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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 May 31. 2021

36계 줄행랑

그때도있었다 바바리맨

  요즘 '라테는 말이야'가 꼰대를 풍자하는 거로 유행하는데 난 옛날 사람이라 경험담을 얘기해야겠다. 내가 중학생 때 만해도 아파트가 많지 않았다. 단독주택가는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골목길이 꼬불꼬불 되어 있어서 길 찾기도 어렵고 언덕길 내리막길에 계단도 있고 기찻길도 간혹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풍경은 재미있는 곳이고 어린 시절 친구들과 술래잡기, 숨바꼭질하던 곳이라 정감 있는 곳이다. 어느 집의 어머니가 밥 먹으라고 소리쳐 불러야 들어가곤 했었던 거 같다. 난 저녁이 오기 전 노을이 질 즈음의 그 시간이 참 좋았다. 어느 집에선가 밥 잣는 냄새 구수한 찌게 냄새라도 나면 코를 킁킁거리며 식탁에 둘러앉을 누군가를 상상해보기도 한다. 그래서 동네 한 바퀴 산책하는 시간이 좋아 혼자 걷곤 했다.

   그날은 하교 길이었고 밝은 대낮이었다.  어느 땐 담장에 핀 장미꽃에 반해 쳐다보고 어느 날은 바닥에 떨어진 낙엽을 소리 나게 밟아 보기도 하고, 시험 걱정 울 하기도 하며 사춘기 여자아이는 그렇게 지나고 있었다. 누군가 뒤에서 내 손을 툭 치기 전 까지는.


    아무 생각 없이 뒤를 돌아본 찰나----말로만 듣던 그 바바리맨이었다. 

   난 기겁인지 기암인지 너무 놀라 소리를 친건지 아 소리도 못 한 건지 기억이 제대로 안 난다. 다만 그 순간 혼자인 게 더 무서웠다. 다리가 후들거렸는데  어디서 그런 힘이 솟구쳤는지 난 죽을힘을 다해 달리고 있었고 한참 달리다 뛰어든 곳은 문이 열려 있는 미용실이었다.

     파마를 하러 와서 미용실에 온 손님들은 헐떡이며 겁난 표정의 날 보며 놀라 했고 더듬거리며 자초지종을 듣더니 바바리맨을 성토 하기 시작했다. 욕을 하기도 하고 연세 좀 드신 아주머니는 걸쭉한 농담까지 걸치신다. 그래도 사람 많은 곳으로 달려온 덕에  아주머니들이 계시니 차츰 진정도 되고 내 편이 생긴 거 같아 안심도 됐다. 그 후론 하교 길에 같이 갈 친구를 찾아 함께 다니곤 했다.



    

 초등학교 때 하교 길 골목길에서의 일이다. 내가 다닐 땐 국민학교였으니 늙은이가 맞네. 우리 집은 학교 후문에서 골목길 언덕을 한참 올라가야 했다. 지름길을 두고 굳이 삥 둘러 갈 필요는 없으니까 지름길인 그 길로 그날도 혼자 하교하고 있었다. 후문에서 조금 나와 걷는데 저 앞에 골목에 교복을 입고 있는 덩치 큰 오빠들이 여러 명 있는 게 눈에 얼핏 보였다. 

    '00를  골목에서 여러 명 남자들이 껴안고 그랬대'라는  할머니 말씀이 떠올랐다. 00은 우리 집 앞에 구멍가게를 하는 나의 유일한 친구였다. 난 그 친구가 너무 좋았고 함께 잘 놀았다. 친구의 우는 모습을 상상하니  너무 무서워서  난 갑자기 뒤를 확 돌아서며 " 길을 잘못 왔네"라고 말했던 거 같다. 누구에게 들리지도 못할 만큼 모기소리였던 거 같다.  그리고는  옆길로 뛰어 큰길로 냅다 뛰었다. 어린아이로 선 전속력으로 뛰었던 거 같다. 무슨 정신으로 뛰었는지 기억도 안 나고 숨이 턱에 닿을 정도로 큰길로 나오고서야  멈출 수 있었다. 그 후로 한동안 하굣길에 지름길을 두고  삥 돌아서 집으로 가야만 했다. 


   손자병법에 36계 줄행랑이 있다. 적을 이기는 36가지 병법이 있다. 그중 마지막 병법이 줄행랑 , 도망치는 것이다.  전쟁에서 도저히 승산이 없을 때 그냥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도망가는 것이 상책이라고 한다. 난 그때 병법인지 뭔지 모르고 본능적으로 도망쳐 뛴 거 같다. 바로 36계 줄행랑.  지금도 생각하면 그 상황을 무사히 피한 것에 감사하다. 여자들은 '촉'이랄까 '감'이랄까 그런 게 발달되어 있다고 한다. 늘 외진 곳은 혼자 다니지 말고 낮이라고 방심 말길 바란다. 혹여 어느 순간 촉이 쎄 하다 느껴지면 사람 많은 곳으로 36계 줄행랑을 써먹으라는 거다. 호신술 배워두면 안 배운 거 보다는 나을지 모르나 나쁜  무기엔 당할 재간 없다. 손자병법에도 나온 이 방법이 제일인 듯하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 마음은 늘 걱정이 많다. 요즘은  세상이 무서워져 더 근심스럽다.  고대 벽화에 그려진 그림에도 요즘 세대는 버릇없다고 쓰여 있단다. 나 역시 부모 잔소리가 간섭 같고 싫었다.  부모가 돼보니 왜 부모님이 잔소리하셨는지 알게 되더라.

  "너희도 부모 돼서 자식 키워 봐"

비록 줄행랑이 병법의 비법 중 하나이나 다 통하진 않으니 난 기도한다, 지켜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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