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시의 계절이다. 나뭇잎이 붉고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모습은 마치 자연이 우리에게 건네는 한 편의 시와 같다. 바람은 가볍게 스치며 우리의 감각을 깨우고, 하늘은 끝없이 높아져 마음속 묵은 감정을 끌어올린다. 그래서일까? 가을만 되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산책길에서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를 들으며 떠오르는 생각들, 고요한 오후 햇살 아래 책장을 넘기다 느끼는 묘한 울림, 그리고 가끔씩 스쳐 지나가는 쓸쓸함까지—모든 것이 우리의 감수성을 자극한다. 이 계절에는 평소 잊고 지내던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된다.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의 계절들, 그 사이에 서 있는 나를 생각하며 문득, 내가 어떤 풍경 속에 서 있는 사람인지 궁금해진다.
가을은 인생의 순환과 흡사하다.봄은 시작이고, 여름은 한창의 열정이라면, 가을은 결실을 맺고 차분히 돌아보는 시간이다. 누군가는 가을을 인생의 황혼이라 부르지만, 나는 오히려 가을이야말로 인생의 정수라고 느낀다. 삶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열정이 소진된 여름의 끝자락이 아니라, 그 뜨거움을 품고 차분히 익어가는 가을이 아닐까.
사계절은 단순한 날씨의 흐름이 아니라, 인생의 주기를 닮은 메시지다. 봄은 가능성을 꿈꾸게 하고, 여름은 그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 치열하게 달리게 만든다. 가을은 그 치열함을 추억으로 바꾸고, 우리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겨울은 모든 것을 품고 새로움을 기다리는 계절이다. 이렇게 사계절의 의미를 되새길 때, 우리는 자연이 우리에게 준 삶의 순환을 깨닫게 된다.
가을은 그래서 시의 계절이고, 동시에 인생의 계절이다. 낙엽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은 떠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 새로운 시작이 숨어 있다. 모든 끝은 또 다른 시작으로 이어지듯, 가을은 우리에게 끝의 아름다움과 시작의 가능성을 동시에 노래한다. 이 계절에 우리는 스스로를 시인이라 느끼며, 자연과 인생에 담긴 메시지를 읽어내려 한다. 가을이 전하는 그 시를 마음으로 듣고 삶의 풍경을 바라보는 지금, 나도 모르게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한 편의 시가 쓰이고 있는 듯하다.