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저녁 무렵이면 우리 집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곤 했다. 온 동네가 저녁 준비로 분주해지고, 집집마다 밥 짓는 냄새가 풍겨 나오던 그 시간이 참 좋았다. 마치 서로에게 온기를 나누듯 굴뚝에서 올라오는 연기가 하늘로 번져 나가면, 하루의 고된 일과를 마무리하는 마음이 우리 집에도 가득 차올랐다. 그때마다 나는 아버지의 옆에서 저녁을 준비하는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며 하루가 저물어 가는 풍경을 즐기곤 했다.
아버지께서는 항상 소죽을 끓이느라 바쁘셨다. 어깨에 걸친 낡은 행주로 이마의 땀을 닦으시며,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셨다. 커다란 솥에 잘게 썬 풀과 곡식을 담고, 물을 부어 끓이면서 나지막이 흥얼거리시던 아버지의 노랫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나는 옆에서 그 모습이 신기하고도 즐거워 한참을 구경하다가 가끔 소죽 냄새가 너무 좋다고 말씀드리곤 했었다. 그러면 아버지는 웃으시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아버지께서 소죽을 만들어 외양간으로 가져가시면, 소들은 마치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조용히 구유 옆으로 다가왔다. 아버지가 소죽을 구유에 부어줄 때,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그 냄새가 외양간을 가득 채웠다. 소들이 소죽을 맛있게 먹으며 배를 불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까지 배가 부른 기분이었다. 아버지께서 “어서 배 불록하게 묵고, 잘 자라라”라고 속삭이듯 말씀하시면, 소들도 그 말을 알아듣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았다.
이런 순간들 속에서 나는 아버지의 깊은 사랑과 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께 소는 단순히 가축이 아니라, 가족처럼 소중한 존재였던 것 같다. 농사를 짓고 가축을 돌보며 가족을 위해 묵묵히 헌신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나는 사랑이란 게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배우게 되었다. 아버지의 손길로 돌봄 받는 소들이 튼튼하게 자라는 모습이 아버지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큰 보람이었으리라.
이제는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 소들도 없지만, 나는 저녁이 되면 어린 시절 외양간에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소죽의 김과 그 따스한 냄새를 떠올리며 마음 한구석에 포근한 온기가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그 풍경은 더 이상 볼 수 없지만, 아버지의 사랑과 따스한 손길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