을 투자하면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던 거다. 매장에서 개인 레슨을 몇 년 받았고 혼자 부는 시간이 많았다.   그 시간은 내게 힐링의 시간이 되었고 지루하지 않은 시간이 된 것이다. 더 많은 곡을 불고 싶었고 난 차츰 즐기는 자가 되고 있었나 보다. 결국  플루트를 불게 되어 내 한숨은 사라지고 플루트는 나를 치료한 내 악기가 되었다.


    혼자서 불고 즐기는 것도 좋았지만 함께 누군가와 같이 한다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고 '올레'라는 퓨전 음악 동아리를 만나게 되었다. 해금 건반 플루트 때론 장구도 함께. 다 주부들이고 애엄마다. 음악으로 통하고 같이 공연하며 정을 쌓는 이들이 있어 너무 감사하다. 플루트란 악기를 만나 새로운 만남까지, 지금은 젬베에 도전 중이다. 새로운 도전은 나를 반짝이게 한다.  

마음이 아프세요? 어떤 악기든 만나보세요!

악기를 하실 여건이 안된다면 내 몸의 아름다운 악기 '목소리'로 노래하세요. 노래는 힐링입니다. 노래는 음악 치유입니다. 장르 불문 무슨 노래든 부르시면 되거든요. 훌륭한 악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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